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 명기’ 개헌론 쏘아올린 이시바…日 국민 절반 이상 개헌 ‘찬성’
이시바 “자위대 명기 최우선적 추진해야”…소수 여당 체제라 동력은 ‘글쎄’ ‘평화헌법’ 등 구체적 개헌 내용 두고는 찬반 팽팽…“국민 공감대가 우선”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5월3일, 일본 각지에서는 헌법 개정 찬성 단체와 반대 단체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리는 일본 헌법은 1947년 시행 이래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 지진 발생 등 긴급사태 대응 필요성과 안보 환경 변화 등의 요인으로 최근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먼저, 도쿄도의 특별구로 국회의사당과 내각총리대신 관저,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 등이 몰려 있어 일본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 불리는 도쿄도 지요다구에서는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민간헌법임시행정조사회’와 ‘아름다운 일본 헌법을 만드는 국민 모임’의 공동 주최로 ‘제27회 헌법포럼’이 개최되었다.
‘위기에 선 일본, 각 당은 개헌의 공동작업에 착수하라’라는 주제로 실시된 해당 포럼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비디오 메시지로 막을 열었다. 이시바 총리는 현행 헌법에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긴급사태 대응, 자위대의 (헌법에의) 명기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헌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헌법 9조 2항을 수정해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고, 긴급사태 관련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2월20일 열린 자민당 헌법개정실현본부에서도 자민당 창당 70주년인 2025년 현재까지 헌법 개정이 실현되지 않았다며, 국회 헌법심사회와 자민당 헌법개정실현본부가 힘을 합쳐 개헌 달성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당, 자위대 지위 강화 의도 천명
반면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도쿄도 고토구에서 ‘2025 헌법대집회’를 열고, ‘호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니혼히단쿄(日本被団協·일본 원폭 피해자 단체협의회)의 다나카 데루미 대표위원은 헌법 9조의 평화주의 이념을 되새기며 “전쟁도 핵무기도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했다. 또한 주오대학의 우에노 마미코 명예교수(헌법학 전공)는 올해가 2차 세계대전 패전 80주년이 되는 해라며 “헌법을 지키며 평화국가로서 발전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일본 내 주일 미군기지의 약 70%가 집중되어 있는 오키나와현에서도 헌법 개정 찬반 집회가 개최되었다. 먼저, 나하시에서는 오키나와현 신사청과 일본회의 오키나와현 본부 등의 주최로 헌법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자민당의 니시다 쇼지 참의원의원은 패전 직후 미군(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하던 시기에 미군은 일본을 해체하는 정책을 취해 왔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현행 헌법이라며,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 고유의 가치관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헌 반대 단체인 오키나와현 헌법보급협의회와 오키나와 인권협회 등은 우라소에시에서 2025년 헌법강연회를 개최했다, 해당 집회에서 무사시노미술대학의 시다 요코 교수(헌법학 전공)는 일본은 헌법 9조와 평화 가운데 생존할 권리를 갖는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해 왔다며 현행 헌법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각지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각종 매체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일본 국민이 전반적으로 헌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3~4월 실시해 5월3일 발표한 헌법에 관한 전국 여론조사(2012명 대상) 결과에 의하면 일본 국민의 60%가 헌법 개정에 찬성, 36%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4%는 각 정당이 헌법에 대한 논의를 더욱 활발히 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영방송 NHK가 4월3~5일 실시한 여론조사(4101명)에서는 응답자의 39%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17%는 헌법 개정이 필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이 매년 봄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3%가 “헌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헌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반면, 구체적인 개헌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평화헌법’을 상징하는 헌법 9조를 수정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팽팽한 의견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NHK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34%가 헌법 9조 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이 필요한 이유로는 자위대 보유를 명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이 64%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 국민 28%는 9조 개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평화헌법으로서 가장 중요한 조문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9%로 나타났다. 전력 불(不)보유를 선언한 ‘평화헌법’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개헌에 대한 찬반이 나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민당 소수 여당일 때가 국민적 숙의 타이밍”
다음으로 자연재해 발생 등으로 총선 실시가 어려울 경우, 국회의원 임기 연장을 인정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수정하는 긴급사태 대응도 쟁점이 되고 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현의회 선거가 약 7개월이나 늦춰진 것을 감안해 국회의원 임기 연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과 임기 연장을 헌법에 규정하는 것은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인 자민당은 2018년 ①자위대 근거 규정의 명기 ②긴급사태 조항의 신설 ③참의원 합구 해소(현별로 최소 1명의 참의원을 선출하도록 규정) ④교육 충실화 4항목을 중심으로 한 개헌안 초안을 마련했다. 이후 당내 개헌 논의에서는 자위대 명기와 긴급사태 조항 신설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4년 6월에는 자민당 헌법개정추진 의원연맹이 헌법 9조 제2항(전력 불보유와 교전권 부인)을 삭제하고 ‘평화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자위대를 보유한다’는 내용 및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과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 시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국회의원 임기에 특례를 부여한다’는 규정을 추가한 개헌안을 작성해 당 집행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2024년 10월의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소수 여당으로 전락한 결과, 국회에서 개헌을 발의하기 위한 3분의 2 의석수를 확보하는 데 난항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민당이 소수 여당인 지금이야말로 국회에서 숙의를 거쳐 구체적인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