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의 숨은 개척자’ IBK기업은행, 콘텐츠 기업 동반자로 우뚝 [권상집의 논전(論戰)]
영화 《명량》 《베테랑》 《국제시장》에 뮤지컬 《위키드》 《명성왕후》까지 5년간 1570억 투자 중국 문화굴기에 맞선 콘텐츠 산업 마중물 역할 톡톡히
사람들은 은행에 대해 다른 업종보다 돈을 훨씬 쉽게 번다고 비판한다. 혁신과 변화에 뒤떨어진다는 등의 편견을 갖고 있다. 금융업을 땅 짚고 헤엄치는 산업이라고 부르는 이도 많다. 주택 등 부동산을 담보로 서민에게 대출한 뒤 꼬박꼬박 이자를 받아 해마다 엄청난 수익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역대 최대인 10조원을 돌파했다.
정치권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24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금융기관도 건전하게 성장·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 이자 수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고 생산적 금융을 강조한 것이다.
금융 업계 최초로 투자 특화조직 만들어
이런 인식과 달리 현대사회에서 금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인공지능(AI) 및 첨단기술, 바이오, K콘텐츠 등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에 금융권 자금이 투입돼야 혁신을 창출할 수 있다.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자금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가치를 A에서 B로 이전하는 역할에 그친다. 첨단기술, 콘텐츠에 투자해야 미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대중은 국내 K콘텐츠의 ‘큰손’으로 CJ ENM, 하이브, 지상파 등을 손꼽는다. 그러나 콘텐츠 분야의 숨은 조력자는 바로 IBK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이 영화 투자에 애정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기업은행은 10년 넘게 영화계에 지속 투자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명량》 《베테랑》 《국제시장》 《신과 함께》 《극한직업》 《파묘》 《베테랑2》 《검은 수녀들》 등을 꼽을 수 있다. 웬만한 영화제작사를 능가할 만큼 투자 대비 성과가 좋다.
다른 은행도 콘텐츠에 투자를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기업은행이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 금융 업계에선 최초로 문화콘텐츠 투자 특화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해당 조직은 작품성과 대중성, 흥행 요소를 꼼꼼히 따지며 콘텐츠를 분석하는 팀을 신설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을 갖춘 내부 인재를 꾸준히 육성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콘텐츠 기업이 글로벌 영화제작사 및 콘텐츠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해외 인재들을 영입해 투자 손실만 기록하는 점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기업은행이 자금을 투입해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는 11개에 달한다. 국내 배급사 중 가장 많은 1000만 관객 영화를 배출한 CJ ENM(7편)보다 많다. 최근에는 뮤지컬 《위키드》와 국내 창작 뮤지컬 《명성왕후》에 투자해 영상 콘텐츠를 넘어 뮤지컬 등 공연 콘텐츠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참고로, 영화관의 침체로 영화산업이 위기에 빠진 것과 달리 국내 뮤지컬 시장은 2022년 매출 4000억원을 돌파한 뒤 꾸준한 상승세다.
영화 및 뮤지컬뿐 아니라 음악공연 주관사도 기업은행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국내 콘텐츠 기업의 투자 성과가 뚜렷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업은행의 콘텐츠 투자와 수익 창출은 국내 K콘텐츠의 위상을 드높이고 조직의 성장에 공헌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얘기한다. 기업은행은 중소 규모의 제작사 발굴 등 올해까지 5년간 콘텐츠 분야에 1570억원을 투자했다.
‘가치와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다
K콘텐츠가 활황이기에 기업은행이 이 흐름에 올라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콘텐츠 산업은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High-Risk)’ 산업이다. 1990년대 문화콘텐츠가 세상을 바꾼다는 인식으로 인해 국내 대기업과 통신사 등이 해당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막대한 제작비 대비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며 이내 철수했다. CJ가 영화산업 투자를 중단할 것이라는 소문, 그리고 SBS가 넷플릭스와 손잡는 이유는 콘텐츠로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1세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 왓챠는 8월4일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왓챠에 200억원을 투자한 벤처캐피털 ‘인라이트벤처스’가 채권자 자격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과거 LG유플러스의 왓챠 인수설도 거론됐지만 끝내 무산됐다. 콘텐츠로 가치와 수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글로벌 콘텐츠의 대명사인 디즈니는 매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기업은행의 캐치프레이즈는 ‘중소기업의 든든한 동반자’다. 기업은행이 공개적으로 강조하는 방향성 역시 녹색금융 4대 전략과 ESG경영 성공 지원 대출 확대 등 중소기업의 녹색 전환에 있다. 그래서 기업은행이 K콘텐츠의 숨은 개척자라는 걸 아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과 통신사가 콘텐츠 투자 실패로 발을 빼는 상황에서도 기업은행은 지난 10년간 영화, 뮤지컬 시장을 만들어 나갔다.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늘 구성원들에게 국가경제 활력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에게 AI 못지않게 중요한 산업이 바로 콘텐츠 분야다. 팝, 게임, 영화, 웹툰, 공연 등 K콘텐츠 산업은 2023년 매출액 154조원을 기록했고 연평균 6%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에 이어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까지 문화콘텐츠는 국격 향상에도 공헌하고 있다.
중국이 모든 산업에서 사실상 한국을 완전히 압도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열세에 놓여있다고 인정하는 유일한 분야가 콘텐츠다. 그 결과, 중국은 텐센트를 중심으로 국내 영화, 게임, K팝 기획사 등 전방위에 걸쳐 지분투자와 인수합병(M&A)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K콘텐츠의 흐름을 C콘텐츠(차이나 콘텐츠)로 바꾸는 것이 중국의 문화 전략이다. 기술 혁신을 통해 기술굴기를 실현한 중국의 마지막 꿈이 문화굴기다.
영화, 음악, 뮤지컬, 게임 등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상위에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콘텐츠 투자는 줄어들고 있고 현장 분위기는 여전히 좋지 못한 상황이다. 이 점을 고려해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콘텐츠 산업의 혁신을 위해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문화는 긴 호흡으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단기 성과가 아닌 중장기적 관점으로 콘텐츠에 투자해야 한다. 마중물이 마르는 상황에서도 기업은행은 콘텐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 활력과 국격을 위한 기업은행의 마중물 역할은 그래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