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당의 스테이블 코인 정책이 우려스러운 이유

2025-06-13     이진우 앵커
ⓒ로이터=연합뉴스

은행에 10만원을 예금해 놓았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 10만원을 인출할 수 있고, 그 돈의 가치는 언제 어디서나 10만원이다. 가치가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므로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스테이블(stable) 예금’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우리는 여윳돈이 생기면 그걸 이렇게 스테이블한 예금에 묻어둔다. 은행은 이 스테이블 예금을 바탕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사람들은 대출받은 돈으로 공장도 짓고 가게도 열고 집도 산다. 그렇게 경제는 돌아간다.  

요즘 우리나라의 은행들은 평균 2.6% 정도의 금리로 예금을 받고 대략 4% 정도의 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은행들이 대출 대신 연 수익률이 4.4%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 어떻게 될까. 은행들은 대략 연 4% 정도의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고 있는데 미국 국채는 수익률이 연 4.4%이니 돈을 더 벌 수 있다. 대출을 해줬다가는 가끔 떼이는 경우도 생기지만 미국 국채는 그럴 일이 없으니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는 마비될 것이다. 은행들이 대출은 안 해주고 안전한 국채만 사들이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받을 곳이 없게 된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금융 당국은 은행들이 이런 일을 못 하게 규제하거나 금하고 있다. 

요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스테이블 코인은 앞서 언급한 스테이블 예금과 거의 같은 개념이다.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회사에 1만원을 맡기면 1만원어치 스테이블 코인을 내 계좌에 넣어준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신용카드나 현금을 사용하듯 쓸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은행 예금과 동일하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 발행회사는 그렇게 받은 돈 1만원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인 국채를 사들인다. 사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그렇게 규제하고 강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다. 그런 규제가 없으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회사는 고객들에게 받은 돈을 함부로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도 스테이블 코인 발행회사는 고객들에게 받은 돈을 모두 미국 국채를 매입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만약 스테이블 코인이 점점 더 인기를 얻어 사용처가 다양해지면 사람들은 은행의 스테이블 예금 대신 스테이블 코인을 구매해 계좌에 넣어둘 것이다. 은행들로부터 예금이 빠져나가면 은행들은 대출해줄 재원이 부족해진다. 대출받으려는 사람들은 대출을 못 받고 그 대신 스테이블 코인 회사는 몰려드는 돈만큼 국채를 사야 하니 국채 품귀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 결과, 장기 국채 금리는 하락할 것이다. 

반면 은행들은 예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예금 금리를 높일 것이고 그러면 단기 금리는 가파르게 올라간다. 이른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인데, 이런 일이 지속되면 단기로 돈을 빌려 장기로 대출해주는 은행의 사업모델은 무너진다. 예금만 받고 대출은 안 해주는 스테이블 코인의 사업 모델은 이렇게 은행과 공존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사람들이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신기한 상품을 좋아하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그걸 도입하고 발행해야 한다면 그 업무는 반드시 은행이 담당해야 하고, 은행은 그렇게 스테이블 코인을 판매한 돈을 종전처럼 대출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앞서 설명한 파국을 막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억원 이상 자기자본이 있는 국내 법인이면 어느 곳에나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추진하는 일인지 매우 걱정스럽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