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로 정권 바뀌었어도 지켜야 할 ‘대북 원칙’은 있다 [쓴소리 곧은 소리]
윤석열식 강경·무모함은 남북관계 파탄 낳았고 문재인식 맹목·유화책은 허망한 결과 초래 김정은·트럼프에 무시당하지 않아야…정보의 정치화 경계하고 비핵화 포기하면 절대 안 돼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 대북 철학과 전략적 틀, 그리고 정책구상과 행동방책을 담았다.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새 시대, 핵 없는 한반도”를 그리며,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그 과정의 특수 관계로서 “북한 체제 존중 및 흡수통일을 포함한 일체의 적대 불원”의 의지를 밝혔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를 상정하고,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인내하며,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혀가겠다고 다짐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8월21일)에서는 “동결, 축소” 후 비핵화로 가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정권이 바뀐 지난 두 달 반 동안 국정원과 국방부, 통일부는 대북 전단 살포 제어에 착수한 데 이어, 대북 라디오 5개·TV방송 1개의 52년 만의 첫 송출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고정식 확성기 20여 개 전부 철거, 그리고 개별 북한 관광 허용 검토 및 대북 민간 접촉 전면 허용 조치를 했다. 이 대통령은 8월18일 윤석열 정부 때 파기한 9·19 군사합의를 비롯해 남북 합의 중 가능한 부분부터 단계적 이행을 지시함과 동시에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굳건히 유지하는 바탕 위에 긴장을 낮추는 발걸음을 꾸준하게 내딛는 용기”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대북 행보는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5월 성남시장 시절, 박근혜 정부가 지자체의 남북 교류 및 지원을 허용한 것을 계기로 “통일의 첫걸음, 남북 교류, 성남에서 시작”을 선언한 뒤 2016년 ‘성남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 발족했고, 시에 전담팀을 꾸렸다. 2018년 경기지사 때는 평화부지사를 두었으며, ‘경기도 평화정책자문위원회’를 가동했다. 대통령의 대북 드라이브가 오래 준비된 것이며, 임기 내내 추진될 것임은 명징하다.
北, 한미 이간 노려…흡수통일 두려움도 있어
북한 지도부는 다양한 형태로 반응했다.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도발은 멈춘 상태이며, 대남 소음방송은 6월11일 밤부터 안 들린다. 상응의 기미다. 김여정 부부장은 대남·대미 담화에서 대남 대적관을 견지하고 한미동맹 폐기,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암시하는 한편, 미국에는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와 능력을 기정사실화하며 군축협상의 밑자락을 깔아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8월18일 한미연합훈련을 명백한 전쟁 도발 의지의 표현이라고 비난하고 “핵무장의 급진적인 확대”와 중대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19일 김여정 부부장은 이 대통령과 관계 장관들의 실명을 거론해 품평하고, “외교 상대국 불인정”을 공언했다. 화해 제스처를 기화로 남남 및 한미를 이간하고, 길들이기의 영향공작을 전개하겠다는 전략에서 흡수통일과 피포위의 두려움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쯤에서 대북 정책구상의 지속성을 위해, 정권과 진영이 바뀌어도 지켜져야 할 원칙을 되새겨본다.
첫째, “공리 공영·유무 상통”의 민족사적 고민과 희망은 대북 이전적 이득 제공이나 정권의 안전보장을 넘어, 한국 주도에 방점을 두는 실존적 접근에 의해 지탱된다. 이 대통령이 즐겨 쓰는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용병법”도 궁극의 목표는 전략과 외교적 압도를 통한 승리다. 북한에 대한 위협 인식은 현실에 터 잡아 견고해야 한다. 정보가 정책의 전제와 선호에 부합해 굴절되거나 선택적으로 수용되면 재앙을 부른다.
윤석열 정부 3년간, 강경 일변도의 무모함은 파국을 맞았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 시절, 맹목적인 유화책의 허망함이 면책되지는 않는다. 김 위원장이 2017년 11월29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에 내민 손을 잡았을 뿐임에도, 2018년 “한반도의 봄”을 치적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 2018년 3월8일 대북특사로 다녀온 뒤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있고, 어떤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던 정의용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속단했고, 정보를 정치화했다. 2019년 2월28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기 30분 전까지도 타결을 확신했으며, 통상 전문가를 안보실 2차장에 선임해 남북 교류의 제도화를 꿈꿨던 청와대, 그 정보 시스템은 오작동했다. 남·북·미 대화의 소중한 엔진은 소진되었다. 국민은 정권 교체로 그 책임을 물었다.
둘째, 남북 협상 및 대중국·러시아 전략적 대화는 국내 정치가 출발점이다. 대외 협상은 국내적 지지가 승산을 높이는 양면 게임이다. 국민은 속도와 태도를 늘 문제 삼는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의 진정성을 유심히 살핀다. 미·일 협력은 대북·중·러 지렛대 역할을 한다. 북한에 대한 ‘퍼주기식 양보’를 용납할 국민은 적다. 북한에 당당하지 못하면, 러시아와 중국에도 당당하지 못하게 된다. 국민의 의심과 미국의 불만을 사며, 일본이 지원을 기피한다. 북한 비핵화의 실현이 까마득하다고 해서 그 카드를 접을 수는 결코, 없다. 모든 전략적 셈법이 바뀐다. 국민이 감당치 못할 현상변경을 5년의 정권이 어찌 감당하겠나?
국민이 감당 못 할 현상변경 안 돼
셋째, 대북 정책은 큰 그림 안에서 정교하고, 실용적으로 조율돼야 한다. 각 부처의 정책들이 상충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통합되는 ‘미시(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각 조각이 서로 겹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아귀가 맞는 상태)’를 추구해야 마땅하다. 내각 안보 장관들의 힘이 두드러지고, 대통령실 안보실장이 왜소해 보이면 곤란하다. 모순되는 정책들이 돌출되고, 칸막이로 분절되면 파열한다.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누구보다 대통령이 신경써서 막아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김 위원장 남매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시당한다.
전쟁 없는 평화를 앞세우면서 한반도를 멸절할 북한 핵에 대해선 함구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내심 용인하고, 그 비핵화는 비현실적·도덕적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등 남한 내 핵무장 목소리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확언하는 미국과 철통같은 동맹을 말하면서도 북한의 바람인 핵 동결·군축을 대안으로 여긴다. 상호 체제를 존중하자면서 정전체제 관리 주체인 유엔사의 까다로운 DMZ 관리를 못마땅해한다. 전작권 환수를 원하면서도 조건 충족을 위한 한미연합훈련은 조정 혹은 중단을 주장하며, 방어적 훈련임에도 협상의 수단으로 삼고 싶어 한다.
희망으로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다. 희망이 없는 정책은 동력을 잃는다. 기대치와 현실이 합류해야 결실이 있다. 바라는 곳이 아니라, 지금 서있는 곳에서 전진해야 한다.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승부는 반반이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전쟁마다 위태롭다.” 2500년 전 손자의 통찰이 오늘 새롭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정원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다. 세종연구소와 통일연구원 등에서 북핵·외교·안보와 신안보 연구를 이어간다. 국가사이버안보센터 자문위원이며, 성균관대 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