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도 넘은 ‘보은 인사’…李 변호하면 출세가도 [박동원의 시시비비]
민정비서관부터 법제처장까지 국회·정부 요직에 12명 배치 ‘가짜뉴스’ 김의겸·‘잇단 설화’ 최동석 등 흔들리는 인사 조치
역대급 갑질 논란에도 계속 버티던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이하 직책 생략)는 임명을 목전에 두고 결국 ‘자진 사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일반 국민, 아니 정치권에서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던 강선우의 장관 임명 강행 분위기를 두고 여권 내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한 여러 설이 제기된다.
어쨌든 향후 권력 누수를 예견함과 동시에, 계엄 이후 독주하던 이재명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이재명 정권은 시민사회운동 세력과 민주당의 공동정권 성격이 강하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 탄핵을 외쳤던 ‘촛불행동’ 김민웅 상임대표의 친동생 김민석 의원을 초대 총리로 앉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군인 참여연대, 민주노총,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사회가 강선우 지명 철회에 동참한 것은 언제든 뜻이 맞지 않으면 돌아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향후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겉으론 중도실용 인사를 내세우지만 과거 인사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먼저 도를 넘은 ‘보은 인사’다. 이 대통령은 정치 입문 시절 통일부 장관 정동영의 팬클럽 회장이었다. 전문성 논란을 일으킨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지지를 선언한 보수 인사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관련된 네이버 대표 출신이다. 화제의 노동자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4년 이 대통령과 독서회를 함께 했고 19대 대선 지지 선언 등 10년이 넘은 관계로 알려졌다.
‘윤석열 인사 실패’ 반면교사 삼아야
더 큰 문제는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이 대통령 재판을 맡았던 조원철 변호사를 법제처장에 앉히는 등 12명의 ‘이재명의 변호인’이 국회와 정부 요직에 천거되며 ‘변호사비 대납’ 논란을 일으킨 점이다.
되풀이되는 ‘코드 인사’도 문제다. 김민석 총리 등 내각의 절반 가까이가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박원순 성폭력 사건은 기획” “이재명은 하늘이 내린 사람” 등 잇단 설화를 일으킨 최동석씨를 인사혁신처장에, 흑석동 재개발 갭투자에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로 재판까지 받고 있는 김의겸 전 의원을 새만금개발청장에 임명했다. 과연 누가 이런 인사를 주도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과거보다 더한 ‘무원칙 인사’다. 비상계엄을 ‘민주적 폭거에 맞선 저항이자 정당한 대통령 권한’이라 주장했고, 도박·성매매·음주운전 처벌 반대 발언까지 했던 강준욱 교수는 국민통합비서관에 임명됐다가 거센 반발에 부닥쳐 이틀 만에 자진 사퇴했다. 강 교수는 한 보수 인사의 추천으로 발탁됐지만, 최소한의 검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과 인사 원칙이 도마에 올랐다. 더 황당한 건 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업 4법’을 ‘농망법(농촌을 망치는 법)’이라며 앞장서 반대했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킨 것이다.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억강부약’을 거스른 강선우를 비롯해 과연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지명·임명된 것일까.
정권의 초기 인사나 정책,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정권의 향방이 대강 예측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사흘 후 첫 외부 공식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만나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며 비정규직 1만 명 정규직화를 덜컥 약속했다. 이는 결국 역차별 논란을 낳았고, 이듬해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문제로 불공정 시비까지 더해져 ‘이대남’(20대 남성)들이 문재인 정권에 등을 돌리는 시발점이 됐다. 문 전 대통령의 이런 현실 괴리 행보는 지속됐다.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 붕괴를 가져왔고, 강남 타깃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결국 정권을 넘겨준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출범 2개월여 만에 박순애 교육부총리가 ‘만 5세 취학’ 정책을 꺼냈다가 4일 만에 폐기한 뒤 내상만 입고 열흘 후 사퇴했다. 국민 97.9%가 반대하는 정책을 국정 지지율이 첫 30% 이하로 하락하던 시기에 내놨다는 것은 대통령 지시에만 의존하는 국정 운영의 난맥상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논란으로 대통령실의 정책 조율 기능과 정무적 판단의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정치 초보 대통령의 아마추어리즘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명확한 국정 기조나 목표, 통치 전략과 로드맵 없는 산만하고 독선적인 대통령의 좌충우돌 국정 운영 스타일은 변화와 쇄신의 노력 없이 3년 내내 이어지다 결국 자멸했다.
불공정 논란 커지면 정권 심판론도 커져
이재명 정권의 초대 내각과 대통령실 인사 논란을 보며 몇 가지 우려가 떠오른다. 첫째, 원칙 없는 중도실용에 대한 걱정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중도실용 노선을 천명했다. “안보와 경제는 보수적 정책을, 사회와 문화는 진보적 정책을 쓰면 된다”고 말했지만 국방장관에 민간인 출신을 기용했다. 민간인도 물론 임명이 가능하지만 휴전 상태 분단국가에서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국정원장엔 ‘자주파’로 분류되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앉혔다. 중도실용은 최적의 방법론일 뿐 그 자체가 이념이나 목표가 될 수 없다. 중도실용을 잘못 해석하면 원칙 없는 ‘등가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실용주의는 그때그때 다른 기회주의나 편의주의가 아니다. 어설픈 중도실용은 자칫 목표를 잃고 길을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장기적으로 불공정 논란에 휩싸일 우려다. 문재인 정권의 인천국제공항 사태, 올림픽 단일팀, 조국 사태로 이어지는 불공정 논란은 정권 심판의 파고를 높였다. 비록 사퇴했지만 강선우는 미국 대학뿐 아니라 국내 대학 겸임교수 시절에도 정치활동 때문에 무단 결강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원 자질마저 의심되는 무책임한 행위다. 김민석 총리의 재산·특혜 논란, 정동영 장관의 가족 태양광 사업 등 이재명 내각의 도덕성 논란은 당장은 특검과 높은 국정 지지율로 인해 수면 아래 잠재해 있겠지만, 지지율이 떨어지고 또 다른 도덕성·불공정 논란에 휩싸이면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까지 합쳐져 폭발력을 가질 공산이 크다.
셋째, 정권의 오만에 대한 우려다. 역대 정권의 실패는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는 오만에서 비롯됐다. 국민의 알 권리와 국회 견제권의 상징적 제도인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오만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19명 검증에 증인 4명, 참고인 3명만 나왔고 자료 제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는 국민 앞에 검증받는 과정인데, 국민 앞에 이렇게 오만했던 인사청문회는 없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인사 검증 시스템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사과 한마디 없다. 내각 인사 추천 뒤 나온 강훈식 비서실장의 “대통령님 눈이 너무 높으시다”란 발언은 자아팽창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견제력이 상실된 가운데 권력의 자아가 팽창하면 자신감이 우러나고, 자신감이 커지면 오만이 자란다. 불과 반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