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정치’ 절정 속 민주당…‘박찬대 vs 정청래’ 당원들의 새 리더상은?
‘안정’ 방점 이재명 팬덤은 박찬대 밀고, ‘심판’ 중시 김어준 팬덤은 정청래 지지? 아웃사이더·팬덤·강경파로 성공한 李…‘이재명의 길’ 똑같이 걷고 있는 정청래 현재권력 대 미래권력의 충돌 임박?…당심 선택에 달린 민주당 정부의 미래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관계는 변수의 연속이다. ‘당정 협치’라는 표현 뒤, 국정 안정을 도모하는 현재권력인 대통령과 차기 주도권을 쥐려 하는 미래권력인 당대표 사이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기 때문이다. ‘정치적 2인자’를 두지 않는 스타일의 이재명 대통령이 선이 굵고 자기 스타일이 강한 당대표를 만났을 때 과연 어떤 관계가 형성될지 정치권이 주목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찬대·정청래 의원 모두 이 대통령과의 호흡을 앞세워 당권 레이스를 출발했지만, 당선 후 목적지가 다르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에 방점을 찍은 ‘실무형 정치인’ 박 의원과 달리 대야 총공세에 나선 정 의원은 ‘전투형 정치인’이라는 평가다. 이에 ‘정청래의 시대’가 열릴 경우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이 예상보다 일찍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명심(明心·이 대통령의 심중)은 박 의원에게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실제 박 의원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성공 파트너’로 활약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강한 메시지보단 유능한 실행력을 갖춘 리더가 필요한 시기라며, 이 대통령의 실무적 파트너로서 당정 간 진정성 있는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대야 투쟁 방식을 두고선 ‘국민의힘 의원 45명 제명’ 주장을 하면서도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이 발의한 ‘위헌 정당 해산’ 관련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해선 헌재의 독립성 침해를 우려했다. 이는 ‘강경파’의 대명사인 이 대통령조차 국정을 책임지면서부터 지지율 전광판을 바라보며 신중해진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관건은 당심이다. 당대표 선거의 55% 비율을 차지하는 권리당원의 표심은 어디를 향할까. 8·2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대표가 결정되는 가운데 선거 기간 공개된 대다수 여론조사에선 정 의원 지지세가 더 강했다. 앞서 치러진 충청·영남권 경선의 투표 누계 결과 역시 ‘정청래 62.65% 대 박찬대 37.35%’로 정 의원이 큰 격차로 앞섰다. 마지막 남은 호남·수도권의 ‘원샷 경선’에선 권리당원(55%)보다 1표당 가치가 높은 대의원(15%) 투표가 막판 변수로 꼽히지만, 당원들은 ‘더 강한 리더’를 원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팬덤’ vs ‘김어준 팬덤’
이번 민주당 대표 선거는 전임 당대표였던 이 대통령의 잔여 임기 1년만 채우게 된다. 하지만 그사이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이라는 정치적 실권이 주어지는 만큼 ‘1년짜리 대표’ 이상의 중량감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차기 당대표에 대한 당원 표심은 결국 민주당 정체성의 향방을 보여줄 이정표이자, 이 대통령이 그간 쌓아온 팬덤정치의 결과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 정 의원이 현재 당심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먼저 팬덤정치다. 현재 민주당은 당원의 의사가 그 어떤 정치인보다 힘이 센 당원주권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의 길에 들어서게 된 이유이자 가장 큰 동력이기도 하다. 그런 팬덤정치의 흐름에 이 대통령 못지않게 잘 올라타서 정치 역정을 걸어온 이가 바로 정 의원이라는 평가다.
여기서 흥미로운 포인트가 포착된다. 현재 민주당 안팎에서는 ‘정청래 대 박찬대라 쓰고, 김어준 대 이재명이라 읽는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엄정 중립’ 기조 속에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 이 대통령과 친(親)민주당 성향의 방송인인 김어준씨가 전당대회에 소환된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둘 사이는 그야말로 지금까지 ‘찰떡궁합’ 그 자체였다. 한 사람은 팬덤정치를 이끈 장본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팬덤정치를 각종 미디어를 통해 확산시킨 주요 스피커였다.
일각에서 찰떡궁합 사이를 대결 구도로 치환하는 이유는 둘의 목표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목표가 생긴 반면, 김어준씨에겐 계엄을 일으킨 내란 세력을 심판하는 일이 여전히 제일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안정에 방점을 찍는 ‘이재명의 팬덤’과 심판을 강조하는 ‘김어준의 팬덤’이 분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협치’에 대한 입장도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보면, 선명성을 강조하는 정 의원을 ‘김어준의 팬덤’이 밀고, 안정성을 중시하는 박 의원을 ‘이재명의 팬덤’이 지지하는 흐름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
여권 관계자들 얘기를 종합하면, 민주당 당원들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이 대통령의 ‘3대 개혁(검찰 개혁·사법 개혁·언론 개혁)’을 꼽고, 두 후보 중 이를 누가 더 빠르고 완결성 있게 추진할 것인가를 표심의 기준으로 삼는 모습이다. 여권에선 이를 지지층의 ‘개혁에 대한 의지’라고 풀이하며, 이에 따라 ‘더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분위기라고 해석하는 기류가 많이 감지됐다.
李, ‘아웃사이더’의 팬덤정치가 부담스러운 이유
정 의원이 현재 앞서가는 두 번째 이유로는, 이 대통령과 정 의원의 정치적 유사성이 꼽힌다. 정 의원이 걸어온 정치의 길부터 보면 이 대통령과의 공통점이 눈에 띈다. 이 대통령에 대한 분석의 대표적인 특징은 ①아웃사이더이자 도전자의 성향 ②팬덤정치의 최대 수혜자이자 당원 주권의 특징을 제대로 활용해온 정치인 ③강경파 대표주자로서 야당과의 끝장 승부에 사활을 거는 리더십 등이 꼽힌다. 현재 ‘이재명의 자리’를 이어받을 당대표 후보 중 이런 성향을 모두 보이는 정치인은 정 의원이라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오랜 기간 당내 비주류에 머무르며 아웃사이더·도전자적 위치에 있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쟁취한 성남시장으로 당 바깥에서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해 오랫동안 변방의 장수에 머물렀지만, 특유의 ‘사이다’ 화법과 행정력에 힘입어 주류로 변모했고, 끝내 대통령직에 올라섰다. 정 의원도 자신이 이 대통령과 같은 비주류였음을 강조해 왔다. 그는 “이 대통령도, 저도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였다”면서 “(2021년) 모든 의원이 일어나서 국회의원도 아닌 대선후보 이재명에게 박수를 치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찡해서 눈물이 나더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둘을 묶는 또 다른 키워드는 팬덤정치다.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팬클럽인 손가혁(손가락혁명군)부터 시작해 개딸(개혁의 딸) 등 자신을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을 토대로 목소리를 전파해 왔다. 이 대통령은 SNS 등 각종 디지털 신기술에 올라타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주장하며 팬덤을 키워왔다. 정 의원 역시 이런 경로를 밟으며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런 흐름 속에서 지금의 민주당은 당원주권주의 절정 시대를 맞았다. 이에 차기 당대표 역시 대의원이 아닌 당원의 힘을 중심으로 선출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여권 내에서도 ‘팬덤이 없는’ 정치인은 선거에 도전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국회의원 중 유튜브 구독자 수가 가장 많은 정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앞서가는 흐름은 역시나 자연스럽다.
이 대통령과 정 의원 모두 지금까지 초강경파 노선을 걸어온 점도 유사하다. 정 의원은 그간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내며 권력과 의석수로 국민의힘을 누르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에 ‘당대표 정청래’의 모습은 더 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가 ‘내란 종식’이란 명분하에 국회의 의결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가 가능토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만 봐도 ‘여야 협치’보단 ‘여당 독주’를 이어가려는 의도가 선명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 지점에서 지금의 이 대통령과 정 의원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대통령 이재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협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미리 보는 ‘박찬대 시대 vs 정청래 시대’
민주당 내부에선 두 후보 중 누가 당대표가 되든 이재명 정부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다만 대야 투쟁을 두고는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 의원의 경우 현재의 국민의힘 상황을 보면 ‘해산이 정답’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심판’ 방식을 두고는 신중론을 펼친다. 반면 정 의원은 헌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저해 논란이 있는 법안을 발의하며 브레이크 없는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지방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세력화 전략을 두고도 상반된 리더십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있다. 친명계라는 확실한 그늘 아래 있는 박 의원은 ‘정치적 2인자’를 두지 않는 이 대통령의 기조에 따라 자기 정치나 세력화를 적어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선거 공약으로 밝힌 공천 시스템 개선안 역시 △전략공천 당원 추인제 △당내 선거 공영제 △의원총회 공개 확대 등 ‘인물’이 아닌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편 정 의원은 사실상의 ‘노(no) 컷오프’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여권 내부에선 점진적으로 자기 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는 당대표 선거 출마 직후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문화를 청산하겠다’며 젊은 세대 정치인들을 전면에 세워야 한다는 인적 쇄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정 관계에선 ‘입법권력’을 둘러싼 은은한 기싸움이 펼쳐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3대 개혁 등 핵심 정책안과 관련해 추진 속도와 세부적인 방안을 두고 당정 간 엇박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더 강한 그립을 쥘 수 있는 관계는 정 의원보단 박 의원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의원이 당대표가 된다면 이 대통령과 더 유연하고 편안하게 소통하겠지만 정 의원이 당선되면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정 의원 주위에 모여있는 강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도 변수가 된다. 이럴 경우 이재명 정부가 전반적인 국정 운영을 총괄하겠지만, ‘정청래의 민주당’이 입법권력을 쥐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 정부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모양새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