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지운 李 ‘사법 리스크’…여론 따라 ‘뇌관’ 움직인다

“이 대통령, ‘무리할 필요 있나’ 의견 전달”…민주당, 사법 개혁 ‘일시 멈춤’ 급선회 정부·여당과 사법부의 밀당, 사법 개혁 기조 속 장기화할 가능성

2025-06-13     이혜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법정 시계’가 일단 멈췄다. 유권자의 선택으로 국정 최고책임자의 시간을 부여받은 이 대통령은 ‘입법 강행’ 없이 ‘사법 리스크’를 잠재웠다. 대선 기간과 새 정부 출범 이후까지 이 대통령을 집요하게 따라다닌 ‘헌법 84조 해석’이 일단락되면서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 개혁 법안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민생경제 회복’과 ‘통합’에 방점을 둔 이 대통령의 의지에 집권여당도 대법관 증원을 포함한 개혁 법안 추진 속도를 조절하며 보조를 맞췄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뇌관이 ‘여론’에 따라 되살아날 경우 국정 수행 동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혜경 여사, 조희대 대법원장, 이 대통령, 김형두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시사저널 이종현

‘재판 중단’ 결정나오자 쟁점 법안도 ‘제동’

이재명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법관 증원’을 중심으로 일련의 사법 개혁안을 추진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한발 물러섰다. 정권 초기에 집권여당과 사법부가 전례 없는 대치 국면을 연출할 것이란 우려는 일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묘한 긴장감 속에 첫 악수를 나눴던 6월4일 대통령 취임식 당일, 대법관을 현재 14명에서 30명(1년 유예 후 4년 동안 연간 4명씩 16명 증원)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의결하며 사법부를 정조준했다. 6월12일 국회 본회의 의결까지 속전속결로 처리될 것이란 전망은 그러나 예상을 깨고 ‘일시 멈춤’으로 급선회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쟁점 법안과 관련한 민주당의 ‘셀프 제동’ 중심에는 속도 조절 없이는 ‘명분’과 ‘실리’ 그리고 ‘민심’을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판단이 있었다. 새 정부 출범 닷새 후인 6월9일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 기일을 ‘추후 지정(추정)’하며 재판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 이 같은 판단의 변곡점이 됐다.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에 따라 재판을 중지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오면서 대통령실과 여당 내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민생 회복과 국가 시스템 정상화, 위기 극복 등을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법관 증원을 포함한 쟁점 법안을) 무리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냈다”며 법원의 재판 중지 결정이 나온 상태에서 정권 초반 ‘입법 독주’ 프레임에 갇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조기 대선까지 6개월간 국가적 혼돈과 분열, 갈등이 이어져온 상황인 점을 지적하며 민생법안이 아닌 사항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경우 “국민적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법안 처리와 관련해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 등 핵심 참모진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했고, 6월10일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파악된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오전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대법관 증원법안 처리를 새 원내 지도부의 판단에 맡길 것이라며 ‘6월12일 본회의 처리 계획’ 철회를 공식화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6월11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파기환송심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한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현장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죄 아닌 중지…정치와 사법의 균형 기한 것”

이 대통령의 마지막 ‘사법 리스크’였던 재임 중 형사재판 진행 가능성은 결국 입법이 아닌 법원의 판단으로 일시 봉합됐다. 5개의 형사재판 중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서울고법) △검사 사칭 위증교사 2심(서울고법)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1심(서울중앙지법) 재판이 ‘기일 추후 지정(추정)’으로 중단됐다. 수원지법에서 1심이 진행 중인 △쌍방울 대북 송금 △경기도 예산 사적 유용 사건에도 동일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를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공소 유지와 재판도 정지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치와 사법, 민주주의와 법치의 균형을 기하자는 것이며 법 앞의 평등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재판부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형사재판을 ‘임기 내 중단’하는 결정을 한 것으로, ‘무죄’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며 “재판권을 대통령 재직 기간에 한해 정지하는 것은 헌법 84조 해석의 다수설인 동시에 상식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진영적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임기가 종료된 후 재개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 추진에 반발하던 대법원도 국회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후속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이 현행 사법 체계 전반은 물론 전 국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니만큼 신중한 접근과 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 증원법이 법사소위를 통과한 이튿날인 6월5일 출근길에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본래 기능이 무엇인지,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무엇인지를 계속 국회에 설명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며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에) 좀 더 설명을 드리고 계속 논의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이 현안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비상계엄 사태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속도전에 따른 후폭풍이 몰아칠 때도 조 대법원장은 침묵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집권여당의 예고대로 ‘대법관 증원’ 추진이 가시화되자 입법부와 사법부 간 ‘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조 대법원장의 일성은 역설적으로 이재명 정부에서 대법관 증원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 대법원장이 ‘국회에 설명’ ‘협조’ ‘공론’ ‘논의’ 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거대 여당을 자극하지 않고 사법 개혁의 수위 조절을 시도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법관 증원 필요성은 역대 정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온 사안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야는 ‘정권의 사법부 장악 시도’라며 공수의 위치를 바꿔 극한 대립했고, 사법부도 반발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매번 원점으로 회귀했다. 민주당은 최근 5년간 접수된 상고심 건수가 4만4000건을 넘어서고 대법관 1명당 연간 약 4000건씩을 처리한다는 점에서 증원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심 결정 직후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며 후순위에 뒀던 사법 개혁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정권 차원의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변호사 단체와 법조계는 전반적으로 대법관 증원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다. 대한변협은 성명을 내고 “상고심 지연 방지 및 충실한 재판을 위해 대법관 증원은 필요하다”며 “대법관 증원은 구성의 다양성까지 확대하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상고심 제도 개선을 위해 대안으로 거론된 상고허가제나 고등법원 내 상고부 설치 등은 상고심 사건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대법원 기능 왜곡과 전관예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국회와 사법부의 실효성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진단이다.

김선수 전 대법관 ⓒ연합뉴스

‘진보 성향’ 김선수, 與 주도 대법관 증원에 우려

정반대 제언도 나온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선수 전 대법관은 6월12일 법률신문 기고문을 통해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하급심 강화라는 법원의 근본적 개혁 방향과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며 “법원 관련 제도의 개혁은 국민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 기획추진단장을 맡아 법조 일원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 30명이 현실화할 경우 “빈번한 인사청문회와 임명 지연 등으로 혼란과 재판 공백이 야기될 우려도 있다”며 오히려 “하급심, 특히 1심 판사를 증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또 대법관 증원 여부는 단순 숫자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며 소부 구성과 전문재판부 운영 여부, 이에 따른 전원합의체 규모를 면밀히 고려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될 재판소원 도입을 위한 헌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헌재법만 개정해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위헌이며, 비용을 감당할 강자와 부자만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 전 대법관은 개혁과제를 단기(6개월 내)와 중장기(6개월~1년)로 구분해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졸속 추진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법원행정처는 일시 보류된 사법 개혁 법안 처리가 곧 재가동될 것으로 보고 국회에 제출할 의견서를 준비 중이다. 대법관 증원을 포함해 사법 개혁 논의 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사법부의 입장을 적극 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원행정처 측은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특정 증원 규모에 매몰돼 있지 않다”며 “대법관 증원은 상고 제도 전반에 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고 또 필수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 우려되는 사안부터 논의가 필요한 부분을 총망라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이를 토대로 국회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법원행정처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전원합의체 판결이 부실화될 수 있고 증원에 앞서 1·2심 하급심을 강화하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12일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수해(장마) 대비 현장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살아있는 뇌관…관건은 이 대통령 지지율

현재는 일시 멈춤이지만 정부·여당과 사법부의 줄다리기는 사법 개혁 기조 속에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 사법 개혁 완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고, 민주당은 입법으로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는 한편 대법관 증원도 시점의 문제일 뿐 차질 없이 추진하는 데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특검 카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전운은 쉽게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 등을 관리하기 위한 ‘법관평가위원회 설치’도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 현행 제도에선 소속 법원장이 개별 판사에 대한 평가를 한 뒤 이를 근거로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행사한다. 만일 법관을 평가하는 별도 위원회가 설치되면 대법원장의 인사권 침해 우려와 함께 위원 임명 및 운영 체계에 따라 법관 평가가 왜곡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사법부의 독립과 연관해 진통이 뒤따를 수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헌법 84조’ 해석에 따른 재판 중지 결정을 비판하며 민주당과 사법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은 일제히 사법부를 민주당의 ‘괴물 독재’ 공범으로 지목하며 “재판 속개” 압박에 나섰다. 이 대통령 임기 내 16명의 신임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면 정치적 편향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사법 암흑’이 전개될 것이라며 이 또한 총력전을 벌여 막겠다는 태세다.

사법 개혁을 추진하는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방탄 입법’과 ‘조희대 특검’ 등을 추진하는 동력은 결국 ‘여론’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론 추이에 따라 뇌관이 이 대통령과 여당에 악재로 작동할 수도, 개혁에 저항하는 사법부를 향해 국민이 더 센 청구서를 내밀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율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 소장은 “‘재판 진행이 필요하다’는 중도층 여론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는 돼야 한다”며 “만일 대선 득표율(49.42%)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곧바로 (법원의 재판 중지나 입법 여부와 별개로) ‘대통령이 형사재판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보수진영의 공격과 함께 사법 리스크가 되살아나고 국정 운영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