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못 열겠다”…‘대선후보 교체 파동’ 감사 뭉개는 국민의힘 주류
친한계 “선거 망친 원인 알아야 재발 방지” vs 친윤계 “불난 집 들쑤시나” ‘쇄신’ 대신 ‘당권’ 싸움으로 비쳐…“조용히 버티자는 기류가 대세”
“개혁과 쇄신에는 반드시 피가 따를 수밖에 없다.”(친한동훈계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
“대여 공세에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또 분열 씨앗을 만드나.”(친윤석열계 국민의힘 의원)
국민의힘이 자당 출신의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라는 직격탄을 연타로 맞으며 코너에 몰린 가운데,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발생했던 ‘대선후보 교체 파동’ 등을 타깃으로 당무감사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들었다. 당무감사를 하는 목적과 본질은 민주 정당이라는 정체성에 반하는 ‘구태’ 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쇄신’의 길을 찾는 것이지만, 정작 국민의힘 내에서는 차기 당권 경쟁과 맞불려 당무감사가 다시금 계파 간 갈등의 불씨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친윤 파워’ 확인 송언석, ‘김용태 개혁안’ 거부
대선 정국이 한창이던 5월10일 새벽, 국민의힘에선 정당 사상 초유의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지도부가 일주일 전 전당대회를 통해 최종 선출된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강제 단일화, 사실상 ‘후보 교체’하기 위해 한밤의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새벽에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 회의를 동시에 열고 ‘대통령 후보 선출 절차 심의 요구’ ‘김문수 후보 선출 취소’ ‘한덕수 전 총리 입당 및 후보 등록’ 안건 처리부터 전 당원 대상 ‘단일화 찬반 투표’까지 일련의 과정을 전광석화로 진행했다.
해당 사실을 몰랐던 김 후보는 같은 날 아침에야 격앙된 표정으로 나타나 ‘반민주적 후보 교체’라고 질타하며 대통령 후보자 취소 효력 정지를 서울남부지법에 신청했다. 당내에서도 “북한도 이렇게는 안 한다”(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한밤중 계엄에 이은 후보 약탈 교체로 파이널(마지막) 자폭”(홍준표 전 대구시장), “당 지도부는 당원들과 국민들이 잠든 한밤중에 기습 쿠데타처럼 새 후보를 추대하는 막장극을 자행하고 있다”(안철수 의원) 등 질타가 쏟아졌다.
결국 해당 소동은 국민의힘 당원들의 결단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대선후보 변경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 당초 예상과 달리 반대표가 찬성보다 많이 나와 부결된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껏 깜깜이 상태다. 또 당시 지도부가 밀어붙인 ‘강제 단일화 프로젝트’ 설계는 누가 했는지, ‘지도부 3부 요인’이었던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이양수 전 사무총장과 실무진은 회의 당시 어떤 발언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는지 그 막전막후는 알려진 바가 없다.
권 전 위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선 패배 후 당 쇄신안의 하나로 ‘후보 교체 파동 당무감사’를 진행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연루자 징계를 최종 목표로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다수 당원이 분노했던 사안에 대한 책임 소재를 밝혀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교정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결국 당무감사 결과가 나오면 후속 내부 징계 절차도 자연스레 이어질 수밖에 없다.
취재에 따르면, 유일준 당무감사위원장을 필두로 한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6월12일 김용태 위원장 면담을 시작으로 단일화 소동에 관여한 비상대책위원 면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소동 주동자로 꼽히는 당시 지도부 3부 요인을 비롯해 실무진과 당내 의원들까지 조사 범위에 포함시키는 안도 당초 염두에 뒀다는 전언이다. 다만 김 위원장의 임기가 열흘도 남지 않은 데다 당내에서 반발이 거세져 추진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권영세 “김용태도 당시 후보 교체에 찬성”
당내 주류인 친윤(親윤석열)계에선 ‘불난 집을 들쑤시는 격’이라며 반기를 들고 있다. 소동의 주역으로 꼽히는 권영세 전 위원장도 모든 과정이 법이나 당헌·당규를 어기지 않고 합법적으로 진행됐다고 못 박았다. 그는 TV조선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서 당시 상황과 관련해 “단일화 데드라인이 5월11일 저녁이었다. 이를 맞추려면 전 당원을 대상으로 단일화 승인 등 모든 절차가 전날 아침 9시까지는 이뤄져야 했었다”며 “시간적 여유가 도저히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과정에 대해선 당시 김용태 비대위원도 찬성했고 의원총회에서도 의원 64명이 참석해 60명이 찬성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무감사 진행에 적극적인 쪽은 주류층에 반기를 들고 있는 친한(親한동훈)계다. 해당 소동이 선거에 대형 악재로 작용했던 만큼 그 원인을 모든 당원이 투명하게 알아야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친한계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선거 대형 악재가 된 터무니없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핵심 참여자들이 어떻게 움직였고, 무슨 말을 했는지, 묵인했는지 등이 드러나야 한다”며 “비대위든 실무자급 회의든 전략을 짜고 의견을 낸 사람들이 있지 않겠나. 그 사람들을 밝혀서 당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쏘아올린 당무감사는 다른 쇄신안(△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9월초까지 전당대회 개최 △당론을 낼 때 당심과 민심 모두 반영 △100% 상향식 공천 실시)과 함께 차기 당권을 노리는 세력 간 계파 싸움의 불씨가 되면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당장 비대위원들부터 당무감사 수용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데다, 소동의 피해자 격인 김문수 전 후보마저 차기 당권 경쟁을 염두에 둔 듯 당무감사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당내 세력 구도가 여전히 친윤 주류층이 강세라는 점도 드러났다. 범친윤계로 꼽히는 송언석 신임 원내대표는 6월16일 경선에서 국민의힘 의원 107표 중 60표를 얻으며 당내 주류층의 지원을 받은 점이 확인됐다. 송 원내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후보 교체 당무감사를 비롯한 김 위원장의 쇄신안 추진에 대해 반대의 뜻을 내비쳤던 만큼, 당내에서도 당무감사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전략파트 관계자도 시사저널에 “당내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들도 김용태 위원장의 남은 임기 동안만 조용히 버티자는 기류”라고 전했다.
이에 당내에는 보수 1당이 ‘탄핵의 강’을 건너기는커녕 ‘쇄신의 칼’도 못 빼든 채 자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만연하다. 특히 친한계에선 당내 분열을 감수하고라도 진상 규명을 통해 쇄신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신지호 전 의원은 최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국민의힘 현 상태를 보면 암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커다란 종양을 들어내야 된다”며 “그런데 분열은 하지 말자는 것은 혁신하지 말자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차기 비대위 임명을 비롯해 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