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드라마의 ‘화려한 날들’이 다시 오려면…

새로운 가족 서사로 승부수 던진 《화려한 날들》, 변수는 시청률? 고정 시청층 중심 전략엔 한계…TV 주말드라마가 언제나 ‘화려한 날’일 순 없다

2025-08-23     정덕현 문화 평론가

주말드라마의 시청률 추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선택적 시청이 일반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시청률이라는 잣대에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딜레마를 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건 아닐까.

소현경 작가가 새로운 KBS 주말드라마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지금껏 별 기대 없이 주말드라마를 흘려보내던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소현경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작이었던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렇다. 주말드라마로서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었다. 그간 주말드라마의 주제는 가족주의에 고정돼 있었다. 어려움이 닥쳐도 가족이 최우선이고, 문제의 해결점도 가족 안에서 찾는 구조였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다르다. 제목에 담긴 것처럼, 가족보다 개인, 즉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가장 서태수(천호진)는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기타 연주라는 평생의 꿈을 마주하게 된다. 안타까운 엔딩은 당대의 많은 시청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가족보다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 색다른 가족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최고 시청률 45.1%(닐슨코리아)는 물론, 시대에 걸맞은 가족관을 제시했다는 호평까지 받으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주말드라마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미니시리즈와 주말드라마를 넘나들었던 소현경 작가의 탄탄한 필력 덕분이다. 28부작인 《찬란한 유산》은 분량과 내용 면에서 미니시리즈와 주말드라마 중간쯤에 해당하는 독특한 서사를 구사했다. 막장도 아니고, 블록버스터도 아니며, 호화 캐스팅(이승기와 한효주가 출연했지만 둘 다 당시만 해도 떠오르는 신예들이었다) 없이도 가족드라마적인 틀에 미니시리즈의 극적 서사를 더해 최고 시청률 45.2%를 기록한 작품이었다. 이후 소현경 작가는 《검사 프린세스》 《49일》 《투윅스》 《두번째 스무살》 같은 미니시리즈와 《내 딸 서영이》 같은 주말드라마를 오가는 독특한 행보를 보여줬다

KBS2 《화려한 날들》 포스터 ⓒKBS2

《화려한 날들》,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오랜만에 KBS 주말드라마로 돌아온 《화려한 날들》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소현경 작가라면 뭔가 수를 낼 거라는 기대감 말이다. 드라마 초반이라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화려한 날들》은 기존 KBS 주말드라마와는 분명 다르다. 먼저 전개 속도부터가 그렇다. 비혼주의자 이지혁(정일우)은 오래전부터 그를 좋아해온 지은오(정인선)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지만, 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없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철벽을 치는 이지혁에게 상처받은 지은오가 힘겨워하는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돌연 건설회사 무남독녀인 정보아(고원희)가 이지혁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한다. 이후 이지혁이 이를 수락하면서 양가 부모들이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이 열리는 과정이 단 4회 만에 그려졌다. 여타 KBS 주말드라마였다면 적어도 10회 분량을 뽑아냈을 이야기 전개다. 소현경 작가는 주말드라마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서사를 질질 끌지 않는다. 빤한 공식을 따르며 회차만 늘리는 방식은 피한다.

《화려한 날들》은 지금 시대의 가족 갈등과 문제의식을 출발점에 세운다. 부모를 부양하며 살아왔지만 은퇴를 앞둔 시점에도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해 재취업을 하려 안간힘을 쓰는 이른바 ‘마처세대’인 상철(천호진)과, 가진 것 없는 집안에서 자랐어도 남다른 노력으로 인정받는 능력자지만 여러모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은 결혼은 하지 않으려는 비혼주의 성향의 젊은 세대 지혁(정일우)이 부딪치는 갈등이 그 핵심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나란히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서로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닥치며 자꾸만 충돌한다. 그래서 이지혁이 계약 결혼까지 하려는 상황이 벌어진다. 50~60대 중장년 세대들과 20~30대 청년 세대들이 사회에서 저마다의 취업 경쟁을 벌이는 현실을 한 가족 안에 모아놓은 설정이 꽤 흥미롭다.

《화려한 날들》은 단순히 주말드라마의 성공 공식 아래 익숙한 클리셰만을 놀이처럼 펼쳐놓는 작품은 아니다. 진지한 문제의식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부유층 사모님인 고성희(이태란)와 지은오 사이에 얽힌 기묘한 관계에서는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 코드의 냄새가 풍긴다. 익숙한 클리셰를 활용하면서도 본래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놓지 않으려는 소현경 작가 특유의 균형감각이 엿보인다.

KBS2 《황금빛 내 인생》 스틸컷 ⓒKBS2

시청률로만 판단하는 주말드라마에 미래는 없다

물론 《화려한 날들》의 이런 퓨전적인 선택이 시청률 화력으로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10년 전만 해도 가능했겠지만, 이제 지상파에서 20%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다. OTT를 통한 선택적 시청이 일반화되면서 지상파 시청률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와 올해 방영된 KBS 주말드라마를 보면, 이러한 흐름의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2024년 9월부터 2025년 1월까지 방영됐던 《다리미 패밀리》는 36부작으로 가족드라마의 틀에서 슬쩍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꾀했던 작품이다. 청렴세탁소를 운영하며 ‘법 없이도 살 정도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가족에게 어느 날 100억원 돈다발이 들어오며 벌어지는 블랙코미디였다. 가족드라마에 다소 장르적인 블랙코미디를 섞어 풀어낸 참신한 시도였지만, 최고 시청률은 19.7%에 머물며 20%대를 결국 넘기지 못했다. 100억원이라는 돈을 둘러싼 진정한 가치에 대한 서사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풀어낸 의미 있는 실험이었지만, 결국 이 작품은 ‘시청률 20%를 넘기지 못한 주말드라마’라는 프레임에 갇혀 평가절하됐다.

이후 KBS 주말드라마는 부랴부랴 구현숙 작가의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로 재정비에 나섰다. 구현숙 작가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처럼 전통적인 장인의 업을 이어받는 가족의 성장 서사를 잘 풀어낸다.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에서는 전통주를 빚는 술도가를 배경으로 형의 죽음 이후 형수를 중심으로 시동생들과 가족애로 똘똘 뭉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익숙한 주말드라마의 정서들을 잘 구현한 작품이었지만, 이 드라마 역시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최고 시청률 21.9%로 끝을 맺었다.

그 패턴을 이어받은 《화려한 날들》도 초반 시청률은 13%대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이렇게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KBS 주말드라마를 여전히 ‘시청률’이라는 틀로만 평가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

물론 여전히 해당 시간대를 기다리는 고정 시청자층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드라마는 주말드라마를 과거에 묶어두고, 스스로 노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시청자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고, 그 삶의 방식이나 취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말드라마가 시청률에만 얽매여 과거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머무른다면, 미래는 없을 것이다.

주말드라마가 과거 50%대 시청률을 내던 시기를 화려한 날들로 회고하며 계속 머무르면 갈수록 초라해지지 않을까. 이제는 시청률 꼬리표를 떼고, 이 시대에 어울리는 가족의 모습을 담아낸 드라마를 선보이는 게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또다시 화려한 날들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