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 낙마’ 후폭풍…커지는 李 정부 ‘성남-경기라인’ 책임론

‘이재명표 실용인사’ 고비…김의겸·최동석 등 ‘인사 논란’ 종점은? 李 최측근 김현지·김용채 등이 검증 주도…검증 잇단 구멍에 민심 역주행 李 지지율도 취임 후 처음 하락…“권력자 의중 대신 인사 시스템 우선돼야”

2025-07-25     박성의 기자

“가까운 사람을 챙길 것이라면 사업을 하지 정치를 했겠나.”

5월29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만일 대통령에 당선되면 인사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물론 똑같은 역량을 가진 훌륭한 인재라면 가까운 사람을 쓰는 게 좋겠지만 이는 마지막 기준”이라며 “권한을 위임받을 내각 구성원이나 대통령실 수석, 보좌관 등 공무원은 충직하고 유능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사진 왼쪽)과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직을 자진 사퇴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민심’에 꺾인 ‘명심’…인사 시스템 도마에

인연보다 능력, 이념보다 실용을 강조했던 대통령 후보 이재명. ‘인사가 만사’라던 그의 각오와 달리 정권 초반 인사를 두고 ‘경고음’이 울리는 모습이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이 보좌진 ‘갑질 논란’ 끝에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실용 인사라는 간판 아래 발탁된 인사들의 능력과 자질을 두고 물음표가 따라붙으면서 정부의 ‘신뢰 자산’이 일부 소진된 모양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리얼미터와 전국지표조사(NBS) 등에서 오차범위 내 소폭이지만, 취임 후 처음 하락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른바 ‘성남-경기라인’으로 불리는 대통령 측근 그룹에 인사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능력 위주의 ‘실용 인사’는 취임과 동시에 현실화되는 듯했다. 그간 개국공신들이 주로 향하던 경제 부처 장관 자리에 현장 기업인들을 전면 배치했다. AI(인공지능) 전문가인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이사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각각 앉혔다. 대통령실에 신설된 AI미래기획수석에 하정우 전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을 발탁한 것도 화제를 모았다.

‘진영의 벽’도 깨부수는 듯했다. 정권 교체에도 전 정부 인사들을 잇달아 중용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이어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유임이 결정됐다. 논란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오광수 전 민정수석을 둘러싸고 재산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불과 임명 닷새 만에 사표를 받았다. 오 전 수석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로 측근으로 꼽힌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공직기강 확립과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의 중요성을 두루 감안했다”고 그의 낙마 배경을 밝혔다.

그렇게 순항하는 듯했던 이재명 정부의 인사에 찬물을 끼얹은 이는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다. 전문성과 민심을 중시한다던 정부가 돌연 그를 둘러싼 ‘갑질 의혹’에는 침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다. 구체적인 증언과 제보가 쏟아졌지만 여당 원내 지도부는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했고, 대통령실은 “여당 지도부의 뜻”이라며 강 전 후보자 임명 강행 의사를 밝혔다.

반면 ‘제자 논문 표절’ 논란에 휘말렸던 이진숙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은 철회했다. ‘측근들의 고발→야권의 공세 집중→민심 악화’라는 같은 삼중고 앞에 처한 두 사람이었으나, 대통령실은 정반대 판단을 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정치인 강선우’와 ‘비정치인 이진숙’의 차이가 운명을 가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재선 의원이자 강성 친명(親이재명)계인 강 전 후보자와 대통령의 각별한 인연, 여당 의원들과의 사적인 친분이 ‘제 식구 감싸기’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 이른바 인사청문회에서의 현역 의원 ‘불패 신화’가 이번 정부 들어서도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공언해온 ‘실용 인사’가 강 전 후보자에게 적용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당장 진보진영에서부터 불만과 분노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바닥 민심을 중심으로 점점 여론이 악화하자 박찬대 당대표 후보까지 공개적으로 “민심을 위해 강 후보자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공개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결국 강 전 후보자는 7월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잘해보고 싶었으나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며 끝내 후보직을 내려놓았다.

7월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강선우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여야 의원들의 피케팅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견제·균형 ‘흔들’…與 내부서도 “구조 문제”

야권의 과녁판에 올랐던 강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이재명 정부는 부담을 한층 덜게 됐다. 문제는 이번 정권 들어 논란이 된 인사가 비단 강선우 의원 한 명이 아니란 점이다. 강준욱 전 국민통합비서관은 ‘비상계엄 옹호 발언’ 논란 끝에 물러났고,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과거 막말 논란이 뒤늦게 불거진 상태다.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 가짜뉴스’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의겸 전 의원이 새만금개발청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 최근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됐던 송기호 비서관이 경제안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배경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미 관세 협상의 중요도를 고려한 수평이동’이라고 설명했으나, 정치권에선 50일 만에 국정상황실장을 교체했다는 점 자체가 ‘인사 실패’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이재명 정부의 인사 시스템도 도마에 오른 상태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위원장은 7월24일 비대위 회의에서 이재명 정부가 거셌던 낙마 여론을 무릅쓰고 강 전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려 했던 걸 되짚으며 “인사 검증 시스템이 사실상 무너졌고, 이재명 정권에서 작동하는 것은 오직 명심(明心·이 대통령의 의중)뿐임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CBS라디오에 출연한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지도자는 잔인한 결정을 경솔할 정도로 빨리 전광석화처럼 해주는 것이 좋은데 이번에는 만시지탄”이라고 지적했다.

‘인사가 만사’라 했던 이재명 대통령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인 이른바 ‘성남-경기라인’에 권한이 집중되면서 인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임 문재인·윤석열 정부와 다르게 인사 추천 체계가 불투명한 탓에 ‘밀실 인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이재명 정부와 마찬가지로 탄핵 정국을 거쳐 조기 대선 후 인수위원회 없이 초대 내각 인선에 착수한 문재인 정부는 인사 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장·정책실장·인사수석·안보실장·정무수석·민정수석 등이 참여하는 ‘인사추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인사·민정수석실에서 5~6배수 명단을 인사추천위에 제출하면 이를 심사해 후보자를 3배수 정도로 압축하는 방식으로 검증 시스템을 이원화했다. 윤석열 정부는 청와대의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으로 이관했다. 이를 두고 ‘검찰 정국’이라는 비판도 나왔으나, 윤석열 정부는 인사 정보가 사정 업무에 이용되지 않도록 부처 내 ‘차이니스 월’(부서 간 정보 교류 제한) 제도를 도입하며 대처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윤석열식 인사 관리 시스템을 모두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부터 그의 최측근 보좌진으로 활동해온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과 김용채 인사비서관 등이 인사 검증을 도맡아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별도의 인사수석이나 인사기획관급 인사를 두지 않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제외한 다른 핵심 참모들도 인사 검증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 두 사람이 막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최근 주요 인사와 관련한 잡음과 낙마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정 소수에게 정보와 권한이 집중되면 제대로 된 인사 검증이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인사 추천과 검증, 여론 반응 파악, 피드백 반영 등 인사를 둘러싼 과정 전체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이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인데, 지금 이재명 정부의 인사 시스템에서는 바로 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 대신 ‘독점과 독주’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관계자는 “새 정부 초반에는 각 채널을 통해 다양한 인사 추천이 쏟아지는데 같은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한 특정 라인이 인사 실무를 독점하면 결국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국민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7월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4차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인사 리스크 누적되면 국정 동력 꺼질 수도”

‘보은·코드·무원칙 인사’ 등의 비판이 나올 만큼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잡음이 이어질 경우 이재명 정부의 개혁 동력이 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오름세는 단기적 기대감에 따른 것으로 아직 추가 상승 동력이 부족하다”며 “이럴 때일수록 인사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지율을 믿고 민심과 어긋나는 결정을 내릴 경우 오히려 하락세로 돌아설 수 있다”며 “윤석열 정부와는 다른 인사 기조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정권 교체기마다 바뀌는 ‘비상시적·비체계적 인사 시스템’의 한계가 반복되는 인사 참사의 구조적 배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한국 정치는 내각 인사뿐 아니라 공천 등에서도 시스템보다 권력자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다”며 “인사에 정해진 절차나 기준이 없는 까닭에 낙하산 인사가 횡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선 인재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공천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상시적이고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 이른바 ‘섀도 캐비닛’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