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고생 3인 투신의 충격…관심과 지지, 경청이 필요한 때다 [쓴소리 곧은 소리]
청소년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내몰림’…가정·학교·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옥스퍼드대 연구에선 “부모와의 대화·정서적 공감이 청소년 우울·불안장애 발병률 낮춰”
최근 부산의 한 여고에서 학생 3명이 함께 투신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어린 학생들이 서로 의지한 채 함께 죽음을 선택한 사실도 놀랍지만, 그들이 겪었을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 저리고 안타깝다. 필자의 마음이 이러한데 그 가족들이나 친구들, 선생님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무어라 써야 할지 이 글을 요청받은 뒤에도 몇 번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가장 높아
부산에서 일어난 비극은 우리에게 이 땅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절박한 변화를 촉구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소년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다.
15세의 한 캐나다 소녀는 죽기 한 달 전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I have nobody, I need someone(내겐 아무도 없고, 누군가 필요해요)”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자신이 겪은 온라인 협박과 고립감을 세계에 알린 적이 있다. 자살 청소년들의 유서나 심리부검 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 자책과 절망, 고립감을 표현하고 있다. 외모나 억양, 취향 등 사소한 이유로 반복된 언어폭력에 상처를 입는다. 안타깝게도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지 않고 고립된 상태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부산의 여고생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압박을 겪었는지는 아직 수사 중이어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의 상담 경험이나 여러 조사나 연구를 토대로 청소년들이 자살로 치닫게 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내몰림’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내몰림’은 단순한 따돌림을 넘어 가정, 학교, 지역사회에서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극도의 외로움과 절망을 경험하는 상황이다.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성적이나 부적응, 심리적 압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청소년기라는 예민한 시기에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은 치명적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 SNS를 통한 내몰림이 더 심각하다. 사이버 괴롭힘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어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다행히 그것을 극복할 방어기제가 마련되어 있다면 이겨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꺾임을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연구(2016년)에 따르면 학교 내 괴롭힘과 따돌림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보다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최대 7배 높다고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연구(2018년)에서는 부모와의 꾸준한 대화와 정서적 공감을 받는 청소년들은 우울증과 불안장애 발병률이 현저히 낮아진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싯(The Lancet)에 일본의 도쿄대 연구진이 2024년 2월 발표한 논문에는 중요한 함축이 담겨 있다. 도쿄의 청소년 3171명을 대상으로 6년간 진행된 코호트 연구에서 정신병리적 문제와 행동 문제의 발달 경과를 딥러닝을 활용해 분석 결과 다섯 가지 클러스터로 분류했다. 무증상(60.5%), 내재화(16.2%), 외현화(9.6%), 중증(3.9%), 불일치(9.9%) 그룹으로 식별되었다. 내재화 집단은 우울, 불안, 사회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외현화 집단은 주로 과다활동이나 주의력 결핍 및 행동 문제를 보였다. 중증 그룹의 경우 거의 모든 정신병리적 및 행동 문제에서 만성적이고 심각한 증상을 보였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분석 결과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해와 자살 생각 위험이 가장 크게 나타난 것은 9.9%에 달하는 불일치 그룹이었다. 연구진이 가장 주목한 것도 이 그룹이다. 청소년은 주관적인 우울감, 자살 생각 등을 심하게 느끼는데 보호자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 집단이다. 보호자나 양육자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청소년의 주관적 고통이 심각하다면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정서적 지지가 필수적이다. 미국의 ‘SOS(Signs of Suicide)’나 희망 지킴이(Hope Squad) 프로그램은 학생들 간 위기 징후를 조기에 인지하고 서로 도와줄 수 있도록 훈련하는 프로그램으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청소년들이 익명으로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는 ‘키즈 헬프폰(Kids Help Phone)’을 운영해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부모나 양육자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말고 꾸준히 대화하며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는 사소한 노력이 청소년의 심리적 안정과 건강한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는 ‘한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예방책이다. 그 누구든 ‘한 사람’만 있으면 위기 극복의 동력이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비난이나 충고가 아니라 온전히 들어주는 경청과 그런 태도, 느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채꽃은 꼭 떼로 피지. 혼자였으면 골백번 꺾였어”
학교와 지역사회 역시 청소년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학교는 따돌림 방지를 위한 교사 교육을 실시하고, 전문 상담 인력을 충분히 배치해 아이들이 언제든 마음을 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학생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조기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앞에서 소개한 도쿄대 연구진(2024년)은 논문에서 “보호자가 자신의 어려움 때문에 청소년을 효과적으로 돌보기 어렵게 되거나, 다른 여러 문제로 인해 청소년의 어려움을 인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청소년의 돌봄을 부모에게만 의존하는 대신, 더 넓은 지역사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교육자와 지역사회는 정기적인 학교 내 정신 건강 점검이나 무료 상담을 위한 지역사회 자원 개발 등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에게 적극적으로 ‘지원’과 ‘경청’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지원과 지지, 경청이 핵심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청소년의 정신 건강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거나 방관할 수 없다. 학교, 가정, 지역사회 모두가 하나로 연대해 청소년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지지를 확대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청소년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서로가 서로의 위기 상황을 돌봐줄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평소 청소년들에게 방어기제를 길러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갖춰나간다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유채꽃이 혼자 피나. 꼭 떼로 피지. 혼자였으면 골백번 꺾였어. 사람 하나를 살리는 데도 온 고을을 다 부려야 한다”던 〈폭싹 속았수다〉 속 애순의 독백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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