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내각 인사’, 진영·출신·관행 허물었다
AI에 힘 싣는 이 대통령…네이버·LG 출신 한성숙·배경훈 파격 발탁 첫 민간 국방장관 안규백…“왜 송미령인가” 농림장관 유임 배경은 흑묘백묘론
대통령이 단행하는 인사는 그 자체로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까지 발탁한 인사의 면면을 보면 ‘이재명식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역시 ‘실용’이다. 이 대통령은 대학교수·관료 위주의 기존 인사 관행에서 벗어나 정책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와 상징성 있는 인물을 대거 발탁하고 있다. ‘일만 잘한다면 진영에 상관없이 발탁하겠다’는 실용적 철학에 따라 정치 성향·출신도 넘나들며 인사에 통합과 포용, 혁신의 메시지를 담으려 애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윤석열의 사람’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에도 통합의 메시지가 엿보인다.
“DJ ‘정보화 시대’처럼 AI 시대 열 것”
이 대통령이 인사를 통해 국민에게 던진 첫 메시지는 ‘경제’와 ‘AI(인공지능)’다. 대통령실에 신설한 AI(인공지능) 수석에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을 임명한 데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장관 후보자에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을,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후보자에 한성숙 네이버 고문을 지명한 게 대표적이다. 국무조정실장엔 윤창렬 LG 글로벌전략개발원장을 내정했다. 한성숙 후보자는 네이버에서 라인과 네이버 웹툰 등 핵심 사업을 책임졌고, 배경훈 후보자는 SK텔레콤을 거쳐 LG에서 AI 연구를 이끌었다.
취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인사에 담긴 이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는 ①AI 강국으로 도약해 미래 먹거리 창출 ②민관(民官)의 2인3각 공조를 통한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 제고다. 즉, 김대중(DJ) 정부가 ‘정보화 시대’의 기틀을 닦아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킨 데는 세계적 화두인 정보화 시대를 앞서본 DJ의 선구안도 있었지만, 여기에는 정부와 기업의 2인3각 같은 공조가 뒷받침됐다는 판단이 담겨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여권 고위 관계자는 “지금 경제와 AI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세계적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올라타, AI 패권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면 ‘현장 중심’ ‘전문가 중심’ ‘민관 공조’가 필수적”이라면서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꼭 필요한 산업 정책을 육성하기 위한 이 대통령의 의지가 이번 인사에 잘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LG와 네이버에서 각각 두 명의 장차관급 인사를 배출한 데는 진보 정권이 대기업과 성장을 도외시한다는 편견을 불식시키려는 의지도 담겼다는 후문이다.
‘성장’에 방점을 찍은 이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고용부 역사상 최초 민주노총 출신인 김영훈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임명하며 ‘노동계’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김 후보자는 지명 이후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주 4.5일제, 정년연장 등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추진해온 노동 현안에 속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김영훈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선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와 노사정 관계 재편 구상에 대한 검증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내각 인선을 통해 던진 또 하나의 메시지는 ‘속도’와 ‘안정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현재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포함해 12명의 장관급 인사 중 6명을 정치인 출신으로 발탁하면서 신속한 국정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현역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정동영(통일부), 안규백(국방부), 김성환(환경부), 전재수(해양수산부), 강선우(여성가족부) 후보자를 비롯해 전직 의원인 권오을 국가보훈처 장관 후보자까지 정치인 출신 6명이 지명됐다. 경제를 제외한 다른 국정 영역에서는 ‘깜짝 발탁’보다는 ‘안정성’에 무게를 둔 인선이라는 풀이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현역 의원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경우가 없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안정감을 주는 대표적 인사로는 당장 실무에 뛰어들 수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거론된다. 정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개성공단 사업을 추진하는 등 대북 이슈에 대해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후보자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로서 관세 및 방위비 협상 등 현재 이슈가 산적한 대미 외교를 포함한 국제외교 무대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내각에 현역 의원들을 전면 배치하면서도 ‘혁신’이라는 키워드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도 드러냈다. 그 대표적 인사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국방통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한 것이다. 안 의원이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통과하면 5·16 군사정변 이후 64년 만에 문민 국방장관이 나오게 된다. 문민 국방장관은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되다 불발된 과제로, 지난 64년간 국방장관은 장성 출신만 기용돼 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문민 국방장관을 임명해 국방정책은 대통령과 장관이 지휘하고, 군은 전문성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문민 통제’라는 본령을 회복하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 라인’ 인선, 실용 인사의 ‘마지막 퍼즐’
이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통합’의 메시지도 전달하려 했다.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출신 권오을 전 의원을 지명해 ‘탕평인사’ 기조에도 신경을 쓰고 있음을 드러냈다. ‘통합 인선’에 또 하나의 퍼즐은 유임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재명식 흑묘백묘(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능력만 좋으면 쓴다)’ 철학을 담아냈다는 입장이지만 여당 내부에선 ‘당황스럽다’, 야당에선 ‘기회주의자’라는 지적과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송 장관은 윤석열 정부에서 3차례 좌초됐던 민주당의 양곡관리법에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새 정부 출범 후 빠른 태세 전환에 나선 모습이다. 하지만 여야 모두의 공세가 거세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송 장관의 입장 변화를 두고 “기회주의적 처신” “이재명 정부 부역자”라며 반발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방관한 장관”이라며 계엄 사태 책임론을 꺼내들기도 했다. 여당에서도 송 장관이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에 책임이 있고, 전 정부에서 진보진영의 농업 정책에 반대해 왔다는 이유로 내부적으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식 실용주의 인사’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경제 라인’ 인사로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재 집값 상승, 내수 부진 등 경제가 대내외적 파고를 맞고 있는 만큼 기획재정부(경제부총리),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 장관 인선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