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독수리, 33년 만에 가장 높이 날다

한화 폰세·와이스 용병 원투펀치 압도적…대전구장 연일 매진 흥행 구단 ‘엘·롯·기’의 포스트시즌 사상 첫 동반 진출도 기대돼

2025-07-13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5 KBO리그 전반기의 가장 큰 키워드는 ‘독수리의 비상’이다. 3년 연속 꼴찌(2020~2022년)를 하는 등 최근 5년간 하위권에 있던 한화 이글스는 올해 전반기 동안 가장 높이 날아올랐다. 1992년 이후 33년 만에 전반기를 1위로 마쳤고, 50승 고지에도 선착했다. 한화 팬들은 조심스럽게 ‘AGAIN 1999’를 외치고 있다. 1999년은 한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해다.

한화의 시즌 초반 성적은 좋지 않았다. 투수력은 괜찮았는데 공격력이 영 신통치 않았다. 3월 여덟 경기에서 3승5패(승률 0.375)로 부진했고, 7위로 개막 달을 마쳤다. 4월3일에는 최하위로 떨어졌다. 스토브리그 동안 선발투수 엄상백, 유격수 심우준을 영입하면서 5강 후보로 꼽혔던 터라 충격이 컸다.

7월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2대1로 승리한 한화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스1

한화 막내 문현빈이 약한 팀 타선 일깨워

한화는 야수 막내 문현빈의 ‘한 방’으로 깨어났다. 문현빈은 4월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1-5로 뒤진 8회초 2사 뒤 우중월 솔로포를 날렸고, 4-6으로 패색이 짙던 9회초 2사 1·2루에서는 역전 3점포를 작렬시켰다. 문현빈의 활약 덕에 한화는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이날 이후 팀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4월10일 꼴찌 탈출에 성공한 한화는 거침없이 순위를 끌어올렸다. 4월18일에는 어느덧 2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화의 4월 승률은 0.667(16승8패). 8연승(4월13~23일)을 달리기도 했다. 33년 만에 파죽의 12연승(4월26일~5월11일)까지 기록하며 1위 자리까지 꿰찼다. LG 트윈스의 반격이 이어지면서 5월14일 정상에서 내려왔으나 2~3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1위 탈환을 계속 엿봤다. 한화의 5월 승률은 0.600(15승10패), 6월 승률은 0.550(승률 11승9패1무)이었다.

LG가 부진에 빠지면서 6월15일 1위 자리로 다시금 올라선 한화는 전반기 마지막 날(10일)까지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던 1992년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시즌 50승에 선착한 팀은 지금껏 100%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정규리그 우승 확률은 71.4%(35차례 중 25차례)에 이르며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60%(35차례 중 21차례)다. 한화는 2008년 이후 딱 한 번(2018년)만 가을야구를 했다. 그만큼 올해 기대가 크다. 

한화의 최대 강점은 마운드다. 선발진이 튼튼해 웬만해서는 긴 연패에 빠지지 않는다. 마운드 중심에는 리그 최강 투수로 발돋움한 코디 폰세가 있다. 영입 당시 ‘인저리 프론’(부상 위험도가 높은 선수)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폰세는 국내 마운드 위에서 ‘괴물’로 변했다. 18경기에 선발 등판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11연승을 달렸다. 승률 100%. 6회 이전에 마운드에서 내려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7이닝 이상도 열 차례나 책임졌다. 평균자책점은 1.95. 경기당 탈삼진 8.94개(총 161개)를 잡아내면서 시즌 200탈삼진을 거뜬히 넘길 분위기다. 폰세는 5월17일 SSG 랜더스전에서 8이닝 동안 1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KBO리그 단일 경기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1991년 선동열)을 세우기도 했다.

폰세와 함께 지난해 대체 선수로 왔다가 정규 선수 자리를 꿰찬 라이언 와이스도 2선발급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 10승3패 평균자책점 3.07의 성적을 냈는데, 전반기에 한 팀의 외국인 투수 두 명이 모두 10승 이상을 달성한 것은 2016년(더스틴 니퍼트-마이클 보우덴), 2018년(세스 후랭코프-조쉬 린드블럼·이상 두산 베어스) 이후 7년 만이자 역대 세 번째다. 2016년과 2018년, 두산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한화에서는 2006년 류현진-문동환 이후 처음으로 19년 만에 전반기 10승 듀오가 탄생하기도 했다. 

2006년은 한화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른 해다. 당시 한화는 삼성에 패해 준우승했다.

독수리의 선전 덕에 새 안방인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1만7000석)는 연일 매진이다. 24경기 연속 홈경기 매진 신기록을 세우는 등 전반기(43경기)에 네 차례를 제외하고 야구장을 관중으로 꽉 채웠다. 좌석 점유율이 99%를 넘는데, 구단 역사상 처음 홈 100만 관중이 보인다.

7월6일 광주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연합뉴스

‘잇몸 야구’로 버틴 KIA, 후반기 태풍의 눈

한화를 강하게 위협하는 팀은 2년 만에 통합우승을 노리는 LG다. LG는 투타 밸런스가 좋다. 롯데 자이언츠 또한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강한 타력으로 2017년 이후 처음으로 가을야구 진출의 꿈을 꾸고 있다. 팀타율 1위의 롯데는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방망이가 더 매서워서(7~9회 팀타율 1위) 상대 팀은 앞서고 있어도 절대 경계를 풀 수 없다. 부상당한 찰리 반즈 대신 알렉 감보아를 빠르게 영입한 것도 신의 한 수가 됐다. 감보아는 1패 뒤 선발 6연승을 달리고 있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올해 팀 흐름이 마치 2015년 두산 같다”고 했는데, 김 감독은 2015년 두산을 처음 지휘하면서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었다.

후반기에 가장 관심을 끄는 팀은 ‘디펜딩 챔피언’ KIA 타이거즈다. KIA는 후반기에 돌아올 선수가 많다. 나성범·김선빈·이의리가 먼저 팀에 합류하고 작년 정규리그 MVP 김도영이 시차를 두고 1군에 오른다. ‘잇몸 야구’에도 전반기를 4위로 마쳤는데, 이들이 돌아왔을 때 추진력을 강하게 얻을 전망이다. 

SSG는 한화 못지않은 강력한 용병 원투 펀치(드류 앤더슨-미치 화이트)로 가을야구를 노리고, KT 위즈는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 교체로 반등을 노린다. 삼성은 아리엘 후라도와 짝을 이루는 헤라손 가라비토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NC 다이노스는 군 복무를 마친 구창모의 선발 합류로 중위권을 위협할 전망이다. 조성환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치르고 있는 두산과 리빌딩 중인 키움 히어로즈는 포스트시즌과는 멀어진 상황이다.

2025 시즌은 한화를 비롯해 이른바 ‘엘·롯·기’로 불리는 LG·롯데·KIA 등 ‘흥행’ 구단이 다 함께 성적을 내면서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넘어 역대 최다 관중 동원이 유력시되고 있다. 구단 매출 또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전망이다. 연일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KBO에서 어느 팀이 잔칫상을 제일 푸짐하게 차릴지 후반기에 지켜볼 일이다. 프로야구 후반기는 17일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