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유럽 무대 첫 트로피 ‘감격’… 작별의 시간도 다가오다
잉글랜드 토트넘에 바친 10년 헌신과 충성…무관의 恨 씻어 에이징커브 의심 속에 팀 내 입지 약화…불미스러운 개인사 논란도
손흥민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찾던 마지막 퍼즐을 드디어 맞췄다. 아시아 축구의 한계를 뚫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득점왕에 오르는 등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지만 그에게 유일하게 빠졌던 ‘우승’이라는 커리어의 공백을 채운 것이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조각을 10년 동안 찾고 있었다”고 말한 손흥민이 한을 풀었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는 한국시간 5월22일 새벽 스페인 빌바오의 산마메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25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1대0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벤치에서 출발한 손흥민은 후반 22분 히샬리송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다. 전반 42분 브래넌 존슨의 선제골로 앞선 토트넘은 맨유의 후반 대공세를 막아내며 1골 차 리드를 끝내 지켰다. 후반 추가시간까지 약 30분 동안 적극적인 압박과 수비 가담을 펼친 손흥민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감격이 복받친 듯 그라운드 위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5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들어올리는 메이저 트로피였다.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손흥민은 15년 동안 단 하나의 우승컵도 들지 못했다. 2016~17 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20~21 시즌 카라바오컵(리그컵) 준우승 등 고비 때마다 무너졌다. 국가대표로도 정상에 설 수 없었다. 2015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현 토트넘 감독인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끄는 개최국 호주에 연장 접전 끝에 패하고 말았다.
토트넘은 EPL과 각종 토너먼트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기엔 전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었다. 마지막 우승은 2007~08 시즌의 칼링컵(리그컵)이었다. 우승 문턱에서 좌절할 때마다 손흥민의 무관 신세를 조롱하고, 이적을 종용하는 목소리가 컸다. 실제로 20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라인업 중 손흥민을 제외한 10명은 지금 모두 토트넘을 떠나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적지 않은 선수가 새로운 팀에서 우승 경험을 했다. 오직 손흥민만 두 차례 계약을 연장하며 잔류해 토트넘과 함께하는 우승 도전을 이어갔다.
“오늘만큼은 손흥민을 위한 시간이길 원했다”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토트넘은 올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EPL 최종전을 남겨놓고 20개 팀 중 17위를 기록 중이다. 간신히 강등은 피했지만, EPL 출범 후 지난 32년 동안 거둔 최악의 리그 성적이다. 아이러니하게 유로파리그 우승에 성공하며 17년의 무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우승으로 리그 성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권도 확보했다.
손흥민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토트넘이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중요한 과정에서 부상으로 신음했다. 프랑크푸르트(독일)와의 8강 1차전 이후 발 부상으로 인해 한 달여간 결장했다. 보되/클림트(노르웨이)와의 4강 1·2차전엔 모두 결장했다. 맨유와의 결승전에서도 기여도가 높지 않았다. 토트넘 선수 중 가장 낮은 평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우승이 확정되자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손흥민에게 향했다. 올 시즌이 아닌, 지난 10년의 기다림에 대한 헌사였다. 토트넘과 손흥민이 긴 시간 동안 견뎌온 무관을 벗어난 것이 이번 우승의 가장 큰 서사였다. 가장 먼저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건네받아 동료들 앞에서 환호하는 세리머니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경기 후 중계사 공식 인터뷰에 초청받은 주인공도 토트넘과 아픔을 함께해온 유일한 선수인 주장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경기가 끝난 뒤 맨유와 토트넘의 레전드인 리오 퍼디낸드, 가레스 베일이 진행하는 TNT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어서 기쁘다”며 “오늘만큼은 토트넘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7년 동안 위대한 선수들이 팀을 거쳐갔지만 그들이 못 해낸 것을 해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며 미소를 보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도 손흥민의 첫 트로피에 큰 의미를 뒀다. 그는 “10년을 기다린 손흥민에게 이런 순간이 오길 바랐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는 과거의 우승 사진과 레전드들의 모습이 있는데 손흥민에게 ‘널 저 자리로 올려보내야 해’라고 말했다”며 트로피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여친 ‘임신 협박’에 가족 징계까지…‘국대 캡틴’ 이미지 타격
손흥민과 함께 8년 동안 동고동락한 케인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2023년 여름 토트넘을 떠나 뮌헨으로 향한 케인은 이번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에 성공하며 조금 앞서 무관에서 탈출했다. 손흥민은 결승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케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더니 곧바로 영상통화를 걸어오더라. (우승을) 굉장히 자랑했다”고 말했다. 케인은 손흥민이 자신의 SNS에 우승을 자축하는 게시물을 올리자 “형제여, 정말 축하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마지막 순간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이번 시즌은 손흥민 개인에게도 최악의 시간이었다. 성적 부진에 따른 비판과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팬들은 포스테코글루 감독과 함께 손흥민에게도 많은 야유를 보냈다. 이번 시즌 치른 46차례의 공식전(EPL 30경기, 유로파리그 10경기, 리그컵 4경기, FA컵 2경기)에서 손흥민은 11골 12도움을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시즌 ‘10골-10도움’을 돌파했지만, 지난 10시즌 동안의 퍼포먼스와 비교하면 저조한 게 사실이다. 특히 EPL에서 7골에 그쳤다. 토트넘 데뷔 후 손흥민이 정규리그에서 10골을 돌파하지 못한 것은 부상과 적응 문제가 있었던 2015~16 시즌의 4골 이후 9년 만이다. 팀 내 득점 순위도 4위로 밀렸다.
그토록 원했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올 시즌 손흥민의 성적표는 에이징커브(나이가 들며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현상)를 의심할 만한 근거가 됐다. 손흥민의 트레이드마크인 폭발적인 스피드와 강력한 슈팅을 이용한 마무리가 예전 같지 않자, 결정력도 함께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토트넘도 이런 현상을 지켜보며 손흥민과의 새로운 재계약 협상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장기 계약이 아닌 1년 연장 옵션만 가동했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사우디아라비아 이적설을 비롯해 타 팀으로 옮겨간다는 루머가 쏟아졌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을 앞두고는 축구 외적인 불미스러운 개인사로 인해 이슈의 중심에 섰다. 20대 여성이 손흥민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돈을 요구하고 협박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경찰은 손흥민을 협박한 혐의로 이 여성과 40대 남성을 구속해 수사 중이고, 최근 서울중앙지검 형사 3부에 사건이 배당됐다. 아버지 손웅정 감독과 친형 손흥윤 수석코치가 운영 중인 ‘SON 축구아카데미’도 아동학대 논란으로 법적 처벌과 체육단체 징계를 받았다. 바른 청년, 모범적인 가족, ‘국가대표 캡틴’의 이미지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시련의 순간을 커리어 첫 우승으로 극복했지만, 우승의 환희 이후 찾아올 현실은 냉정하다. 결별의 징후가 나오는 상황에서 토트넘이 다음 시즌 어떤 방향으로 팀을 운영할 것인가가 중요한 상황이 됐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유로파리그 우승을 했음에도 경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토트넘도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한 리빌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개편 흐름 속에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은 손흥민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 토트넘과 작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