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인사청문회 언제까지…후보는 자료 NO, 與는 증인 NO ‘뉴노멀’ 맹탕 청문회
與의 새 기준 ‘김민석式 버티기’…각종 의혹·논란에도 ‘하루만 버티자’ 기류 강해져 無자료·無증인·無대응 반복되는 ‘꼼수’ 청문회…강선우·정동영 자료 40% 안 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인사청문회법 20년간 199건 발의, 통과는 단 5건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개정 추진하는 與…민주당, 야당 시절엔 반대해 무산시켜
“공직 후보자의 개인정보 보호 또는 금융거래 비밀보장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 인사청문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이에 따라야 함을 명시한다.”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 공직 후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답변 또는 자료의 제출을 거부할 경우 벌칙을 규정함으로써 인사청문 제도의 객관성 및 실효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두 법안은 각각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7월14일,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다. 소속 정당은 다르지만, 두 법안 모두 공직 후보자의 자료 제출 의무를 강화하고 거부 시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공통된 방향성을 담았다. 청문회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문제의식’에서만큼은 여야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법안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지난 20여 년간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200건 가까이 발의됐지만, 통과된 법안은 한 자릿수에 그치기 때문이다. 청문회 제도를 개선하고자 나온 거의 모든 법안이 사실상 국회 본회의 문턱도 밟지 못한 채 ‘임기만료 폐기’ 됐다. 여야가 ‘공수 교대’ 될 때마다 서로의 입장이 이전과 달라지면서 법안 추진 동력이 사라져 결국 법안이 폐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오히려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1기 내각 후보자들이 각종 의혹과 논란에 휘말렸음에도 청문회는 여전히 ‘무(無)자료, 무증인,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3무 청문회’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낙마만은 막겠다는 정부·여당의 방어 전략 속에서 ‘맹탕 청문회’ 제도의 실효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사실 인사청문회에 ‘맹탕’ 딱지가 붙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뚫으려는 야당’과 ‘막으려는 여당’의 대결 구도는 반복돼 왔다. 2년 전 윤석열 정부 당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만 해도 지금과 정반대 모습이었다.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은 자료 제출과 증인 채택을 사실상 거부했고, 야당이던 민주당은 이에 반발해 청문회 개시 직후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파행을 빚었다.
‘버티면 된다’ 김민석 청문회가 남긴 ‘뉴노멀’
문제는 최근의 ‘맹탕 청문회’는 이때보다 수위가 한층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신호탄은 김민석 국무총리가 쐈다. 김 총리는 청문회 전부터 재산 의혹과 자녀 특혜 등 각종 논란에도 “청문회에서 다 소명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여야가 증인 채택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단 한 명의 증인도 출석하지 않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고, 자료 제출률도 30%에 못 미쳤다. 사실상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청문회가 끝났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김 총리는 거대 의석을 앞세운 민주당의 단독 인준 처리로 무난하게 임명됐다.
이 사례는 여당에 또렷한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자료 제출이나 증인 채택에 강제력이 없는 구조에서,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버티면 낙마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이후 정부·여당의 청문회 전략은 사실상 침묵과 무대응으로 굳어졌다. 청문회 ‘슈퍼위크’ 첫날 검증대에 오른 4명의 후보자 가운데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합의된 증인이 없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도 논란의 핵심인 ‘보좌진 갑질’ 의혹과 무관한 증인 2명만 채택됐다.
자료 제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강선우·배경훈·정동영 후보자 등 3명은 자료를 40% 이상 내지 않았다. 정동영 후보자의 경우 자료를 단 한 건도 제출하지 않다가 제출 시한인 7월11일 무더기로 늦장 제출했다.
자료와 증인이 없다 보니 실질적인 검증은 사라지고 여야의 정쟁만 남게 됐다. 청문회 본래 기능인 ‘권력 견제’ 역할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다. 실제 청문회 첫날 곳곳에서 파행이 일더니 사흘째인 7월16일에도 여야는 각종 의혹과 도덕성, 자질 등을 놓고 격돌했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선 질의 시작 전부터 자료 제출과 증인·참고인 채택 여부를 두고 40분 넘게 언쟁이 이어졌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선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는 후보자의 발언에 반발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제히 퇴장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국민 눈높이’라는 대원칙이 어긋난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민이 장차관 후보자를 직접 추천하는 ‘국민추천제’까지 시행하며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 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강선우 후보자의 갑질 의혹에 대해선 민주당보좌진협의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진보진영에서까지 사퇴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고, 이진숙 후보자는 논문 표절 논란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연구 부정’이라는 학계 주류의 비판까지 받고 있다.
“여당 되면 입장 바꿔”…제도 개선 20년째 공염불
대통령실은 기존 인사검증 기준을 종합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후보자들을 사전 검증했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에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7월14일 MBC라디오에서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일이 있었구나’ 하는 분들도 있는데, 과거에 낙마했던 후보자들과 비교해볼 때 어떤 수준인가를 점검해 보고 있다”며 “검증을 통과하신 분들이었는데 대통령실이 미처 몰랐거나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렇게 정부와 여당이 다수의 힘을 앞세워 ‘버티기’ 전략을 펼친다면, 청문회 제도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청문회에서도 이 정도로 자료 제출과 증인 채택이 미진했던 경우는 드물다”며 “김민석 총리 청문회부터 보이는 관행이 이어진다면 청문회라는 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국회도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2005년 7월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 등 모든 국무위원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제도가 확대된 이후 현재까지 199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법안 대다수는 인사청문 제도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 자료 제출과 증인 채택, 답변 진술 등의 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번번이 흐지부지됐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실제 입법으로 이어진 개정안은 단 5건으로 의결률은 2.5%에 그쳤다. 국회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 등에서 발의한 위원회 안 3건을 제외하면 개별 의원이 낸 법안 196건 가운데 실제 입법으로 이어진 법안은 단 2건뿐이다. 이마저도 2018년 법문에서 일본식 용어인 ‘당해’를 ‘해당’으로 바꾸는 표현 정비나, 2020년 당시 신설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하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이런 배경엔 정치적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야당일 때는 청문회 강화를 외치다가, 여당이 되면 이를 방어하려는 태도로 돌아서면서 입법에 진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역대 정권별로 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건수를 보면, 야당이 낸 법안의 비율이 항상 70%를 넘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체 40건 중 28건(70%), 박근혜 정부에서는 43건 중 32건(74.4%)이 야당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전체 68건의 법안 중 49건(72%), 윤석열 정부에서는 34건 중 29건(85.2%)의 법안이 야당 발의 법안이다. 청문회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은 대부분 야당에서 나오는 셈이다.
22대 국회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시절엔 청문회 자료 제출 의무화, 제출 거부 시 처벌 강화, 위원의 직접 자료 제출 요구권 신설 등 강력한 청문회 제도를 추진했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는 관련 법안을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청문회 제도를 완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난다.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7월11일 인사청문회를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로 분리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도덕성과 신상 검증은 비공개로, 정책 능력 검증은 공개로 진행하자는 제안으로, 후보자의 사생활에 대한 정치적 악용을 줄이고 정책 검증의 실효성은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이원화 방안은 자칫 청문회를 ‘맹탕 검증’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당에 유리한 법안으로 꼽혀왔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도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개정안을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의 반대로 무산됐다. 같은 법안을 두고도 집권 여부에 따라 입장이 뒤바뀌고 있는 셈이다.
거대 양당의 ‘오락가락’으로 인한 제도적 부실은 15년 전부터 드러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0년 43페이지 분량의 ‘국회 인사청문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입법조사처가 지적한 제도의 핵심 문제점은 현재와 대동소이하다. 도덕성에 편중된 검증 방식과 촉박한 인사 검증 기간 등 구조적인 문제부터 허위진술, 후보자의 자료 제출 거부 및 지연 제출, 증인 및 참고인 불출석 및 이에 따른 처벌 수단 부재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됐다. 입법조사처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정안과 법문은 물론 국회 청문회 문화에 대한 변화 방향까지 조목조목 제시했다.
“사전 검증의 벽 높아야 역량 검증 청문회 가능”
입법조사처는 “여당은 무조건적으로 후보자를 비호하고, 야당은 비판하는 정파적인 청문회 운영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도의 개선만으로는 인사청문회가 고위공직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로 가능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까지 지적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점진적으로 마련해 나가면 취지에 맞는 인사청문 제도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제자리걸음인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법 외 대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 들어 나타난 ‘3무 청문회’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청문회 제도 개선에 앞서 행정부의 사전 검증 단계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문회에 관한 법안은 여야 모두에게 시급하지 않은 법안이기 때문에 입법으로만 해결하기에는 실효적 한계가 있다”며 “제대로 된 공직 인사를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행정부의 사전 검증 절차부터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정상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결국 후보자 추천 단계에서 도덕성이나 자질을 철저히 검증해 국회 청문회에서는 정책과 역량 검증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