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특검의 외환죄 수사, 선 넘지 말아야
한국 헌정사에서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장면들은 ‘최초의 역사’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곤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 대통령 특권 조항은 건국 이래 이재명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적용됐다. 사법부는 이 조항을 관대하게 해석해 대통령의 다섯 종류 재판을 모두 중지시켰다. 이로써 형사범죄 피고인도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이 중지되는 선례가 확립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도 현직 때 저지른 외환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군 통수권자에 대한 외환죄 적용 방침은 사상 처음이다. 특별검사는 어떤 선례를 남길 것인가. 한국은 소급입법과 특별법 제정으로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받는 나라가 된 지 오래다. 따라서 실패한 (친위)쿠데타의 주인공에 불과한 윤 전 대통령이 내란죄 혐의로 소추되는 일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외환죄는 경우가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군사·외교 의사결정에도 부담 줄 것
윤 전 대통령을 외환죄로 엮어 넣으면 후임 대통령들이 군사·외교 의사결정을 하는 데 많은 제한을 받을 것이다. 현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 안보 분야 국가 기능이 전체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외환죄 적용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외환죄는 “외국과의 통모”가 전제되는데 예를 들어 남북정상회담 같은 통치권 차원의 결단이 정치적 사법에 의해 ‘통모의 증거’로 악용될 씨앗을 굳이 뿌려놓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나라가 클수록 외국 혹은 적국과 상대할 때 심리적인 것을 포함해 무궁무진한 수단과 방법들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국회 다수당이 탄생시킨 특검은 정치색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국군 통수권자와 군 지휘부가 적국을 상대로 은밀하게 전개한 군사작전을 다루는 대목에선 조심해야 한다. 잘못 건드리면 국가 방위 기능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는 까닭에서다. 군 내부의 움직임과 패턴이 고스란히 노출돼 적국의 공격에 속절없이 당할 수도 있다.
국가에는 지켜야 할 ‘비밀’이 있다. 종종 군대는 기만을, 외교는 사기를 전략으로 사용한다. 기만과 사기가 인정되는 건 상대국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해야 하는 절대적 필요 때문이다. 이는 정당한 행위이며 일종의 ‘국가면허’에 해당한다. 동맹국과의 군사작전, 적국 정찰, 외교적 물밑거래는 은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기만과 사기를 ‘허위’ ‘조작’이라며 낱낱이 파헤치고 거리낌없이 세상에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얻는 건 국가 능력의 쇠퇴와 적대국의 환호일 것이다.
김정은, 앉은 자리에서 한국군의 비밀작전 정보 다 받아봐
지금 북한 김정은은 우리 특검의 발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자료 공개, 일부 언론의 무차별한 보도로 한국군의 비밀작전 정보를 앉은 자리에서 다 받아보고 있다. ‘정찰드론중대 숙달비행훈련’ ‘저가형 소형무인기 추진 경위’ 등 1급 기밀 문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있다.
특검의 외환죄 수사가 길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검이 여론과 집권세력의 기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마땅히 보호해야 할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외면할까 두렵다.
특검의 과잉수사는 김용대 드론사령관(58·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 의해 기각됨으로써 일단 제동이 걸렸다. 특검은 외환죄는커녕 ‘일반 이적죄(우리 군의 군사상 이익을 해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조차 적용하지 못한 채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혐의로만 영장을 청구했는데 역시 통하지 않았다. 김 사령관이 지휘한 ‘평양에 드론을 날려보낸 비밀 군사작전’이 과연 한국군의 군사상 이익을 해쳤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얘기할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특검이 나무만 좇다 숲에서 길을 잃는 일이 없도록 전체를 두루 살피며 수사를 진행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