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송골매 유기상·양준석이 완벽하게 날아올랐다

창원 LG의 감격적인 창단 첫 우승 이끌며 팀 세대 교체 완성 정규리그 1위 서울 SK, 사상 최초 리버스 스윕 노렸으나 ‘무산’

2025-05-24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프로농구(KBL) 2024~25 시즌이 창원 LG 세이커스의 극적 우승으로 8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LG는 챔피언결정전(7전 4선승제)에서 7차전까지 가는 끝장 승부 끝에 ‘정규리그 우승팀’ 서울 SK 나이츠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창단 28년 만의 첫 우승이라는 점에서 그 감격은 더 컸다.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쌍둥이 형제 감독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울산 현대 모비스(조동현 감독)와의 4강전에서 3연승으로 일찌감치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 LG(조상현 감독)는 기세를 몰아 1위 SK를 상대로도 먼저 3연승을 거뒀다. 1승만 더하면 대망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강호 SK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저런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는 루머에 시달리던 SK는 초반 3연패하는 동안엔 이상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정규시즌에서의 그 SK가 맞냐’는 얘기가 팬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전열을 재정비한 SK는 순식간에 3연승을 거두며 시리즈 전적을 3승 3패 동률로 만들어냈다.

5월17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4∼25 시즌 프로농구 서울 SK 나이츠와 창원 LG 세이커스의 챔피언결정전 7차전 경기에서 승리한 LG 선수들이 조상현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연합뉴스

주축 선수들의 부상을 영건들의 성장으로 메운 LG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다급해진 건 LG였다. 쫓기는 입장이기도 했거니와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우승도 없었다는 징크스로 인해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SK는 상승세를 탔고 7차전이 열리는 장소 역시 SK의 홈코트인 서울 잠실이라는 점에서 미국프로농구(NBA)에도 없던 리버스 스윕(3연패 후 4연승 우승)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조상현 감독은 최대한 편하게 선수들을 다독여줬고 결국 LG가 62대58로 7차전을 잡아내며 대망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LG에 이번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더욱 각별했다. KBL 역사상 구단명도, 연고지도 바뀌지 않은 유일한 구단일 정도로 팬들의 성원이 엄청난 팀이었는데 딱 하나 아쉬운 게 바로 우승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올 시즌 LG가 우승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은 SK를 비롯해 부산 KCC, 원주 DB, 수원 KT 등 전문가들이 꼽은 우승 후보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LG는 개막 3연승 이후 예기치 못한 8연패 늪에 빠졌고 한때 정규시즌 8위까지 순위가 내려가는 위기도 겪었다.

무엇보다 이관희·이재도를 보내면서 야심 차게 새로 영입한 전성현·두경민을 부상 등으로 인해 제대로 한번 써보지도 못했다는 부분이 컸다. 둘의 영입은 올 시즌 조상현 감독의 승부수였다. 최근 몇 시즌 동안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는 점에서 영입 당시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지만, 조 감독은 우승을 위해 뭔가 큰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성현·두경민은 사실상 전력 외가 되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기둥 외국인 선수 아셈 마레이가 11월초부터 약 한 달 동안 부상으로 결장했다. LG 팬들 사이에서도 ‘답이 없다’는 부정적인 얘기가 터져나왔다.

창원 LG 세이커스 양준석, 창원 LG 세이커스 유기상 ⓒ연합뉴스

기존 강호의 몰락, 하드콜 논란에 아시아쿼터 선수들 약진까지

하지만 조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베테랑의 공백을 영건인 유기상·양준석이 완벽하게 메워주며 오히려 둘을 중심으로 팀이 더욱 탄탄해졌다. 거기에는 양준석의 급성장이라는 호재가 컸다. 이미 유기상은 ‘3&D(3점슛과 수비에 집중하는 스타일)’ 유형의 선수로 입단 당시부터 꾸준하게 성장해 왔다. 그로 인해 진즉에 프랜차이즈 스타로 낙점받았다. 하지만 양준석은 달랐다. 202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대치는 컸지만 지난 시즌까지 부진을 거듭하며 ‘실패한 픽’이라는 혹평에 시달렸다. 무색무취의 플레이로 인해 드라마틱한 반등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였다.

놀랍게도 올 시즌 양준석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내에 몇 없는 정통 포인트가드로서 원활한 게임 리딩으로 LG의 공격을 이끌었고 클러치 상황에서 해결사 역할까지 해줬다. LG 팬들조차 신기해할 정도였다. 유기상·양준석은 젊은 선수답게 한 걸음 더 뛰는 활동량을 통해 수비에서도 공헌해 줬고 거기에 이전까지 철저히 무명이었던 정인덕이 궂은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조 감독이 원하는 에너지 넘치는 팀이 완성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번 정규시즌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KCC(9위)와 DB(7위)의 플레이오프 탈락이 대표적이다. DB는 2023~24 정규시즌 우승팀이었고, KCC는 챔피언결정전 우승팀이었다는 점에서 팬들의 충격은 컸다.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각각 차지했던 팀들이 나란히 ‘봄 농구’에 초대받지 못한 것은 역대 두 번째 사례다.

허웅·최준용·이승현·송교창 등 호화 멤버를 보유한 디펜딩챔피언 KCC는 우승 후보 0순위로 꼽혔으나 부상과의 전쟁에 시달린 끝에 18승36패에 머물렀으며, DB는 시즌 내내 중하위권에서 힘겨운 사투를 이어간 끝에 안양 정관장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서울 삼성은 올 시즌 역시 최약체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효범 신임 감독을 임명하며 의욕적으로 시즌을 맞이했지만, 개막 6연패로 시즌을 시작한 후 단 하루도 8위 이상의 순위를 찍지 못했다. 결과는 KBL 역대 최초 네 시즌 연속 최하위였다. 창단 2년 시즌을 치른 소노를 제외하면, 최근 네 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못 오른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상승세는 올 시즌 더욱 거셌다. 기존 이선 알바노(DB), 셈조세프 벨란겔(가스공사) 등은 여전히 잘했으며 칼 타마요(LG), 케빈 켐바오(소노), 하비 고메즈(정관장), 조엘 카굴랑안(KT) 등 새 얼굴들도 적응 기간 필요 없이 곧바로 팀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난 시즌까지 일본 B.리그에서 뛰었던 타마요는 LG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2cm의 큰 신장에 3점슛 등 다양한 득점 옵션을 앞세워 정규리그 50경기에서 평균 26분19초를 뛰며 15.1득점 5.8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아셈 마레이가 부상으로 결장하는 사이 LG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도 타마요의 존재감 덕분이었다. 각 팀의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주전급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상황인지라 국내 선수들의 경각심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드콜(몸싸움에 관대한 판정) 논란도 시즌 내내 계속됐다. 올 시즌 10개 구단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77.2점. 지난해(83.5점)보다 6.3점가량 하락한 수치이자, 최근 10시즌 가운데 가장 낮은 기록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하드콜 여파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체 접촉이 있어도 파울을 불지 않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선수들이 몸을 사리게 됐고, 공격 흐름 역시 끊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정을 거듭할수록 부상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시즌 막판엔 팀 간 신경전이 더 날카로워졌고, 마치 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격한 몸싸움과 감정 대립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꼭 하드콜 때문만은 아니다’는 반론도 있으나, 이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