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진짜 ‘상남자 정치’

2025-08-14     김재태 편집위원

요즘 방송이나 SNS 등에서 흔히 나오는 신조어들은 하도 많은 데다, 혹은 신기하고 혹은 너무 생뚱맞아서 어리둥절해질 때가 많다. 처음에는 짧은 밈 동영상에서 자주 보이다가 최근 들어 지상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테토남’ ‘에겐녀’란 말도 그중 하나다. 남성호르몬을 가리키는 ‘테스토스테론’과 여성호르몬을 지칭하는 ‘에스토로겐’에 남자와 여자를 붙여 만든 줄임말이다. 이 분류에서 ‘에겐남’이 남성스럽지 못하고, ‘테토녀’가 여성스럽지 못하다 해서 좋고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성향이 그렇다는 정도로 교감될 뿐이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비유적 표현이 있긴 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익숙한 ‘상남자’ 같은 말이 그에 속할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강건하고 활달해 어디든 저돌적으로 뛰어드는 남성을 예전에는 그렇게 불렀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8월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처럼 단편적이고 칙칙한 말이 최근에 느닷없이 정치권에서도 출현했다.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냈던 권성동 의원이 같은 당의 대표 선거에 나선 안철수 의원을 향해 이런 유의 단어를, 그것도 두 번씩이나 꺼내들었다. 권 의원이 안의원을 두고 “얼굴 보고 하지 못할 말을 뒤에서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인가”라며 “이런 ‘하남자 리더십’으로는 우리 당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직격한 것이 발단이다. ‘하남자’는 앞서 언급한 ‘상남자’에 반대되는 말로, 대체로 속이 좁고 옹졸한 남성을 일컫는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문 전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에 국회 본회의장에 홀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모습이 담긴 자신의 사진으로 응대했다. 이들의 ‘하남자’ 공방은 그로부터 3주 후에 안철수 의원에 대한 내란 특검의 소환 통보를 둘러싸고도 한 차례 더 불이 붙었다. 다 알다시피 안 의원은 비상계엄에 대한 당의 성찰과 단절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고, ‘찐윤(진짜 윤석열계)’으로 통하는 권 의원은 특정 종교단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다.

권 의원은 나약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상남자 같은 모습을 보여 달라는 의미를 담아 안 의원에게 ‘하남자 리더십’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더 정의롭지 못한 일에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허세를 보였는지는 대중이 이미 잘 알고 있다. 부정의에 완강히 저항하고, 위험 앞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지 않으며, 자신의 책임에 대해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 더 상남자에 가깝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이제는 철 지난 말이 된 상남자·하남자나 따지며 멘털 견주기를 하는 모습도 치졸하거니와,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에 치우친 채 펼치는 말싸움은 공허할 따름이다. 그들이 굳이 ‘선이 굵은 정치’를 말하고 싶다면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정해준 선을 넘지 않고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데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직후 관례처럼 이어져오던 야당 방문을 외면한 정청래 대표의 편협한 선택이나, 극우의 침투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여전히 미온적인 국민의힘의 태도도 모두 당당해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다. 마주하기 싫고 몰아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상대에게도 기꺼이 악수 정도는 청하고, 과거의 잘못을 깔끔하게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아는 당당한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이 많은 국민의 마음임을 깨우쳐야 한다. 지금 여야에는 상대방을 무턱대고 윽박지르거나 배척하는, 허세에 찬 상남자 태도가 아니라 부드러운 권력, 섬세한 권위로 상대를 제대로 설복할 줄 아는 진짜 정치가 더 많이 필요하다.

김재태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