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겨눈 수사, 누가 미래의 문을 닫았는가 [박용후의 관점]

이재용 무죄, 카카오 13조 증발… 기업 수사 후폭풍은 끝나지 않았다 총수 포토라인 세운 뒤 남은 건, 사라진 기회와 위축된 경쟁력

2025-07-23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2025년 7월 17일, 대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거래·시세조종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2020년 기소 이후 약 5년에 걸친 수사와 재판에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2023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가맹택시 우대 및 비가맹택시 차별이 포함된 ‘배차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257억 원(최종 27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나, 2025년 5월 22일 서울고등법원은 “해당 알고리즘이 시장 경쟁을 실질적으로 해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과징금 전액을 취소했다.

하지만 카카오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은 김건희 ‘집사 게이트’ 수사를 명분으로 김범수 전 카카오 의장을 소환했다. 이후 카카오 주가는 급락했고, 시가총액 13조 원이 증발했다. 이 때문에 “만만한 게 카카오”라는 냉소적 농담이 나돌 정도다.

 

배차 알고리즘 논란, 카카오의 13조 손실

이러한 사례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검찰과 행정당국의 수사는 기업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과도한 수사나 처분은 국가경제와 기업 경쟁력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2020년 시작된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수사는 국내외 산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 기간 동안 삼성전자는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M&A), 글로벌 파트너십 등 주요 경영 결정을 유보하거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고, 업계에서는 ‘경영진 리스크’로 인해 한국 반도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공격적 투자를 주저했다는 평도 있다. 물론 “총수 부재로 ARM 인수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러나 총수 리스크가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기업의 전략적 선택지를 제한했다는 분석은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에 가깝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은 해당 사안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음을 명확히 했지만, 이로 인한 사업 기회 상실 등은 이미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피해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카카오모빌리티도 마찬가지다. 2023년 2월, 자사 가맹택시에 유리한 배차 알고리즘을 운용했다는 이유로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받았으나, 서울고등법원은 2025년 5월 “해당 알고리즘은 기술적 특성을 지닌 플랫폼 본연의 기능일 뿐, 경쟁질서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며 과징금을 모두 취소했다.

이 수년 간의 행정소송 과정에서 카카오는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방어에 투입해야 했고, 유럽 최대 택시 호출 플랫폼인 프리나우(Free Now) 인수 계획도 무산됐다. 프리나우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등 유럽 11개국 170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울러 국내 모빌리티 업계 전반에서 혁신 실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기업을 무력화시키는 ‘수사 리스크’

이재용 회장과 카카오모빌리티 외에도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장기 수사 사례는 반복되어 왔다. 포스코의 경우 2018년 권오준 전 회장을 둘러싸고 수사설과 외풍설이 돌았다. 효성그룹의 경우, 조현준 회장이 2017년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2020년 2심에서 주요 혐의는 무죄, 일부(약 16~17억 원) 횡령만 유죄로 인정됐다. 그러나 이 재판 기간 동안 효성의 글로벌 탄소섬유 및 신사업 전략 추진이 지연됐다는 평가도 있다.

검찰 수사나 공정위 제재로 인해 기업의 투자 계획이 미뤄지거나, 핵심 인력이 방어에 투입되는 일은 반복된다. 실제로 국가 연구기관(KDI 등)의 보고서에서도 수사·재판 리스크가 기업의 투자 결정과 산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카카오모빌리티의 통합 모빌리티(MaaS) 신사업은 공정위 제재 이후 위축됐고, 삼성전자의 법적 분쟁이 장기화되는 동안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산업계 분석도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증거에 기반한 기소’라는 원칙이 더 철저히 지켜져야 하며, 사회적 낙인이나 정무적 판단이 경영 활동에 영향을 줄 경우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고위 경제사건에 대한 사전 심사 제도 도입, 무죄 시 책임 기관의 배상 및 사과, 행정기관 오판에 대한 민관합동 감사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기업은 치열한 시장과 촉박한 시간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간다. 수사와 처분이 불가피하더라도, 그 결정 하나하나가 한국 산업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유명 총수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일이 마치 수사팀의 업적이라도 되는 듯한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

과도하거나 신중하지 못한 수사는 한 경영진이나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 무죄라는 판결조차도 잃어버린 시간과 기회비용을 되돌릴 수는 없다. 제도 개선과 수사 관행의 혁신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