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의 마지막 퍼즐은 ‘빅맨’ 귀화선수 영입
이현중·여준석 등 해외파 활약으로 ‘재도약’ 가능성 열어 문태종 아들 특별귀화 추진…“법무부 등의 최종심사 거쳐야”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이 2025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을 8강으로 마쳤다. 평가전 때부터 뜨거웠던 상승세를 앞세워 내심 4강 이상을 기대했으나, 4강 길목에서 중국을 만나는 바람에 만리장성에 막혀 석패했다.
안준호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피에 굶주린 늑대가 되어 상대를 물어뜯고 한국 농구의 전설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지만, 중국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이현중·여준석 등 해외파들의 활약 속에 농구계 안팎에선 “이번에야말로 중국과 해볼 만하다”는 분석이 많았으나 높이의 차이는 컸다.
8강이라는 성적표는 결과적으로 직전 대회였던 2022년 자카르타아시아컵과 동일했다. 당시 추일승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은 8강에서 뉴질랜드의 벽에 막혀 분루를 삼킨 바 있다. 한국 농구가 아시아컵 2회 연속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은 사상 최초인데,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7위)까지 포함하면,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아시아 무대에서도 우승을 다툴 정도 위상은 아니라는 것이 현실이 됐다.
아시아에 있어서는 안 될 생태계 파괴종으로 불리는 호주를 비롯해 신체 능력에서부터 차이가 큰 뉴질랜드, 전통의 강자 중국, 최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까지, 객관적 전력에서 우리보다 강한 팀이 한둘이 아니다. 이란 등 중동세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으며, 대만·필리핀 등 과거 우리의 승점 자판기로 불렸던 국가들조차 귀화선수 파워를 앞세워 만만치 않은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번 8강 성적이 이변이 아닌 이유다.
8강에서 멈췄음에도 팬들 뜨거운 시선 보내는 이유
그럼에도 대표팀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지난 자카르타아시아컵, 항저우아시안게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세대교체에 성공한 젊은 대표팀의 발전 가능성, 그리고 태극마크에 진심으로 임해준 선수들의 진정성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안 감독이 내내 강조하던 ‘원팀’이라는 부분에서는 역대 어떤 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장과 라커룸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돌파한 김종규를 모두가 함께 축하하거나 부상으로 대표팀을 중도 하차하게 된 이정현을 위로하면서 필승을 다짐하는 모습 등은 이번 대표팀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잘 보여줬다.
사실 평가전 이전까지만 해도 대표팀 전망은 썩 밝지 않았다. 서장훈, 김주성, 이승준(귀화 혼혈), 오세근, 김종규 등 역대 대표팀에는 시기별로 걸출한 ‘빅맨’ 자원이 나와줬다, 현재는 다르다. 김종규(34·206.3cm)는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이원석(25·207.5cm)은 성장이 멈춰있다.
하윤기(26·203.5cm) 외에는 믿을 만한 골밑 자원이 전무하다. 그런 하윤기조차 부상 후 회복 등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던 귀화선수 라건아(36·200.5cm)도 이제는 없다. 가뜩이나 국제 무대에서 높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표팀 입장에서는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언더사이즈 빅맨 이승현(33·197cm)의 출전 시간이 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대표팀에는 해외파 이현중(25·201cm), 여준석(23·202.5cm)이 있었다. 장신 포워드로 분류되던 이들은 주포로서 대표팀 화력을 이끈 것을 비롯해 수비 등 궂은일에도 열성적으로 임하며 공수에서 중심을 잡아줬다.
대회 도중 부상으로 조기 귀국하기는 했으나 KBL 최고 가드 이정현(26·187cm)은 국제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으며, 창원 LG 우승 듀오 양준석(24·180cm)과 유기상(24·188cm) 또한 각각 정통 포인트가드와 ‘3&D’(3점슛과 수비에 집중하는 스타일)로 활약해 줬다. 그 결과 대표팀은 왕성한 공수 활동량과 외곽슛을 앞세운 스타일로 평가전 4승 및 조별리그 2위(2승 1패), 8강 진출전 승리 등의 성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재린 스티븐슨의 귀화 작년부터 추진 중”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귀화선수도 없이 대회에 참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표팀은 분명 선전한 것이 사실이다. 팬들도 그것을 잘 알기에 비난보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귀화선수가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장신 귀화선수가 센터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면 전력이 더 강해지는 것은 물론 특정 선수들의 과부하도 적었을 것이다.
8강 중국전이 꽤나 접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약 중국 벽을 넘었다면 우리가 4강 혹은 결승까지 갔을 공산도 크다. 일각에서는 ‘꼭 그렇게 무리해서 귀화선수를 포함시켜야 되나?’라는 말도 나오지만, 이제 귀화선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대다수 팀이 귀화선수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만 없다는 것은 스스로 무기 하나를 버리고 시작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다른 팀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게 아닌, 비슷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회 내내 국내 팬들은 경쟁국들의 귀화선수를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한국에 최적화된 귀화선수는 현재 레바논 대표 선수로 뛰고 있는 디드릭 로슨(28·201cm) 같은 스타일이다. 빅맨으로서 포스트를 지켜주면서도 슈팅력, 패싱 감각을 두루 겸비한 선수라면 이현중, 여준석, 이정현 등 포워드·가드들과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내년 9월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일단 골밑을 장악해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대해 대한농구협회 관계자는 “귀화선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인지하고 있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특히 문태종(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농구의 금메달을 이끈 귀화선수)의 아들 재린 스티븐슨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확한 귀화 시기는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다. 대한체육회 스포츠 공정위원회 특별귀화 심의 통과 및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 최종 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만약 재린 스티븐슨(20·211cm)이 대표팀과 함께할 수 있다면 최상의 핏이기는 하다. 빅맨도 가능한 사이즈를 가진 선수가 잘 뛰고 잘 달리며 내외곽 플레이에도 능하다면, 이른바 범용성이 높다. 현재 대표팀과도 잘 어울리는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표팀 선수층을 좀 더 두텁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내년 아시안게임 역시 이현중과 여준석은 공수 핵심으로 뛸 전망이다. 이들이 코트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경기력 차이는 크다. 하지만 오롯이 둘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다. 체력 문제, 부상 방지, 시너지 효과 등을 위해서라도 함께하거나 뒤를 받쳐줄 포워드 자원이 절실하다. 송교창(29·201.3cm), 안영준(30·194.1cm) 등이 건강한 몸 상태로 합류해줄 수 있다면 천군만마다.
최근 대한민국 남자농구는 국제대회 성적만 좋다면 얼마든지 인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만큼 귀화선수 영입, 토종 빅맨 육성 등 전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