[한강로에서] 매너와 유머는 힘이 세다

2025-04-25     김재태 편집위원

지난 4월8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21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하는 자리에서 내보인 손가락 하나가 특별하게 눈길을 끌었다. 왼손 검지에 적힌 글씨가 화근이었다. 첫 세글자는 누군가의 이름이었는데, 거기에 어떤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일부에서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이는 안 후보 측이 ‘그날 자로 임명된 대변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놓은 것’이라는 해명을 적극적으로 내놓으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자라 보고 놀랐다가 솥뚜껑 보고 놀란’ 이 사건은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남게 되었다.

ⓒ연합뉴스

이 손가락 글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한순간 놀라움을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지난 대선 토론회 중에 윤석열 당시 후보가 손바닥에 쓰고 나온 ‘왕(王)’자의 추억, 그 기시감이다. 이 사건부터 시작해 윤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무속과 관련해 많은 의혹과 논란에 휩싸였는데, 정작 그보다 중요하게 문제가 될 광경은 따로 있었다. 윤 후보가 유세를 위해 기차로 이동하면서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 맞은편 좌석에 구둣발을 태연하게 올려놓은 모습이 그것이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예의범절이나 공감능력과는 거리 먼 행동을 그처럼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난 국민 무시와 같은 무례 혹은 무도함의 징후 중 하나였음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씁쓸하게 확인한 바 있다.

영화 《킹스맨》 시리즈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가 말해주듯 매너는 한 사람의 인간적 됨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어느 순간 잘 꾸며서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더 많다. 습관처럼 몸에 배지 않으면 제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언젠가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너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이런 매너가 잘 갖춰진 인물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도 그 때문일 터다.

매너 못지않게 한 인물의 심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언행 가운데 하나는 ‘유머’다. 매너나 유머 모두 마음의 여유와 관련된 태도라 할 수 있는데, 여유가 없으면 유머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다. 즉 마음자리가 크고 넓지 않으면 담겨질 수 없는 것이 유머다. 다알다시피 유머는 난관에 부딪히거나, 어려운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더욱 크게 빛을 발한다. 지금도 많은 이에게 회자되는 링컨이나 처칠의 유머가 그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그처럼 여유로움이나 오랜 훈련을 통해 체화된 유머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후보를 이번 대선에서는 꼭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기가 속한 곳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도 잠재적으로 위험한 존재로서, 스스로를 터무니없이 대단한 존재라고 여기는 반면, 개인적인 통찰력은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은 타인과 마찰을 일으키는 사람’. 심리학자 폴 바비악 등이 펴낸 《당신 옆에 사이코패스가 있다》라는 책에 기술된 사이코패스의 정의다. 아마도 이를 보면 얼마 전까지 국가의 높은 자리에 앉아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던 누군가가 금방 떠오를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제발 이런 사람이 스스로의 됨됨이를 제대로 모르거나 숨긴 채 과분한 욕망을 품고 나서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매너, 유머와 같은 태도의 참다움에 대한 판별의 정확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간이다.

김재태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