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대로 달리다 고꾸라진 홍명보, 다시 반등의 기회 잡다

2014 브라질월드컵 실패를 성공의 자산으로 “그땐 선수 파악에 바빠…지금은 파악 다 끝났다” 자신감

2025-06-14     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축구인 홍명보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전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선수로서는 오랜 시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리더로 위상을 떨쳤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도 이뤄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2009년에는 이집트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했고, 2012년에는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란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달성했다. 박주영·구자철·기성용·김영권·김승규·지동원 등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은 이후 긴 시간 동안 한국 축구의 기둥이 됐다.

하지만 그 기세를 타고 도전한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호는 1무2패로 탈락하는 최악의 부진을 겪고 말았다. 본선 진출 확정 후 A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1년도 안 되는 짧은 준비 기간이 주어진 것이 문제였지만, 그 과정에서 ‘의리축구’ 논란으로 압박을 받았다. 경기 출전에 애를 먹는 해외파를 결국 중용하는 선택을 하며 스스로가 강조한 원칙을 위배하는 모습도 국민과 팬들에겐 실망스러운 대목이었다. 

6월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 한국과 쿠웨이트의 경기.홍명보 한국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으로 홍역 치러

브라질월드컵의 실패는 한동안 한국 축구계에서 홍명보라는 이름이 사라질 정도의 충격을 줬다. 1년 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칩거하던 홍명보 감독은 2016년 중국 클럽팀(항저우 뤼청)의 지휘봉을 잡으며 현장에 돌아왔다. 그나마도 팀의 강등과 함께 1년6개월여 만에 중국 생활은 종료됐다. 계속되는 악재였다.

재기의 기회는 행정가였다. 2017년 11월 대한축구협회 신임 전무로 선임됐고, 당시 ‘적폐’로 몰리며 심각한 민심 이반 현상에 직면한 조직을 빠르게 재정비했다. 행정 총괄자로서 보낸 그 3년 동안 축구협회는 원칙과 프로세스에 기반한 일처리로 모처럼 호평받았다. 축구협회 내부에서도 홍명보 전무의 리더십과 소통에 직원들이 크게 의존할 정도였다.

2021년 홍명보 감독은 울산 현대(현 울산HD)의 사령탑으로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2022년 울산에 무려 17년 만의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겼고, 2023년 2연패에 성공했다. 2024년 3연패를 향해 순항하던 중 홍 감독은 돌연 A대표팀 감독으로 떠났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5개월 동안 신임 감독 선임에 거듭 실패한 축구협회가 10년 만에 홍 감독을 복귀시키는 결정을 한 것. 그러나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논란과 함께 당초 대표팀 감독직 수락 의사가 없었다던 그의 태세 전환은 여론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본선행 확정 후 A대표팀을 맡은 브라질월드컵과 달리 이번엔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을 통과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은 홍명보 감독은 미션을 달성했다. 6월6일(이하 한국시간) 원정에서 이라크를 2대0으로 제압하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은 데 이어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예선 최종 10차전에서는 4대0 대승을 거뒀다.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이재성·황희찬 등을 선발에서 빼고 이강인·황인범을 중심으로 오현규·배준호·전진우를 공격에 배치했다. 선발 출전 기회를 기다린 젊은 선수들의 강한 동기부여를 끌어내며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6월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동아시아대회에서 새 얼굴 발굴 계획

이날 승리로 한국은 예선 10경기에서 6승4무, 승점 22점으로 B조 1위를 확정했다. 16년 만의 월드컵 예선 무패 기록도 썼다. 2차 예선 6경기를 포함해 총 11승5무의 성적표를 썼다. 홍명보 감독은 쿠웨이트전을 마친 뒤 빠르게 본선 준비 모드로 전환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자세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변화를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선수들뿐 아니라 행정적인 측면까지 매뉴얼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앞 수레가 엎어지면 뒤 수레는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다는 사자성어 전거지감(前車之鑑)처럼 2014년의 실패를 2026년의 성공을 위한 소중한 자산과 학습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홍명보 감독은 “과거 월드컵을 1년 앞두고 대표팀을 맡은 적이 있다. 선수 파악에만 시간을 썼다”면서 “지금은 선수 파악이 끝났으니 월드컵 무대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하기 위해 로드맵을 확실히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지난 10개월간의 월드컵 예선을 통해 선수단 구성의 밑그림을 그린 만큼 경쟁이 될 만한 새 얼굴 발굴, 수준 높은 상대와의 친선전을 통한 경쟁력 향상, 월드컵이 열리는 북중미 지역 현지 실사를 통한 환경 적응 등이 남은 시간의 과제다. 오는 7월 열리는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은 새 얼굴 발굴의 기회다. 유럽파를 소집할 수 없기 때문에 K리거를 중심으로 일본·중국·홍콩과 경기를 치러야 한다. 홍 감독은 이 기간에 그동안 관찰하고 마음에 둔 국내파를 대거 발탁할 예정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월드컵 11회 연속 본선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 만큼 원정 월드컵에서 최초의 8강 진출이란 목표를 내걸고 있다.   

 

■ ‘48개국 확대’ 수혜도 걷어찬 중국, “월드컵 개최만이 답” 자조

한국이 11회 연속, 일본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속이 타는 국가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이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3승7패를 기록, C조 6개국 중 5위로 탈락이 확정됐다. 당초 중국은 월드컵 본선이 48개국 체제로 확대되면서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아시아 지역은 기존에 배정된 본선 티켓이 4.5장에서 8.5장으로 대폭 늘어났다. 3차 예선 3개 조 1·2위는 본선 직행이고 3·4위는 플레이오프를 통한 추가 기회가 있다. 하지만 중국은 플레이오프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탈락했다.

FIFA가 북중미월드컵부터 본선 출전국을 48개국으로 늘린 건 상업적 목적이 크다. 참가국에 더 많은 수익을 배당하기 위해서는 중계권과 스폰서 계약에서 규모를 확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경기 수를 늘리는 게 필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만일 중국이 본선에 오르면 엄청난 열기가 더해져 상업적 수익을 늘리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FIFA도 출전권 확대를 통해 중국이 본선 무대에 오를 것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결과는 또 실패였다.

중국의 본선 참가 경력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유일하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확보하며 예선에서 빠졌고,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같은 강호를 피한 중국은 B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후 24년째 본선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2006년, 2010년, 2014년 월드컵 당시엔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14억 인구 중 메시 같은 재능을 지닌 인물이 없겠나, 어딘가에서 농사짓고 있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이제 중국 축구팬들에게 뼈아프게 다가온다.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진핑 주석이 “월드컵에 중국이 다시 나가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지만 현 상태라면 개최국 자격으로 나가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자조적인 평가만 가득하다.

중국 축구가 지난 10년 넘게 많은 투자를 했지만, 자국 선수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조치가 없었던 결과이기도 하다. 중국은 많은 인구에 비해 정식으로 축구를 하는 등록 선수가 적다. 8만명에 그쳐 한국의 20만명, 일본의 50만명에 훨씬 못미친다. 지도자 역량도 문제다. 성장하는 어린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는 정식 지도자가 부족해 각 지역의 유스 지도자조차 유럽과 한국에서 수입해 오는 실정이다. 절대적인 선수 숫자가 적고, 성장 단계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데 성인 단계에서 유명 지도자를 끌어온들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는 의미다.

중국 축구는 근시안적 행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귀화 선수였다. 자국 리그에서 활약하는 브라질 출신 선수와 혼혈 3·4세 선수를 대거 국가대표에 합류시켰다. 그러나 이 선수들의 역량이 조직적이고 헌신적인 플레이로 승화되지 않으면서 귀화 선수들에게 들인 비용만 날리고 말았다. FIFA 랭킹 99위의 중국은 이제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에도 추월당할 위기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