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과 ‘원자력’의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로 AI 시대 대비해야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메타가 SMR 투자 및 원전 장기 구입계약을 잇달아 체결한 이유 ‘탄소 배출 제로’ 운동 RE100에서 CF100으로 전환…재생에너지의 경제성, 나라 환경따라 달라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피하나 한국적 특성을 고려해 원자력발전 등과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도 고려해야 한다.”
새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위원장 이한주)가 ‘새 정부 성장정책 해설서’에서 인공지능(AI)·반도체·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막대한 전력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제시한 에너지 정책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TV토론에서 같은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23년 말 기준으로 9.7% 수준임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 비중을 어떻게 제시하느냐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전력시장 환경은 드라마틱하게 변화해 왔다. 작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TMI) 원전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한 것은 원전산업에 종사했던 필자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MS가 재가동하기로 한 TMI 1호기는 세계 최초의 원전사고로 기록되는 TMI 2호기와 동일한 부지의 동일한 원전으로서 현재 가동이 중지된 상태다. TMI 1호기 재가동 결정은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의 원전에 대한 수요와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뒤이어 봇물처럼 아마존의 SMR 개발 투자 및 장기 전력공급계약 체결, 구글의 SMR 스타트업 기업에 기술개발 투자 및 전력공급계약, 최근 메타의 기존 원전 활용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등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투어 SMR, 기존 원전 등에 투자하거나 전력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실 미국 전력시장에서는 원전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이지 않다. 발전원의 평균발전단가는 천연가스가 가장 저렴하고 태양광이나 풍력은 평균적으로 원전 발전단가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등은 24시간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기에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발전원으로 원자력이 가장 적합하다고 인정된 것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론 탄소중립 달성 못 해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LNG 가격 급등, 독일어로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라고 불리는 햇빛도 바람도 없는 이른바 ‘녹색 정전’ 경험은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인식을 낳았다.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높은 덴마크를 비롯해 벨기에·이탈리아·스페인 등 모든 유럽 국가가 탈원전을 폐기하고 원전을 활용하기로 정책을 전환했다. 독일의 새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되 이웃 나라의 원전 추진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듯 세계적인 원전 정책의 거대한 변화는 205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하기) 캠페인을 주도하던 비영리 국제단체인 글라이밋 그룹(Climate Group)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부터 원자력·수소 에너지 등이 포함된 CF100(Carbon free·무탄소에너지 100% 사용하기) 캠페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에너지 정책은 그 나라의 국토, 에너지 자원, 주력산업 등 고유의 환경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좌우된다. 보통 전력원의 경제성은 균등화발전단가, 즉 LCOE(Levelized cost of Energy)로 표시하는데, 건설비·운영비·폐기 비용 등 모든 비용을 운영 기간 동안 균등하게 환산한 값이다. 예를 들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신규 원전 LCOE가 KWh당 80원이고 태양광 전기가 40원이라면 태양광이 경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햇빛의 세기, 일사 시간 등의 차이로 태양광 LCOE가 KWh당 140원이고 신규 원전이 70원이라면 우리나라는 원자력이 경제적인 것이다.
풍력을 살펴보면 더욱더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의 연평균 풍속은 초속 약 4.0~4.5m로 북해 해안 지역 연평균 풍속인 약 7.6~7.8m보다 낮다. 이것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북해의 풍력발전 효율이 한국에 비해 3.2배 좋은 것이다. 더욱이 두 지역의 연중 바람 부는 시간을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원자력 분야의 한미 동맹 강화해야
또한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하면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 우리나라는 전력계통이 고립되어 있다. 만일의 사태 때 외국으로부터 전기를 빌려올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유럽처럼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기가 용이한 수력발전 자원도 빈약하다. 결국 배터리를 설치해 낮에 급증하는 전력을 저장하고 밤에 부족할 때 충전된 전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필자가 계산한 2050년 전원 믹스 시나리오 결과에 의하면 재생에너지 비중을 30%에서 50%로 증가시키면 연간 발전 비용이 62조원 더 소요된다. 그중 40조원이 배터리 운영에 따른 비용 증가분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60%에 이르는 독일의 전력요금을 살펴보면 재생에너지 간헐성에 대처하기 위한 그리드 운영 비용, 재생에너지 보조금이 전력 구입 비용의 두 배 이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은 반도체·자동차·조선·방산 등과 함께 외국이 인정할 만큼 경쟁력 있는 산업이다. 원전산업은 장주기 산업으로 한번 시장을 확보하면 수십 년간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원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 이유는 부침은 있었지만 정부가 장기적인 원전 건설계획을 제시해 지속적으로 원전을 건설하며 원자력산업 인프라를 육성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2050년까지 AI·데이터센터 등 4차 산업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원전을 확충하는 계획을 밝혔다. 그 계획에 따르면 2050년까지 원전을 현재 100GW 규모에서 400GW로 4배까지 확충하려 한다. 미국의 싱크탱크 The National Interes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명령의 문제점으로 자국의 원전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파트너십에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세계 원전시장, 특히 그 시장의 1/10만 참여해도 30GW 규모에 이르는 미국의 원전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이익 추구라는 관점에서 원자력 분야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원전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경쟁력의 원천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국내 건설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특성을 고려한 바람직한 에너지 믹스 제시로 보장받을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 실현, 세계 원전시장 확보를 위해 흑묘백묘 즉,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잘 배합한 합리적 에너지 믹스 정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