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그래서, 준비는 되어 있는가
처음부터 크게 기대를 모은 건 아니지만, 끝내 ‘혹시’는 지워지고 ‘역시’만 남았다. 반전의 묘미도, 유의미하게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이 이러했다면 혹평이 쏟아져 조기에 종영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영화 등 영상 작품을 평가하는 온라인 리뷰 사이트 ‘로튼토마토’라면 아마도 ‘신선도 0’의 형편없는 점수를주었을 만한 콘텐츠다. 점차 막바지를 향해 가는 이번 대선은 그렇게 흥미도, 의미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재미없음, 의미 없음은 국민의힘의 후보 경선에서 일찌감치 전조를 보였다. ‘키높이 구두’ ‘눈썹 문신’ 같은 인신공격성의 신변잡담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며 스스로 망가졌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추려는 의도에서 보여준 밸런스 게임 형식의 문답조차 가관이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바퀴벌레와 자동차 바퀴 중에서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식의 질문은 엉뚱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더라도 질타를 받았을 수준이다. “봉숭아 학당인가?” “이러니 개그 프로그램이 이겨낼 수 없지” 같은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요즘 초등학교 반장, 회장 선거도 이러지는 않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더욱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라고 좀 달랐을까. 이쪽은 아예 경선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할 만큼 큰 의미없이 지나갔다. 경선 룰이 잘못됐다고 비판한 김두관 전 의원과 김동연 지사가 출마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이런 식이면 추대를 하지, 경선을 왜 하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터다. 문제는 이런 ‘의미 없음, 재미없음’의 흐름이 시간이 지나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전의 날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데도 민주당은 ‘선거법 재판’과 싸우고, 국민의힘은 ‘후보 단일화’에만 필사적으로 매달린 이 선거는 유례없이 기괴하다. 모두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투표권을 지닌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다. 선거 과정에서 국민이 알고 싶은 내용은 여전히 뒤로 빠져 있거나 부실하게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선거가 후보의 자질이나 정책 대결이 아닌 정치공학의 놀이터로 변질되고, 수상한 변수에 따라 이해득실이 달라지면 국민이 행사하게 될 한 표의 의미는 터무니없이 가벼워지고 말 텐데도 그렇다.
국민은 누가 그럴싸하게 말을 잘하느냐를 보려는 게 아니다. 의미심장한 유머도 아닌 말장난 기술을 보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후보가 펼쳐 보일 국가 운영 계획 같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난데없는 어퍼컷 세리머니처럼 현란한 연기로 대중의 호응을 얻으려 한다면 파면당한 전 대통령처럼 ‘대통령 당선이 유일·최고의 업적’(그러니 “대통령 5년 하나, 3년 하나”와 같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이라는 평가를 받는 또 하나의 ‘의사(疑似) 대통령’을 가당치 않게 꿈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 알다시피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없이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만큼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콘텐츠 대결이 아닌 세 대결로 몰아가 ‘닥치고 승리’에만 몰두한다면 정말 답이 나올 수 없다, 이미 민주주의에 대해 온갖 험한 꼴을 보아온 유권자들은 80% 이상의 높은 투표 의향 응답률로 대선에 적극 임할 자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후보인 당신들은 그에 상응한 준비가 충분하게 되어있는가. 지금이라도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나는 정녕 누구를 위해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