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특검에 치이고 찬탄·반탄 다투니 지지율 추락만…개헌 저지선 붕괴 초읽기?

삼중고에 ‘바람 앞 촛불’ 신세…‘심리적 분당 상태’에서 ‘실제 분당 사태’로 치닫나 내분 격화…장동혁 “한동훈은 처리 대상” vs 조경태·안철수 “반탄파, 당 떠나라” 與 박지원 “국힘 분당 가능성 100%”…“건강한 보수의 활력은 李 정부에도 필요”

2025-08-22     박성의 기자

거센 바람 앞 촛불 신세. 위기의 제1 야당 국민의힘 얘기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3대 특검’ 수사(김건희 특검·내란 특검·순직해병 특검)의 칼날이 국민의힘 본진을 향하기 시작한 가운데, 이에 맞설 당의 단일대오는 심화된 계파 갈등 앞에 금이 간 모양새다. 여기에 지난 조기 대선 전후 추락한 민심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수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일각에선 야권 내 ‘심리적 분당 상태’가 ‘실제 분당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탄핵의 강’을 두고 찢어진 계파가 서로를 쇄신·청산 대상으로 못 박으면서 이들의 화해·공존이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일부 의원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당을 떠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면초가, 내우외환의 위기 상황 속에 지지율은 10%대에서 좀처럼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국민의힘이 삼중고에 휘말리면서 거여(巨與)에 맞설 ‘최후의 방파제’ 개헌 저지선(100석)마저 무너질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안철수, 김문수, 조경태, 장동혁(왼쪽부터) 당대표 후보들이 8월14일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6차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야당 탄압을 규탄하는 내용의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헌 저지선 붕괴, 분열로도 특검 수사로도 가능

보수 정치에는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친박(親박근혜)계와 비박(非박근혜)계로 갈라져 격렬히 충돌했다.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비박계가 집단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남은 친박계는 간판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꿔 명맥을 이어갔다. 결국 보수진영은 분열된 채 2017년 조기 대선을 치렀고 정권을 내줬다. 이후 친박도, 비박도 ‘나홀로 생존’에는 실패했다. 보수 정당들은 이어진 지방선거와 총선까지 내리 3연패를 했다. 야권 핵심 관계자들은 지금도 그 시기를 ‘보수의 암흑기’로 기억한다. 이 탓에 ‘분당’은 국민의힘 내 금기어처럼 여겨진다.

국민의힘 사정에 정통한 야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바른정당을 창당한 의원들은 용기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정작 그들은 이제 철새 소리를 듣는다”며 “이 학습효과 때문에 의원들이 당을 쉽게 나가지 못한다. 바른정당이 성공했다면 보수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국민의힘 안팎에서 그 금기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당이 찢어지고, 붕괴했던 2017년 그날과 2025년 지금 국민의힘 상황이 ‘데자뷔’처럼 유사해 보여서다. 당장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가운데 친윤(親윤석열)계와 비윤(非윤석열)계의 반목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당심’을 등에 업은 당내 반탄(탄핵 반대)파 주자들과 ‘민심’을 앞세운 찬탄(탄핵 찬성)파 주자들이 당권을 두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비판의 수위는 대선 경선 당시보다 거칠어졌다.

특히 반탄파 장동혁 의원이 거듭 ‘찬탄파와의 결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8월10일 진행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 방송토론회에서 “당론으로 탄핵 반대를 정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해 당원들이 뽑아준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시켰다”며 “그런 분들을 정확하게 ‘처리’하고 당을 단일대오로 묶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8월19일 마지막 방송토론회에서 장 의원은 한동훈 전 대표와 전한길씨 중 재보궐선거 공천 후보를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자 “이재명 정권과 열심히 싸우고 있는 사람”이라며 전씨를 택했다. ‘윤석열 어게인’을 외치는 전씨가 아닌 ‘윤석열과의 절연’을 말하는 한 전 대표를 ‘처리 대상’으로 규정한 셈이다.

‘친윤 청산’을 거듭 주장해온 비윤계 의원들의 반발도 거칠어졌다. 조경태 의원은 8월19일 방송토론회 후 기자들과 만나 장 의원의 발언에 대해 “내란옹호 동조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며 국민의힘 탈당을 요구했다. 찬탄 진영의 안철수 의원도 “(전씨는) 계엄을 옹호하는 사람 아닌가”라며 “(장 의원은) 바깥에 나가서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과 당을 차리고 거기서 활동하는 게 훨씬 좋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8월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박지원 “내년 지방선거 전에 국민의힘 분당될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구체적인 국민의힘 분당 시나리오는 물론 그 시점까지 언급되기 시작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21일 CBS라디오에 나와 “한동훈 계열 모 인사를 만났는데 장동혁이 당대표가 되면 자기들은 탈당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자신에게 직접 탈당 뜻을 내비친 국민의힘 의원이 한 명이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국민의힘 분당 가능성을 “100%”라고 내다봤다. 분당 시기와 관련해선 “전당대회 후, 내년 지방선거 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내전’이 아닌 ‘외풍’ 탓에 당세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계파 경쟁으로 당이 ‘지리멸렬의 늪’에 빠진 사이 ‘3대 특검’ 수사가 국민의힘 본진을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 등이 국민의힘 의원 5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가운데 특검은 유례없는 국민의힘 당사 압수수색까지 시도했다. 특히 ‘김건희 특검’은 권성동 의원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상당수 물증과 증언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동시에 ‘내란 특검’은 12·3 계엄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를 상대로 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을 수사 중이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 등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여당은 야당의 분열을 넘어 ‘분쇄’까지 기대하는 분위기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7월25일 “2025년 1월6일 공수처가 내란수괴 혐의로 윤 전 대통령을 체포하려 할 때 국민의힘 의원 45명이 한남동 관저를 둘러싸 체포영장이 집행되지 못했다”며 이들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당권을 쥔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8월1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권성동·추경호 등 의혹 당사자들을 강력 조치하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또 다른 글에서 “통진당(통합진보당)은 내란예비음모 혐의, 내란선동 혐의로 정당이 해산됐고, 국회의원 5명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면서 “통진당 사례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10번, 100번 정당 해산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8월8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찬탄(탄핵 찬성)파 후보가 등장할 때마다 ‘배신자’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李 정부의 위기는 곧 野 반등의 기회

현재 107석을 보유한 국민의힘이 찢어진다면, 보수 정당 입장에서는 개헌 저지선(100석)이 붕괴될 위기에 직면한다. 국민의힘은 21대 총선(2020년 4월) 103석, 22대 총선(2024년 4월) 108석으로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내우외환에 직면한 지금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을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정치권에서 슬금슬금 제기되고 있다. 만약 국민의힘의 개헌 저지선이 붕괴된다면 이재명 정부의 개헌 논의 역시 여당 주도로 흘러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당권 주자로 나선 김문수 후보는 8월10일 방송토론회에서 “과거를 계속 파헤쳐서 서로 싸우면 이 당이 분열돼 결국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고 이재명 독재를 도와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계파별로 쪼개지기 직전인 국민의힘이 ‘공공의 적’인 이재명 정부의 위기를 ‘단합의 기회’로 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검찰·사법·언론 개혁 및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 등을 기점 삼아 대정부 투쟁 단일대오를 구축하고 △대선 당시 드러난 40%대 반명(反이재명) 민심을 재확보해(김문수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얻었던 41.15% 득표율) △내년 지방·보궐선거에서 승리해 재기하겠다는 게 야권이 바라는 이상적 청사진이다.

문제는 정부·여당의 실책과 별개로 국민의힘을 향한 민심의 온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8월18~20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21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 평가한 응답자는 57%로 집계됐다. 이는 2주 전 조사(8월4~6일)보다 8%p 내린 수치다. 민주당 지지율도 4%p 하락하며 40%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 지지율은 3%p 올랐으나, 정부·여당의 하락세에도 19%에 그치며 여당에 큰 열세를 보였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14.2%.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일각에선 국민의힘 난파 위기가 이재명 정부에 득이 되지 않을 것이란 아이러니한 관측도 제기된다. 건전한 보수가 생존하지 못해 개헌 저지선이 붕괴돼 여당의 독주 우려가 커진다면, 이 대통령이 바라는 ‘통합과 실용의 정부’라는 목표가 요원해질 것이란 진단이다. 다만 한편에선 보수의 분열이 혹여 분당으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이 ‘보수의 퇴보’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국민의힘 분당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국민의힘의 각 계파가 어정쩡하게 공존하다 보니 혁신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라며 “그런 점에선 한국의 보수가 분화해 서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보수와 진보 사이에는 보수가 활력이 있어야 진보도 발전하는 ‘역의 관계’가 있다”며 “헌정주의에 기반한 보수 세력, 건설적 비판 세력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