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제대’를 ‘전역’이라 부르면 더 따뜻한 이유 [박용후의 관점]

청춘이 제공하는 헌신의 시간…‘제거’ 아닌 ‘환영’으로 기억해야 할 때

2025-06-30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얼마 전, 군 복무를 마친 아들이 제대했다고 좋아하는 지인을 만났다. 청춘의 시간을 바쳐 병역 의무를 다한 아들이 사회로 돌아온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의 한숨과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바로 그가 쓰는 ‘제대(除隊)’라는 단어였다. 이 단어가 정말 그 젊은이가 국가를 위해 보낸 헌신과 노력의 시간을 적절히 담아내고 있는가?

‘제대’는 한자로 덜어낼 제(除)와 무리 대(隊)를 결합한 단어다. 그 의미를 곱씹어보면 ‘부대에서 제거된다’, 혹은 ‘군대에서 내보내진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군 복무를 통해 쌓아온 헌신과 공헌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단어로 보인다. 특히 ‘제거하다’라는 표현은 사람의 노고를 단순히 무언가를 치우는 과정처럼 축소시키는 부정적 함의를 포함하고 있다. 과연 이 단어가 국가를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고 있는가?

‘제대’라는 단어는 과거 군의 시스템이 가진 ‘획득’과 ‘분리’라는 개념의 산물이다. 이를테면 군대가 필요로 하는 인원을 ‘획득’하고, 일정 기간의 복무 후에는 다시 ‘제거’하는 흐름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군인을 마치 자원이나 물건처럼 취급하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어, 군 복무자들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이를 인식한 군은 한때 ‘인력획득처’라는 부서를 ‘인력선발처’로 명칭을 변경한 적이 있다. 이는 단순히 사람을 확보하는 과정이 아닌, 적합한 인재를 존중하며 선발한다는 의미를 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이 명칭은 다시 ‘인력획득처’로 돌아갔다. 이러한 변화는 단어가 지닌 함의와 현실 간의 괴리를 여실히 드러내며, 군 복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후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는 과정은 단순히 역할의 변화가 아니다. 이는 개인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사회적으로도 귀한 경험을 가진 인재가 복귀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제대’라는 단어는 이러한 긍정적인 전환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로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전역(轉役)’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역은 ‘역할의 전환’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어, 군인의 헌신과 새로운 출발을 더 잘 반영한다.

단어는 단순한 언어적 표현 이상이다. 그것은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고, 때로는 형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군 복무와 관련된 단어 하나하나가 지니는 함의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청춘을 바친 이들의 공헌을 존중하고, 그들의 노고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제대’ 대신 ‘전역‘ 그리고 ‘획득‘보다는 ’선발‘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복귀’나 ‘귀환’과 같이 사회적 환영의 의미를 담은 단어가 훨씬 인간적이지 않은가? 이는 군 복무가 끝난 후에도 이들이 사회에서 환영받고 소중히 여겨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시대와 함께 변화해야 한다. 과거의 틀에 갇힌 단어가 지금의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을 개선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군 복무를 마친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단순히 ‘덜어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로 이어지는 명예로운 전환임을 알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제대’라는 단어가 청춘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비단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사회가 어떻게 헌신과 공헌을 대하는지에 대한 거울이 된다. 단어 하나가 지닌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청춘을 바친 그들에게 마땅한 존경과 명예를 담아낼 새로운 언어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군이 왜 다시 군인들에 대해 ’획득’이라는 단어로 회귀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아마도 지금의 책임자가 사용해오던 익숙함의 관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획득’이라는 단어는 주로 물건이나 자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기본적인 부분도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나라에 기여한 시간의 가치가 더 의미있고 빛날 수 있는 단어가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