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시론] 책사(策士)와 유세객(遊說客)
책사(策士)라는 말이 있다. 흔히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계책을 잘 내는 사람을 말한다. 모사(謀士)라고도 하고 술가(術家)라고도 한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책사 혹은 술가로는 누가 뭐래도 장량(張良)을 꼽을 수밖에 없다. 흔히 장자방(張子房)으로 불리는데 자방은 그의 자(字)이다. 오죽했으면 삼국시대 조조(曹操)조차 자기를 도운 참모 순욱(荀彧)을 가리켜 “나의 장자방”이라고 했겠는가?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시대 세조가 자기를 임금으로 세우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한명회(韓明澮)를 일러 “나의 장자방”이라고 했다.
평상시에는 술가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평균을 지키며 정도(正道)를 따르는 신하들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비상시에는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중하는 도리, 즉 중도(中道)를 말하는 술가의 중요성이 커진다.
술가와 비슷하면서도 격이 다른 부류가 있는데 유세객(遊說客)이 그들이다. 전국시대에 맹활약했던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이 전형적인 유세객이다. 장의는 진(秦)나라를 위해 연횡책을 제시한 유세객이고, 소진은 이에 맞서 합종책을 기획한 유세객이다.
이들은 천하통일이라든가 대의를 따르기보다는 오직 형세에만 기반을 두고서 자기에게 유리한 나라를 찾아다니며 제후들에게 유세했다. 장의는 위(魏)나라 사람으로 훗날 진나라에 가서 벼슬살이를 하며 연횡책을 제시했다. 진나라 혜문왕 때 재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 뒤 실각해 위나라로 피신했다.
소진의 유세 경력은 파란만장하다. 처음에는 진나라 혜왕에게 유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에 연나라 문후에게 합종책을 유세해 받아들여지자 다른 나라들의 제후도 설득해 혼자서 진나라를 제외한 육국의 재상 인장을 갖고 천하를 호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의의 연횡책이 힘을 발휘하자 합종책은 폐기되었으며 그 자신도 연나라, 제나라에서 관직에 오르기도 했으나 결국 제나라 대부의 미움을 사서 암살당했다.
책사는 뜻을 중시한다. 주군과 뜻이 맞지 않으면 가서 섬기지 않는다. 장량이 그런 경우이고 한명회 또한 마찬가지다. 실은 조선 초 태조 때의 정도전, 태종 때의 하륜 등은 모두 출세가 아니라 뜻을 중시한 경우다. 따라서 이들은 유세객이 아니라 책사 혹은 술가라고 해야 한다.
반면에 장의나 소진에게서 보듯이 유세객은 자기 출세가 첫 번째 목적이다. 이를 위해 형세를 읽어내어 그 형세를 바꾸는 책략을 제시함으로써 주군의 환심을 얻어 개인의 영예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장량은 유방이 천하통일이라는 뜻을 이루자 재야로 물러났다. 공수신퇴(功遂身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대로 공이 이루어지면 몸을 물린 전형적인 경우다.
우리 현대사에도 이와 비슷한 책사나 유세객을 찾아볼 수 있다. 김종필은 박정희의 책사였으나 점점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면서 책사의 면모를 잃은 경우이고, 노태우의 책사로 불리던 박철언 또한 비슷한 길을 걸었다.
김종인, 윤여준이 보여주는 행태는 유세객의 모습 그대로다. 그나마 초기에 박근혜를 도울 때의 김종인 정도가 책사에 가까웠다 할 것이고 그 후 이 당, 저 당, ‘법당’ ‘예배당’ ‘성당’ 기웃거리며 정치 논평이나 하는 김종인의 모습은 전형적인 유세객 그 자체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됐다는 윤여준의 경우 애초부터 지략가, 책사, 술가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조조 수하에 있던 유소(劉邵)가 지은 《인물지》라는 책에서 유소는 술가의 아류(亞流)를 지의가(智意家)라고 했는데 소소한 계책에 밝은 사람을 가리킨다. 윤여준이라는 사람이 무슨 ‘이기는 계책’을 낸 적이 있는지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다. 그저 삼류 유세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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