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세’와 ‘케릴라’, 올 시즌 프로야구판 완전히 바꿨다
“역대급 외국인 투수” 한화 에이스 폰세, 2025 시즌 MVP 예약 ‘갑툭튀’ KT 안현민, 오른손 거포 부재 해결…LG 송승기와 신인왕 다툼
고봉세. 한화 이글스 팬들이 외국인 투수 코디 폰세(31)를 부르는 애칭이다. 야구팬들은 외국인 선수가 잘할 경우 우스갯소리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여권을 뺏자”라는 말을 하는데 폰세의 경우는 아예 대전 시민이자 ‘고봉세’라는 한국 이름까지 얻었다. 그만큼 폰세의 실력이 아주 출중하다. 폰세가 등판할 때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가 구장으로 보러 올 정도다. 폰세를 상대했던 팀들은 “역대급 외국인 투수”라고 말한다.
폰세의 능력은 성적이 말해준다. 8월6일까지 22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개막 후 14연승이다. 2003년 정민태(당시 현대 유니콘스), 2017년 헥터 노에시(KIA 타이거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KBO리그 개막 후 선발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이다. 타선이 2~3점만 내줘도 이긴다. 한화 타선이 강했다면 연승은 더 길었을 것이다.
22경기 선발 등판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괴물’
폰세는 8월6일 현재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1점대 평균자책점(1.69)을 기록하고 있다. 2위 KIA 타이거즈 제임스 네일(2.38)과도 차이가 크다. 탈삼진(193개) 또한 독보적인데 경기당 평균 8.77개의 삼진을 낚아내고 있다. 현 추세대로면 폰세는 2021년 아리엘 미란다(두산 베어스)가 세운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225개·경기당 평균 8.03개)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폰세는 5월17일 SSG와의 경기에서 8이닝 동안 18개 삼진을 잡아내면서 1991년 6월 선동열(당시 해태 타이거즈)이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연장 13회까지 뽑아낸 KBO리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과 34년 만에 타이를 이루기도 했다. 정규 이닝(9회)만 따지면, 2010년 5월 류현진(한화)이 LG 트윈스를 상대로 기록한 17탈삼진을 넘어선다.
한화가 다른 팀과 달리 올 시즌 긴 연패에 빠지지 않는 데도 폰세의 영향이 크다. 한화는 올해 두 차례만 4연패(3월23일~27일, 3월30일~4월4일)를 기록했다. 이 또한 시즌 초반 하위권을 맴돌 때 일이다. 4월 중순 이후부터는 3연패가 최다 연패였다. 한화가 시즌 초반 타선의 집단 슬럼프 속에 10위까지 곤두박질쳤다가 지금 1~2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던 데도 폰세 영향이 컸다. 극강의 에이스가 마운드에서 버텨주니 반등의 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폰세는 문동주, 황준서 등 한화의 어린 투수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폰세의 강점은 높은 지점에서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는 것이다. 198cm 키에서 내리꽂는 최고 시속 158.6km 포심 패스트볼(평균 시속 153.4km·스포츠투아이 기준)도 위협적인데 여기에 싱커, 커터, 스플리터,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등을 섞어 던진다. 특히 킥(kick) 체인지업이 난공불락이다. 킥 체인지업은 서클 체인지업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지만 낙폭이 더 크다. 최대 10인치(25.4cm)까지 더 떨어진다. 패스트볼과 같은 투구폼으로 던지기 때문에 타자는 그대로 방망이를 갖다 댈 수밖에 없다. 폰세는 일본프로야구(NPB)에서는 주로 커터와 커브로 타자를 상대했는데, 여기에 제구되는 킥 체인지업까지 더해지니 타자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알고도 못 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폰세의 공에 타자들이 타석에서 혀를 내두르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부상 없이 후반기를 잘 마무리하면 정규리그 MVP는 폰세의 차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 성적은 물론이고 팀 성적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경쟁자로는 시즌 50홈런을 바라보는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타자 르윈 디아즈(8월6일 현재 36개)가 있지만, 팀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을 살펴봐도 폰세가 6.61인 데 반해 디아즈는 3.06에 그친다.
‘괴력의 사나이’ 안현민, 정교함까지 갖춰
대전에 ‘괴물’ 폰세가 있다면 수원에는 ‘케릴라’(케이티+고릴라) 안현민(22·KT 위즈)이 있다. 안현민은 그야말로 ‘갑툭튀’의 오른손 거포다. WAR만 놓고 보면, 폰세에 이어 리그 전체 2위(6.05)다. 폰세와 안현민만 WAR 6 이상이기도 하다.
안현민은 2022년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 38순위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김도영(KIA 타이거즈), 문동주(한화), 그리고 같은 팀의 박영현과 프로 입단 동기다. 마산고 시절에는 포수였으나 프로 입단 후 외야로 포지션을 바꿨다. 퓨처스(2군)에서 1년을 보낸 뒤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고, 전역 직후인 작년에는 16경기 29타석만 뛰어 아직 신인왕 자격을 갖고 있다.
안현민은 ‘괴력의 사나이’로 불린다. 전반기 10홈런 이상 때린 선수 중 평균 비거리(130.6m)가 가장 길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힘이 생기는 것 같아서” 꾸준하게 해온 웨이트 트레이닝 덕분이다. “640까지 쳐봤다”(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를 다 합해 640kg까지 든다는 뜻)는 그다. 군대에서도 꾸준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힘을 길렀다.
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교함까지 있다. 5월초부터 1군 붙박이 선수가 된 안현민은 8월2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단박에 타율, 출루율, 장타율 1위로 올라섰다. 8월6일 현재까지도 타율(0.362), 장타율(0.631), 출루율(0.473) 1위다. 출전 경기 수가 적은데도 홈런은 공동 7위(18개)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이 쳤다. 팀 내 유일의 3할 타자이기도 하다. 중심 타자 강백호의 부상 공백기에도 KT가 중위권 경쟁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안현민의 깜짝 등장에 있다.
안현민의 활약이 반가운 이는 비단 이강철 KT 감독만이 아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준비 중인 류지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흐뭇할 수밖에 없다. 오른손 거포가 부족한 대표팀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안현민은 외야 수비 능력도 괜찮다. 향후 문보경(LG), 노시환(한화) 등과 함께 대표팀 타선의 큰 기둥이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안현민과 신인왕 경쟁을 벌이는 선수는 LG 투수 송승기(23) 정도뿐이다. 송승기 또한 9승5패 평균자책점 3.12로 남부럽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다. 팀 성적도 안현민보다 좋다. 임팩트 면에서 안현민에게 다소 밀리지만 그가 시즌 10승 이상을 거둘 경우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안현민으로서는 시즌 끝까지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고봉세와 케릴라.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향해 가는 KBO리그를 가장 뜨겁게 달궈준 이들이다. 그리고 2025 시즌에 기억될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