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중공업’ 내각, 중진 정치인·공무원·대기업 출신 전면에 내세웠다
이재명 1기 내각, 총리·장차관급 인사 95명 전수조사…10명 중 5명이 ‘관료’ 출신 기업인 중용한 李, MB보다 많이 뽑아…역대 가장 많은 현역 의원 배치 李 그림자 권력 ‘성남·경기 라인’ 두각…檢 색깔 지우고 민주노총·전교조·민변 출신에 힘 실어
인사는 통치의 언어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을 중용하고, 누구를 배제하느냐는 그 자체로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치적 태도를 보여준다. 기자회견이나 연설보다 더 직접적이고 분명한 ‘행동의 언어’인 셈이다. “인사가 만사다.” 대통령 후보 이재명도 인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모든 국정을 챙길 수 없기에 위임받는 인사는 ‘유능하고 충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까지 발탁한 인사의 면면을 보면 ‘이재명식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중공업’(중진 의원·공무원·대기업)으로 압축된다. 이 대통령은 지금껏 강조해온 ‘유능함’을 3선 이상 국회의원, 베테랑 관료, 현장을 잘 아는 민간기업 수장으로부터 찾았다. 그러나 ‘일만 잘하면 된다’는 실용주의 인사 철학은 사회적 다양성까지 반영하지는 못했다. 이재명 정부의 1기 내각을 보면 여성과 청년, 사회적 약자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대·50대·남성 중심의 이른바 ‘서오남’ 체제는 이번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1. 李 발탁한 현역 의원 대다수가 중진
시사저널이 이재명 정부의 초대 내각에 포함된 국무총리 및 장차관급 인사 95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 중 약 51%(48명)가 관료 출신이었다. 차관급에 한정하면 이 비율은 59%(40명)에 육박한다. 특히 19부의 차관급 30명 중 비(非)관료 출신은 단 6명에 불과하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학자), 이진수 법무부 차관(법조인), 이두희 국방부 차관(군인) 등이다. 이번 조사에는 8월20일 기준 공석이거나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는 제외했다.
관료 중심 인사는 전통적으로 보수 정권에서 두드러졌던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장차관급 및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인사의 관료 출신 비율은 70%에 달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1기 내각의 53%가 관료 출신으로 구성됐다. 진보 성향의 이재명 정부도 이에 못지않은 수준으로 관료 출신 인사를 대거 중용한 셈이다.
관료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이 국회의원이다.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 및 행정 각부 장관 20명 중 9명을 국회의원 출신으로 발탁했다. 10명 중 4명꼴이다. 역대 정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발탁된 현역 의원 대다수는 3선 이상 중진급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안규백 국방부 장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5선 의원이다.
이재명 정부의 인사 중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기업인 출신 인사에 대한 과감한 기용이다. 이해충돌 논란 등으로 보수 정권조차 기업인 인사를 다소 꺼렸던 게 사실이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기업인 출신 인사를 단 2명만 등용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벤처기업인 출신 이영 전 국민의힘 의원을 앉힌 것이 전부였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기업인 출신을 역대 최대 규모(5명)로 기용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두산에너빌리티 사장)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네이버 대표이사)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LG AI연구원장) △하정우 대통령실 AI수석(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이 대표적이다. 내각은 아니지만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은 관료 출신이면서 LG그룹 차원의 글로벌 전략 싱크탱크인 LG글로벌전략개발원 원장을 지냈다.
2. ‘문고리 권력’ 쥔 김현지의 ‘성남 라인’
이재명 정부의 인사 설계도를 주도적으로 그린 건 이른바 ‘성남·경기 라인’으로 알려진다. 이재명 의원실 보좌관 출신인 김현지 총무비서관과 김용채 인사비서관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경기지사일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최측근 중 최측근이다. 공식 직함은 차관보다 낮지만 대통령의 인사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들이 그린 인사 밑그림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에 따른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전제돼 있다. 파면과 같이 비정상적인 사유로 대통령이 퇴진할 경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설치되지 않는다.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 전에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인사풀(pool)을 정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절차가 통째로 생략됐다.
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이재명 정부에서 두 사람은 당장 실무에 뛰어들 수 있는 중진 의원, 정통 관료, 기업 수장 출신 인사들을 ‘안정적 카드’로 내세웠다. 인수위 없이 출발해야 하는 새 정부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설계인 셈이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새 정부 초반에는 대통령과 오래 호흡을 맞춘 측근 인사들이 주도하는 구조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인사 추천과 검증의 권한이 특정인 몇 명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에는 별도의 인사수석이나 인사기획관급 인사가 없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제외하면 핵심 참모 대다수가 인사 검증에 참여하지 않는 구조다. 대통령과 오랜 시간 함께한 성남·경기 라인이 인사권을 독점할 경우, 자연스럽게 추천되는 인물들도 특정 네트워크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인사 시스템에 내부 견제 장치를 뒀다. 인사 추천은 호남 출신 정찬용 인사수석이, 검증은 영남 출신 문재인 민정수석이 맡는 식으로 추천과 검증을 분리해 균형을 유지한 것이다.
3. 尹 정부 흔적 ‘검찰’ 지우고 ‘노조’ 전면에
이재명식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검찰 출신이 대폭 줄고 노동조합(노조)과 시민사회 출신이 대거 발탁됐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은 사법고시 출신 16명 중 12명이 검찰 출신으로 검찰 중심 인사가 두드러졌지만, 이재명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이 이진수 법무부 차관, 봉욱 민정수석, 김희수 국정원 기조실장 등 단 3명에 불과하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전임 정부는 검찰 출신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검찰 출신 인사들을 핵심 요직에 과도하게 배치해 사실상 권력의 도구로 활용한 측면이 있었다”며 “대표적으로 이복현 금융위원장이나 교육부 정책보좌관 등도 모두 검사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 인사를 요직에 기용하는 것은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검찰 개혁’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검찰 개혁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국민 앞에 약속한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만약 검찰 출신 인사들을 전면 배치하면 공약 이행 의지에 대한 의문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혁 대상이었던 검찰 출신 인사들을 오히려 중용하는 상황은 국민적 기대와 개혁의 진정성 모두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신 이재명 정부는 노조 및 시민사회 기반 인사들을 주요 부처에 포진시켰다.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시민행동21) 등이다. 과거 보수 정권에서 배제되거나 견제받았던 세력들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들어선 셈이다. 다만 진보 정권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출신 인사들은 이번 내각에서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다.
4. 호남 신경 쓰면서 지역별 안배 챙겼다
‘보수는 영남, 진보는 호남’은 오랜 시간 한국 정치 지형을 규정해온 등식이다. 각 진영은 정권을 잡을 때마다 ‘텃밭’ 관리 차원에서 주요 보직을 특정 지역에 몰아줬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당시 100대 핵심 보직 중 35%를 영남 출신이 차지했고, 일각에서는 “경상도 사투리가 표준어가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반면 호남 정권으로 분류되는 김대중 정부에서는 한때 주요 보직의 37%가 호남 출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남 출신(경북 안동)이면서도 진보 성향을 지닌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인사 구성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총리 및 장차관급 인사 95명을 분석한 결과, 호남 출신이 30%(28명)로 가장 많았지만 영남 23%(22명), 수도권 25%(24명)과 큰 차이는 없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 1월 ‘전국정당추진특위 출범식 및 협력의원단 발대식’에서도 “잘못된 지역주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5. ‘서오남’의 벽, 이재명도 못 넘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의 그림자는 여전했다. 서울대 출신 인사가 전체의 36%(34명)를 차지했다. 범위를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로 넓히면 64%(61명)에 달한다. 아직 내각 구성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SKY 출신 비율이 76%였던 윤석열 정부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지방대 출신 인사는 13%(12명)에 불과하다. 전북대, 전남대, 동아대, 공주사범대 출신 등이 포함됐지만 ‘지방분권’을 강조했던 공약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편중과 학벌 편향은 이번 정부에서도 여전했다.
세대 구성 역시 균형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재명 정부 1기 내각에서 50대가 56%, 민주화운동 세대로 분류되는 86세대(1960년대 출생·1980년대 대학 입학)가 70%(66명)를 차지했다. 세대 교체보다는 익숙한 인물 중심의 코드 인사가 우선됐다는 분석이다. 성별 다양성도 실종 상태다. 내각 구성원 10명 중 8명이 남성이며 여성 인사는 극소수에 그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 민주당이 ‘다양성 부재’를 이유로 박근혜 정부의 내각을 강하게 비판한 당사자라는 점이다. 2013년 2월19일 민주당 37차 원내대책회의에서 박기춘 원내대표는 “모든 지역과 성별, 세대를 골고루 등용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국정 철학은 어디 갔느냐”며 “수도권과 영남 출신, 특정 대학에 편중된 인사는 대통합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12년 후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의 내각을 통해 과거 자신들이 제기했던 그 비판에 스스로 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서휘원 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우리 사회구조 자체가 이미 기득권 중심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실용만을 강조할 경우 결과적으로 주요 요직에 기존 기득권층이 다시 발탁되기 쉬운 구조”라며 “기발한 인사를 한다고 해도 현재의 인재풀이 대부분 기득권층으로 채워져 있다면 결국 의미 있는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 노동자, 농민 등의 대표성이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위해서라도 ‘기득권화된 인재풀’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할당주의자가 되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소수자와 비기득권 인재를 발굴하려는 의식적 시도와 정책적 설계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