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지금’ ‘4년 연임’ 개헌을 외친 이유 [최병천의 인사이트]
‘내란 진압’이 우선이라던 李, ‘안정적 지지율’ 업고 5·18에 개헌 카드 던져 노무현도 문재인도 실패했던 개헌…관건은 여야 합의 이끌어낼 ‘정치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광주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은 5월18일 페이스북에 ‘개헌’ 관련 글을 올렸다. ‘진짜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을 준비합시다’라는 제목이었다. A4 용지로 3장 정도 분량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밝힌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 수록 △대통령 4년 연임제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대통령 거부권 제한(본인 및 직계가족 비리와 관련된 법안이라면 원칙적으로 거부권 행사 제외) △대통령 산하 감사원의 국회 이관 △계엄 선포의 국회 사전 통보 및 승인 △국무총리 국회 추천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 방통위, 국가인권위의 국회 동의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페지 △지방자치권 강화 등의 내용이다.
이 후보가 밝힌 개헌안은 그간 논의되던 연장선상에 있었다.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담고,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권한은 축소, 국회 권한은 강화하는 내용이다.
왜 중임 아닌 연임? ‘정책 연속성’ 고려한 선택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왜 지금 ‘시점’에 개헌안을 제시했는가? 둘째, 그간 대통령 ‘4년 중임제’ 주장이 일반적인데, 이 후보는 왜 ‘4년 연임제’를 주장하는 것일까?
먼저, 왜 지금이었을까? 4월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이 있은 직후 4월6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을 마련하고, 대선에서 동시투표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와 가까운 사람들은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우 의장은 며칠 후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이처럼 이 후보 쪽은 개헌에 소극적이었다. ‘내란 심판’이 우선인데, 논점이 흐려질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럼 왜 지금은 개헌안을 밝혔을까? 표면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선의 압승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개헌안을 발표한다고 지지율이 출렁거리거나, 보수의 재결집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언젠가는 개헌에 대한 의지와 내용을 밝힐 필요가 있었는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제격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다른 이유도 추정해볼 수 있다. 역대 모든 대통령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을 가졌다. 이 후보 역시 실제로 개헌을 성사시켜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다.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큰 꿈이 있어야 동기 유발도 된다.
둘째, 왜 ‘4년 중임제’가 아니라 ‘4년 연임제’를 주장한 것일까? 국민의힘은 4년 연임제는 ‘푸틴식 장기집권’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2항은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4년 연임을 하든, 4년 중임을 하든, 당선된 이후의 이 후보에겐 어차피 해당 사항이 없다. 국민의힘 비판은 억측에 불과하다.
왜 4년 중임이 아니라, 4년 연임이었을까? 이 후보 자신이 이에 대해 명확히 밝힌 건 없다. 참고로, 중임(重任)과 연임(連任)의 개념 차이를 짚어보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좋은 사례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202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미국의 경우 ‘중임’이 허용된다. 트럼프는 2024년에 다시 출마하는 게 가능했다. 만일 연임만 허용했다면 2024년에 다시 출마할 수 없었다. 중임은 ‘아무튼, 2회까지’ 허용되는 경우다. 연임은 ‘연달아서, 2회까지’만 허용된다. 연임은 중임의 부분집합이다.
그럼 왜 연임이었을까? 하나의 해석은 연임이 ‘헌법 개정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헌법 개정의 취지는 5년 단임제는 너무 단기적이어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고려한다면, 4년 중임제보다는 4년 연임제가 개헌의 원래 취지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의문점이 생긴다. 국민의힘은 왜 ‘4년 연임’에 대해서는 장기집권 음모라고 주장하며 반대하는 것일까? 개헌 내용만 보면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적인 내용이 많다.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은 특히 좋은 개혁이다. 다당제를 촉진해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고, ‘좋은 지도자’를 배출하는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감사원의 국회 이관, 대통령의 거부권 제한, 계엄 선포의 국회 사전 동의, 국무총리 국회 추천, 중립적 기관장의 국회 동의는 모두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개혁적인’ 내용들이다. 그런데 왜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일까? 이 질문은 ‘개헌은 실제로 실현될 것인가?’라는 질문과도 직결된다.
개헌 성사 여부는 ‘다수당’ 민주당에 달려
개헌의 성사 가능성을 살펴보려면, 개헌의 절차를 짚어봐야 한다. 헌법 개정은 세 가지 경로를 거쳐 이뤄진다. ①대통령 또는 국회 과반 발의→②국회 2/3 의결→③국민투표 과반 동의. 1987년 민주화 이후 실제로 헌법안이 마련되어 발의된 적은 딱 한 번이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만들어 실제 발의했다. 당시 민주당 의석수는 과반이 안 돼 자동 폐기됐다.
2007년 초 노무현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한나라당(현재 국민의힘)은 반대했다. 4년 연임의 내용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금 시기’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정치적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을 경계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 대다수는 개헌을 하고 싶어 했다. 그때마다 야당이 반대했다. 왜? 개헌이 실제로 성사되면 현직 대통령에게 ‘위대한 업적’을 남겨주고, ‘정치적 주도권’이 넘어갈 것을 우려했다. 그럴 경우 야당 입장에서는 다가오는 ‘큰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봤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일 6·3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승리하고 개헌을 제안할 경우 국민의힘과 보수언론도 ‘개헌 반대’ 입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개헌은 다시 불발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때 관건은 이재명의 ‘정치력’이다. 현재 범야권 의석수는 193석이다. 7명 이상을 추가로 설득해야 한다. 야당과 충분히 협의하고, 최소한 7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는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개헌의 성사 가능성은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치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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