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진법사의 ‘뭉칫돈’ 출처 미스터리 “대통령실 특활비 가능성”
검찰, 한국은행 현장조사 진행…전성배씨는 “기억나지 않아” 함구 ‘대선 도움’ 대가인가…“용산, 전씨 일가에 거리 둬” 반박도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한국은행 뭉칫돈의 출처가 대통령실 특수활동비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특활비는 정부의 특수한 활동에 지원되는 비용이다. 대통령실 경호처 등에 연간 100억원 이상이 지급됐다. 특수활동에 쓰이는 만큼 추적이 어렵다. ‘꼬리표가 없는 검은돈’으로 불리는 이유다.
검찰이 지난 4월 한국은행을 직접 찾아 돈의 출처를 추적했지만 명확한 실체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민간인은 구경하기도 힘든 돈이다. 전씨는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돕기 위해 공식 기구가 아닌 ‘양재동 캠프’를 진두지휘한 바 있다.
뭉칫돈에 찍힌 날짜, 尹의 대통령 취임 직후
논란이 되는 한국은행 뭉칫돈은 지난해 12월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前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 부장검사 박건욱)는 당시 2018년도 지방선거 공천헌금 수수 의혹(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전성배씨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다. 전씨의 서울 강남구 소재 은신처에서 현금 1억6500만원을 발견했다. 이 중 5만원권이 묶인 5000만원은 한국은행이 발행한 신권 다발이다. 비닐로 밀봉된 상태였다. 한국은행이 현금을 검수하고 밀봉한 시점은 2022년 5월13일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다. 실제로 유통된 시점은 그 이후라는 의미다. 비닐 겉면에는 기기 번호, 담당자 등이 기재돼 있다(시사저널 4월18일자 「[단독] 막후실세 건진 게이트 열리나…檢, ‘윤한홍 석산 민원’ ‘한은 뭉칫돈’ 정조준」 기사 참조).
일반적으로 5000만원 이상 한국은행 사용권을 소지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민간인이라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특정금융정보법)에 근거해 은행이 인출자의 정보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해야 한다. 정부 기관의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라면 추적이 어렵다. 특활비는 영수증이나 출처 증빙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활비가 권력자들의 ‘쌈짓돈’처럼 사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온 배경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이와 관련해 전씨 등에게 돈의 출처를 추궁한 바 있다. 전씨는 “보통 기도비 명목으로 현금을 받는다”면서도 “(뭉칫돈을 준 이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는 또 “기도를 요청한 이들은 돈을 ‘뭉태기’로 갖다준다”고 했다. 당사자인 전씨가 함구하면서 돈의 출처가 미궁에 빠졌다. 전씨 측근도 “전씨의 법당 등에서 이러한 돈다발을 본 적이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러자 검찰은 한국은행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답변 자료를 보면, 한국은행 측은 4월25일 검찰에 “해당 돈뭉치는 사용권으로 금융기관 등을 통해 수납한 화폐 중 검수해 통용에 적합하다고 판정한 후 포장한 화폐”라며 “전씨가 소지한 사용권은 강남에 있는 발권국에서 검수하고 포장했다”고 설명했다. 또 “금융기관이 필요한 화폐의 권종, 금액 및 상태를 한국은행에 청구하면 해당 요청일에 사전에 등록된 금융기관 현송책임자(화폐를 실어 보내는 자)에게 사용권을 지급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어느 금융기관에 지급됐는지는 한국은행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씨, 양재동 ‘비밀 캠프’ 꾸리고 尹 대선 도와
현재로서는 정부 기관의 특활비 가능성이 거론된다. 전씨가 소지한 사용권이 강남 소재 발권국에서 나온 사실을 토대로 대통령실 혹은 국가정보원이 거론됐다. 전직 대통령실 인사는 이에 대해 “통상적으로 특활비가 담긴 카드로 식사비 등을 결제하고 실제 현금을 소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용권에 찍힌 날짜, 무엇보다 대통령실이 2022년 5~7월 특활비 일부를 현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의문은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전씨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사용권의 형태와 관련해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발권한 후 특활비 명목으로 현금으로 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검수 날짜 등을 토대로 한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대통령실에 무게가 실린다”고 추측했다. 한국은행 강남 소재 발권국에서 검수한 사용권이 용산 대통령실에 있는 농협은행을 통해 특활비로 인출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씨가 연관된 ‘양재 캠프’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전씨는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사무실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지원하는 ‘비밀 캠프’를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되지 않은 비공식 기구를 사실상 운영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는 전씨가 ‘양재 캠프’를 진두지휘하며 선거에 관여했다고 입을 모은다.
검찰은 실제로 전씨의 선거 관여 정황을 포착한 바 있다. 전씨가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국민의힘 인사들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 자료를 보면, 당직자들은 물론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 등은 전씨에게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를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전씨는 윤 정부 출범 해인 2022년 지방선거에서 ‘윤핵관(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핵심 관계자)’ 인사들에게 주변인들의 공천을 부탁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전씨가 대선 후 윤 전 대통령 측에서 ‘대가’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대통령실은 정부 출범 후 전씨 일가를 상대로 ‘경고성 메시지’를 수차례 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내세운 전씨 일가의 이권 개입 시도 등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전씨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舊 통일교, 이하 가정연합) 전직 고위 간부 등이 윤 정부에서 벌인 여러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전씨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의문의 뭉칫돈 등도 규명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