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인사청문 정국…‘의원 장관’ 전성시대, ‘현역 불패’ 이어질까
총리·장관 44%가 현역 의원…‘청문회 통과 100%’ 고려한 인선 분석 與, ‘부실 해명’에도 김민석 총리 인준 강행…李, ‘마이웨이’ 인사 전망 野, 과녁에 오른 교육 이진숙·보훈 권오을 등 청문회 총공세로 돌파구 찾기
이재명 정부의 초대 내각을 지휘할 사령탑이 채워졌다. 첫 주인공은 김민석 국무총리다. 김 총리의 인준을 반대한 국민의힘은 대선 이후 가장 역동적인 대여 투쟁에 나섰지만, ‘투쟁’이란 말이 무색하게 이를 무력화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의석수였다. 새 정부 내각을 이끌 총리 인준안이 여당 단독으로 통과되면서다. 이로써 가파른 여야 대치 속 ‘청문 정국’이 뜨겁게 개막식을 열었다. 이제 국민 앞에는 새 정부 초반 국정 동력을 좌우할 두 개의 평가지가 전달됐다. 각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과 흡사 의원내각제 구조(총리·장관 44%가 현역 국회의원)를 띤 ‘이재명표 인사’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 것이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7월10일부터 순차적으로 열린다. 19개 부처 중 장관 후보자 17명이 지명된 가운데 유임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제외한 16명의 청문회가 줄줄이 예고됐다. 국회에 각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이 제출되고 있는 가운데 몇몇 후보자의 도덕성, 전과, 과거 발언 등 논란은 우후죽순 터져 나오고 있다.
야당은 ‘핵심 타깃 7인’을 주요 과녁으로 삼고 총공세를 준비 중이다. 맹공에 나선 대상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가족 태양광 사업) △조현 외교부 장관(아내 10억원 차익)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부인 스폰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남편 주식)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전과 5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음란물 유포 전과) △이진숙 교육부 장관(역사 의식 논란) 후보자 등이다.
여당도 철저한 인사 검증을 예고했지만 ‘김민석 청문회’ 때와 마찬가지로 맹탕으로 끝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특히 12개 상임위원회 모두 여당이 과반을 차지한 데다, 이 가운데 7곳의 상임위원장이 여당 의원인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사실상 여론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대통령 역시 정권 초기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여야 협치보다는 ‘마이웨이’ 인사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대통령이 내각의 약 절반(44%)을 현역 의원으로 채우면서 ‘선출권력이 곧 국민주권’을 표방한다는 메시지를 내건 만큼 인사권 단행은 기정사실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지지율 업은 李, ‘협치’ 대신 ‘인사 강행’ 전망
장관 후보자는 여야 이견으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국회에 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한 후 임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야당은 후보자 자질 검증에 대한 총력전에 나서며 강력한 ‘한 방’을 노릴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일찍이 청문회를 앞두고 국민 눈높이에서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 요청안에 따르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태양광 사업 이해충돌 의혹을 받고 있다. 정 후보자 아내가 자녀와 함께 태양광 사업을 하고 있는데, 2022~23년 전국 필지 20곳을 2~29명과 공동 매입했다. 이를 두고 소규모 사업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노린 ‘편법 투자’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정 후보자가 지난 3월 농지 경작과 태양광 발전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한 법안 등을 발의하면서 ‘이해충돌’ 문제도 거론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땅 투기’ 의혹에 휩싸였다. 조 후보자 아내가 2003년 서울 용산구 재개발 지역 도로를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매입한 뒤 5개월 만에 해당 지역이 한남뉴타운 3구역으로 지정돼 1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15억원 이상 차익을 얻은 아들의 갭투자 자금을 지원했다는 ‘아빠 찬스’ 논란도 제기됐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스폰서 개입’ 의혹을 받는다. 권 후보자는 2023~24년 대학, 기업체, 식당 등 전국 각지 4~5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하며 연간 약 8000만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후보자 아내도 2022년 서울과 경북 소재 두 업체에서 일하면서 ‘겹치기 월급’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는데, 권 후보자 측은 이와 관련해 “주로 비상근 자문직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장관 하마평에 오를 때부터 질병관리청장 시절 남편이 마스크·자가진단키트 생산업체 등 코로나19 관련 주식을 사들였다는 논란이 일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12개 혐의로 전과 5건을 갖고 있다. 벌금형 선고는 △1994년 도로교통법 위반 △2003년 업무 방해 △2008년 명예훼손 사건이었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2017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일반 교통 방해 등이었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2005년 음란물 유포 등 혐의로 벌금 1000만원과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중기부 측은 “한 후보자가 포털 사이트 검색 본부에서 일하던 시기로, 음란 검색물에 대한 관리 책임으로 처벌받았다”고 밝혔다.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지명자는 ‘역사 의식 결여’라는 질타를 받으며 지명 철회 촉구의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충남대 총장 출신인 이 지명자는 재임 시절 학교 측 허가 없이 국립대 최초로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불법 시설물로 규정하고 철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선 이 지명자에 대해 졸속·밀실 행정으로 불통과 무능의 리더십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지명자는 지난 대선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대통령의 교육 공약을 검토해 왔다.
일 잘하면 기용한다? ‘자질 검증’ 도마에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정부 인사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무리수·졸속’ 인사의 난맥상이 드러났다는 혹평과 동시에 전반적인 대통령실-내각 인사 구조를 보면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철학이 반영됐다는 호평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김민석 총리 시대’의 막이 오르면서 초기 국정 운영에서 이 대통령의 인사가 여야 정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대통령의 ‘인사 검증’ 점수는 하위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충분한 검증 절차와 여야 간 협의 과정이 부족한 상태로 인사를 단행했다는 지적이다. 앞서 이재명 정부 출범 4일 차에 임명된 오광수 전 민정수석은 부동산 차명 보유와 차명 대출 논란으로 닷새 만에 여론 검증에서 낙마하기도 했다. 여기에 몇몇 장관 후보자도 도덕성 문제로 얼룩지자 ‘일 잘하면 기용한다’는 이 대통령식 실용주의 해석과 ‘자질 검증’ 간 괴리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기 내각에 국회의원이 대거 포진하면서 ‘배지 장관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내각의 약 절반을 현역 의원으로 기용하면서 전임 정부 국무위원들에게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직접 권력을 위임받은 기관”이라며 “국회에 가시면 그 직접 선출된 권력에 대해 존중감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쓴소리를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 선출권력’이란 명분하에 청문회 ‘통과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현직 의원들, 그중에서도 오래 호흡을 맞춰온 친명(親이재명)계 인사들을 낙점했다는 시각이 있다. 다만 일각에선 높은 정치인 비율이 향후 국정 운영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의 정부 견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외교-경제 라인을 중심으로는 ‘같은 분야·다른 성향’ 전문가들을 고루 배치하면서 정책적 균형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이 나온다. 또 현역 중진 의원을 대거 기용할 때 선후배 관계보다는 ‘개별 역할론’에 더 집중한 점도 주목된다. 3선 강훈식 의원을 최연소 비서실장 자리에 앉히고, 4선 우상호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등용해 정치 개혁을 표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무총리 하마평에 올랐던 ‘친명 좌장’ 5선 정성호 민주당 의원을 검찰 개혁 사령탑인 법무부 장관으로 들이고, 4선 김민석 의원을 총리로 세운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사분오열’ 野, 대여 투쟁으로 내부 결속 꾀해
7월3일 국회에서 김민석 총리 인준안이 여당 단독으로 통과되면서 야당의 대정부·대여 투쟁도 격화할 전망이다. 김 총리가 청문회 때부터 제기된 재산 증식 논란을 끝내 제대로 불식시키지 못하면서 사실상 야당에 대여 투쟁 명분을 남겨준 상황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 이후 당 쇄신 방향을 두고 갈피조차 잡지 못하다가 되레 ‘김민석 지명 철회’라는 메시지로 의기투합의 물꼬를 텄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은 인준 가결일 당일에도 국회 본회의 보이콧을 선언하고 규탄대회를 열며 인준 표결을 반대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4~25일 청문회 기간 동안 김 총리의 불분명한 자금 의혹을 고리로 총공세를 펼쳐왔다. 그러나 김 총리는 전임 총리들의 전례에 따르겠다며 자금 규모 및 출처를 구두로만 밝히고 증빙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각종 의혹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여당은 비호에 나섰고, 이 대통령 역시 재산 관련 의혹은 충분히 소명 가능한 내용이라며 두둔해 왔다.
김 총리가 미제출한 자료는 ‘세비 외 수입 자금 출처’와 ‘증여세 납부 내역서’ 크게 두 가지다. 그는 청문회에서 출처가 불명확한 약 6억원의 수입에 대해 축의금 약 1억원, 부의금 약 1억6000만원, 출판기념회 약 2억5000만원 등이 포함됐다며 구체적 내역을 언급했다. 배우자가 처가로부터 생활비 2억원을 지원받았다는 내용도 언급했지만 이와 관련해 증여세 납부 내역 등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 유학 당시 과거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받은 강모씨로부터 월 450만원의 유학비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배추 농사 투자 수익금’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민석 저격수’로 꼽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역대급으로 자료를 안 낸 사례로, 근거는 없이 말밖에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주 의원은 “해명도 계속 늘어났는데, 초반에는 자신의 SNS에 ‘기타 소득’이라고만 했다가 이후 인터뷰에선 축의금, 빙부상 조의금, 출판기념회를 언급했고, 청문회에선 처갓집으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며 “자료는 안 내고 말은 바뀌니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