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커브 의심받는 손흥민, 그래도 ‘홍명보호 캡틴’
내년 월드컵 대비 20대 주축으로 세대 교체 준비 중인 국가대표 ‘마지막 월드컵’ 손흥민, 2026년까지는 확고한 핵심
11회 연속, 그리고 통산 12회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은 곧바로 월드컵 본선 체제에 돌입한다. 이라크 원정에서 승리하며 본선행을 확정한 뒤 6월10일 치른 쿠웨이트와의 2026 FIFA(국제축구연맹)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최종전에서 4대0 완승을 거둔 홍명보 감독은 “오늘은 예선의 끝이 아닌, 본선을 향한 시작”이라는 말을 남겼다.
내년 북중미월드컵부터 기존 32개국 경쟁 체제는 48개국으로 확대된다. 월드컵 16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과거 조별리그 3경기만 잘 소화하면 됐지만, 이제는 토너먼트 첫 판인 32강전도 돌파해야 한다. 목표치가 올라가면 단기간에 치러야 하는 경기 수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만큼 선수들의 체력 관리와 높은 에너지 수준 유지가 관건이다.
A대표팀의 경쟁력은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분위기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손흥민·이재성·권경원으로 대표되는 1992년생 선수들이 유럽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시작된 상승 곡선은 주축 선수들이 나이를 먹으며 완만히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김민재·황인범·황희찬·조유민 등 1996년생 선수들이 다음 바통을 잡게 되지만, 그들도 북중미월드컵에서는 벌써 서른 살이 된다.
1994 미국월드컵 폭염 기억 생생…“젊은 선수 필요”
기존 체제의 주축 선수들을 인정하며 안정감에 초점을 맞춘 월드컵 예선의 싸움을 마치면서 홍명보 감독은 A대표팀의 오랜 고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젊은 선수들의 기량을 검증하고, 경쟁력이 약한 포지션에 과감하게 변화의 드라이브를 거는 것. 올 하반기 홍명보호의 최대 키워드는 기존에 활용하지 않던 선수들을 체크하고 옥석을 가리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A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한 뒤 홍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의 실패를 언급하며 자기반성을 이어왔다. 특히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 대한 파악과 정보가 약했고, 그것이 실패의 빌미가 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달리 말하면 현재는 K리그 울산HD에서의 감독 생활 등 10년 전과는 정반대 상황이라는 뜻이다. 대표팀에 선발할 만한 선수들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그 안에서 새로운 얼굴을 과감히, 그리고 꾸준히 선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실제로 대표팀의 평균 연령도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2024년 A대표팀 출전 선수들을 기준으로 한 평균 연령은 29.05세였다. 그해 기준 FIFA 가맹 144개국 중 7번째로 많았다. 전 세계 평균보다 2세 정도 많았다. 홍 감독 역시 9월 월드컵 3차 예선 첫 경기를 앞두고 부임 후 첫 소집에서 만 35세의 정우영과 34세의 김영권·주민규로 대표되는 베테랑을 선택했다. 곧바로 월드컵 예선이라는 실전을 마주하는 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경험에 더 중점을 뒀다.
10월 두 번째 소집부터는 서서히 세대 교체 드라이브에 속도를 높였다. 그 후 2001년생 오현규, 2003년생 배준호, 2002년생 이태석이 순차적으로 선발돼 주전 경쟁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월드컵 예선 9·10차전이 열린 6월에 소집된 A대표팀 명단 27명의 평균 연령은 27.85세였다. 쿠웨이트전의 선발 라인업에서는 평균 연령이 26세까지 내려갔다. 이날 홍 감독은 손흥민·이재성·조유민·권경원·조현우 등 30대 선수들을 선발에서 빼고 오현규·배준호·이한범·김주성 등 20대 초중반 선수를 대거 배치했다.
오는 7월 홍명보호는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에 참가한다. 과거 동아시안컵으로 불렸던 이 대회는 남자부의 경우 한국, 일본, 중국, 홍콩 4개국이 풀리그를 치른다. 이 대회를 위한 소집 명단을 6월23일 발표했는데, 총 23명의 평균 연령은 27.1세였다. 1년 사이 대표팀이 확 젊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0년생 이후 출생 선수는 8명이었다. 1990년생 공격수 주민규 대신 2000년생 이호재가 이름을 올렸다. 수비라인에도 김주성·이태석·변준수·서명관·조현택·김태현 같은 2000년대생 팔팔한 선수가 6명 뽑혔다. 허리에는 2023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브론즈볼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2003년생 미드필더 이승원이 가세했다.
홍명보 감독이 체력적으로 강하고, 에너지가 풍부한 젊은 선수들에게 포커스를 두는 이유는 내년 월드컵의 특징 때문이다. 북중미월드컵의 최대 변수는 폭염이다. 대회 기간 동안 경기를 치를 16개 경기장 중 14곳에 대해 선수들과 관중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수준의 폭염이 예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FIFA는 아직 경기 시간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48개국 체제로 늘어난 대회 규모와 전 세계를 커버해야 하는 생중계 시간 탓에 오후 1시와 4시에도 경기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카타르월드컵 때도 폭염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FIFA는 대회 일정을 11월로 연기했고, 개최국 카타르는 엄청난 투자를 통해 경기장 내 냉방 시스템을 준비했다. 우려와 달리 쾌적한 환경에서 선수들이 뛰고, 관중은 경기를 즐겼다. 하지만 북중미월드컵은 이미 지어놓은 경기장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그런 인프라 변화를 주기 어렵다. 결국 선수들이 수분을 섭취하며 휴식을 취하는 쿨링 브레이크 같은 기본 조치 정도가 지원책이다. 관중도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다.
홍 감독은 이런 변수를 충분히 체험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때 선수로 참가했다. 당시 한국은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댈러스 코튼볼 스타디움에서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했다. 세계적인 강호를 상대로 한국은 강한 체력을 활용해 접전을 펼치며 선전했다. 이후 선수 말년에는 미국의 LA갤럭시에서 다시 한번 뛴 바 있다. 대표팀이 더 많이 뛰고, 무더위에도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젊은 선수는 필수라는 결론에 도달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홍 감독, 손흥민의 대표팀 애착과 헌신 칭찬
새로운 뉴페이스 발굴에 비중을 둔다는 건, 반대로 기존 멤버 중 누군가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의미다. 현재 대표팀의 최고참은 1991년생 골키퍼 조현우다. 무릎 수술 후 최근 J리그 FC도쿄에 입단한 1990년생 김승규가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는 1992년생 손흥민과 이재성이 최고참이다. 홍명보 감독은 부임 후 지난 1년간 계속 손흥민에게 주장을 맡겼다. 손흥민 부재 시에는 이재성, 황인범 순으로 임시 주장을 맡겼다.
최근 빈도가 높아진 부상에 소속팀 토트넘에서의 퍼포먼스 저하로 ‘에이징 커브(노쇠화에 따른 기량 저하)’를 의심받는 손흥민이지만 대표팀 내 입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홍 감독은 월드컵 3차 예선 10경기 중 7경기에 투입했다. 작년 10월에는 손흥민이 부상으로 소집되지 못해 2경기에 빠졌고, 시즌 말미 장기화된 부상 여파로 이번 6월에 열린 이라크 원정에서도 벤치를 지켰다. 하지만 정상 컨디션일 때 손흥민은 늘 선발이었고, 홍 감독은 그를 최전방에 세우는 ‘손톱(Son-Top)’ 전술까지 가동했다.
손흥민과 동갑내기인 미드필더 이재성, 중원의 엔진인 황인범, 그리고 현재 대표팀에 가장 많은 창조성을 불어넣는 이강인까지 홍명보 감독은 확고한 주전으로 인식 중이다. 기자회견 등 미디어와의 접점에서 홍 감독은 대표팀에 대한 손흥민의 애착과 헌신을 꾸준히 칭찬해 왔다. 손흥민 역시 이번 북중미월드컵을 자신의 마지막 도전으로 여기며 착실히 준비 중이라는 후문이다.
손흥민을 비롯한 1992년생들이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무대는 북중미월드컵 혹은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 될 것이 유력하다. 홍 감독도 현재 A대표팀 계약이 아시안컵까지 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