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선거법 파기환송’에 날개 꺾인 ‘어대명’…대선 정국 혼돈의 ‘카오스’로

양당 희비 교차…국민의힘 “이재명 사퇴해야” 민주 “사법 쿠데타” 野, 야밤 탄핵 시도에 최상목 전격 사퇴…이주호 ‘대대대행 체제’  성립 “대선 내내 李 ‘대통령 무자격자’ 논란 커질 것”…‘중도층 민심’에 촉각

2025-05-02     박성의·이강산 인턴기자

대선 9회말 2아웃, 선발투수는 이재명. 완봉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대형 악재가 터졌다. 승부처로 여겨졌던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선고가 내려지면서다. 이로써 굳건해 보였던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추세에는 금이 갔다. 코너에 몰렸던 국민의힘이 그의 후보 적격성 논란을 파고들며 역공을 가하기 시작한 가운데, ‘이재명의 시간’을 말하던 정치권에선 이제 그의 ‘강판 가능성’까지도 언급되는 모습이다.

대선 정국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지면서 민심의 향방도 예단하기 어려워졌다. 분열하던 범보수진영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교두보 삼아 ‘반명(反이재명)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반면, 정권 재탈환을 위해 ‘원팀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렸던 민주당 일각에선 ‘이재명의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윤석열 심판론’과 ‘이재명 심판론’ 사이, 관망하던 중도층이 어디에 힘을 실을지 확언하기 어려운 상황. 정치와 사법이 충돌하며 안갯속에 빠진 ‘6·3 장미대선’, 강력한 대선주자이자 피고인 이재명은 마지막 파고를 넘어 ‘별의 순간’을 잡을 수 있을까.

ⓒ연합뉴스

‘설마’ 하던 민주당의 충격…심우정 검찰총장 탄핵 개시도

상고심 선고 전날(4월30일) 법조인 출신의 민주당 한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법리 해석만을 다루는 대법원이 파기자판이나 파기환송을 결정하려면 심리가 이렇게 짧을 수는 없다”며 “상고기각을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상황이지만 대법원이 민의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대한민국은 12·3 비상계엄에 버금가는 카오스(혼돈)에 휩싸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설마’ 하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5월1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후보의 발언 중 이른바 ‘김문기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 등 일부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후보의 무죄와 대선 승리를 확신했던 민주당은 혼돈에 휩싸였다. 이 후보는 대법원의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사법부 판단으로 감히 주권자의 다수 의사를 거스르는 것은 ‘사법 쿠데타’에 해당한다”고 반발했고, 전현희 최고위원도 “사상 초유의 ‘대법원의 대선 개입’에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민주당의 화풀이는 엉뚱하게도 한덕수 총리에 이어 두번째 권한대행을 맡을 예정이었던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로 향했다. 5월1일 밤 민주당은 그동안 국회에 계류시켰던 최 부총리에 대한 탄핵안 투표를 전격적으로 실시했고 이에 대해 최 부총리가 사표로 대응하면서 처리가 중단됐다.

결국 한덕수→최상목 줄사퇴에 따라 2일 0시부터 국무위원 서열 4위인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대행의 대행의 대행’을 맡게 되었다. 이와 별도로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 절차도 개시했다, “패닉상태의 민주당이 또다시 ‘탄핵 중독’에 빠졌다”는 얘기가 국민의힘 쪽에서 흘러나온 이유다. 

국민의힘의 당 지도부와 대선후보들은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는 한편 그의 후보직 사퇴도 요구했다.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국민의힘에서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상식의 승리이며 법치 복원”(권성동 원내대표), “이재명 후보는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후보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김문수 후보), “이재명 후보의 ‘거짓말 면허증’은 취소됐고, 동시에 정치인 자격도 박탈된 것과 다름없다”(한동훈 후보)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5월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생중계를보고 있다. ⓒ연합뉴스

당선돼도 ‘대통령 자격’ 논란 불가피

실제 이번 대법원의 선고로 이재명 후보는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는 물론 정치생명까지 위협받게 됐다. 이 후보는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되는데 고법은 대법원 판단 취지에 귀속돼 추가 양형 심리를 거쳐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 취지로 볼 때 파기환송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인 벌금 100만원 이상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남은 대선 일정을 고려하면 이 후보의 대선 완주는 가능하다. 문서 송달 절차 등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하면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이 대선 전 확정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이란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에 민주당은 일단 ‘이재명 체제’로 대선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후보 교체는 불가하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이 후보를 대체할 후보 선수가 전무한 상황이다. 4월27일 이 후보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경선 최고 득표율(89.77%)로 본선행을 확정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도,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정도의 당내 지지를 확보하진 못했다. 이 후보는 다수의 여론조사에서도 50% 내외를 넘나드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와 도덕성 논란은 (여론조사에) 선(先)반영된 이슈라 ‘정권 교체 우세론’을 당장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물론 민주당 내 일부 이탈표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의 지지율 격차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이 후보의 대체자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당원들이 ‘플랜B’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긴급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 84조’에 달린 李 명운…중도층 민심 출렁일까

그러나 이 후보의 정치생명은 결국 ‘여론’이 아닌 ‘법전’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헌법 84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범위가 ‘검찰 기소’까지인지 ‘재판’도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조계 내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후 헌법재판소가 재판 속행을 주문하고, 서울고법이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한다면 다시 한번 조기 대선이 열리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탓에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 이 후보의 ‘대선후보 자격’ 등을 놓고 적잖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법원의 선거법 파기환송으로 이 후보의 유죄 가능성은 분명 높아졌다”며 “이렇게 되면 대선판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대선 기간 내내 이 후보의 ‘대통령 무자격자’ 논란이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 비명(非이재명)계 일각에서도 이 후보의 ‘대통령 자격’에 대한 의구심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이재명의 플랜B’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당 지도부와 친명계가 애써 외면했을 뿐이지 (법원의 선거법 유죄 선고는) 대선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상황”이라며 “만약 윤 전 대통령이 사고(비상계엄)를 치지 않고 조기 대선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자체가 무산됐을 수 있다. 대법원 선고까지 나왔는데도 이 후보를 대체할 유능하고, 청렴한 인재는 찾을 수 없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인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이재명 포비아’가 확산하더라도 그 강도 면에서 ‘탄핵 역풍’을 압도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치러지는 대선이기에 다수의 유권자가 ‘이재명 심판’보다는 ‘윤석열 심판’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해석이다. 다만 중도층의 ‘스펙트럼’이 점차 넓어지고, 그 규모 역시 커지고 있다는 점이 변수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선 정국을 관망하며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은 ‘샤이 중도층’의 경우 윤 전 대통령 탄핵뿐 아니라 각 후보들의 공약, 언행, 논란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후보는 현재 선거법 외에도 4건(법인카드 유용 혐의, 대장동 관련 의혹, 위증교사 혐의, 쌍방울 제3자 뇌물 혐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이 모든 혐의가 ‘검찰의 부당한 기소’ 탓이라고 항변하고 있으나, 대법원의 선거법 유죄 취지 판결로 이 같은 주장의 동력이 일부 상실되게 됐다. 또 이 후보가 매주 재판장에 서는 것만으로도 중도층에는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그간 이 후보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이 언론에 오래 노출되지 않았나”라며 “현재 진행 중인 사법 리스크는 대통령이 되고도 이 후보를 괴롭힐 것이다. 이것이 이 후보에게 상당한 부담과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중도층에서는 이 후보를 향한 비호감도가 높게 나타난다”며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이기에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진보진영을 넘어 범국민적인 후보로 포지셔닝(자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선거법 대법원 선고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민주당 지지층 민심과 중도층의 민심은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4월28일부터 3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감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이재명’이라는 응답이 민주당 지지층에선 89%로 조사됐으나, 무당층(지지 정당 없음/모름/무응답)에서는 13%로 뚝 떨어졌다. 무당층의 경우 ‘없다’(35%)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그 외 다른 사람, 모름/무응답’(16%)이 뒤를 이었다.

대선후보 호감도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 후보 호감도가 92%로 높았으나, 무당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이 69%로 ‘호감이 간다’(19%)를 넘어섰다(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 면접,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9.3%,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5월1일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너 몰린 李…한덕수發 ‘보수 빅텐트’ 힘 받나

결국 ‘어대명’의 마지막 고비, 최후의 변수는 ‘보수 빅텐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3지대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닌 ‘차기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대선주자와의 단일화 여부, 시기에 따라 대선판이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탄핵의 강’과 죽지 않은 ‘윤심’(윤 전 대통령 의중) 탓에 보수 통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역설적으로 그 확률 낮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범보수, 중도층이 집결할 가능성도 있다. 범보수진영 내 최종 후보가 되는 1인이 ‘탄핵의 강’을 어떻게, 언제 건너느냐에 따라 ‘윤석열도 이재명도 싫다’는 무당·중도층 표심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에 ‘올 것이 왔다’고 봐야 한다. 여러 사법 리스크를 지금까지 잘 피해 왔지만 이번 선거법 대법원 선고는 돌이키기 어렵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층은 이 지긋지긋한 정쟁·진영싸움에 질려 있다. 새로운 대안에 대한 바람이 있을 수 있기에 한덕수 전 총리 등 제3지대를 향한 기대감이 증폭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병진 교수는 “대선은 ‘상대 게임’이다. (대법원 선고보다는) 이후 국민의힘 대응에 따라 대선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국민의힘이 그간의 구세력 이미지로 이 후보를 상대한다면 대권후보들의 지지율 조사에 큰 변동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대권주자가 이재명의 대안 세력 이미지를 준다면 기존 예상보다 대선판이 접전으로 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