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아부를 하려거든 우아하게 하라”
권력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아부를 좋아한다. 왜 그럴까? 미국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자기 자신이 누군가 비위를 맞춰줘야 할 만큼 중요한 인물임을 실감케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은 공개적·간접적인 아부를 유행시켰다. 자신의 보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걸 온 천하에 알리는 게 최상급 아부다.
8월20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정문 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자.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2심에서 징역 5년을 받고 법정 구속됐던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김용이 보석으로 석방됐다. 민주당 의원 8명과 대변인은 교도소로 달려가 김용을 격렬하게 환영했다. 이들은 김용이 ‘검찰의 조작 수사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정치검찰에 의해 희생된 분들을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정말 성직자 같은 품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김용은 무죄다”는 말도 나왔다.
이상한 일이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높은 자리가 아니다. 김용은 금배지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가? 대통령 이재명이 하사했던 “제 분신과도 같은 사람”이라는 타이틀과 이재명의 범죄 관련성 이외에 다른 이유를 댈 수 있는가? 아니면 지위를 따지지 않는 인권운동인가?
김용 외에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정진상, 전 경기도 부지사 이화영도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벌이는 그런 운동의 대상이다. 이들은 ‘검찰의 조작 수사’만 외치면 만사형통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먹혀들기도 한다. 나라를 망가뜨린 전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혐오의 기운이 여전히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윤 정권에서 이루어진 모든 검찰 수사는 다 조작 수사라고? 정도껏 하자. 윤석열이 그렇게까지 유능하진 않다.
나는 그게 조작 수사인지 아닌지 모른다. 김용에게 달려간 의원들은 조작 수사를 주장할 만한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가? ‘성직자 같은 품성’이 근거인가? 어떤 식으로건 조사해 보자. 다 까보자. 물론 이재명과 관련된 것도 모두 다 햇빛 아래 드러내자.
지금 나는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에게 아부를 했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일반 국민이 아부로 볼 수 있는 소지나 가능성에 대한 염려는 했었느냐가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자 쟁점이다. 국회의원으로서 품위와 관련된 적절성 차원에서라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에 대한 ‘검찰의 조작 수사’ 주장은 좀 더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부를 하려거든 우아하게 하라.” 이탈리아 외교관 발다사레 카스티글리오네가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 처세서 중 최고로 꼽히는 《조신론》에서 한 말이다. 인간 세계에서 아부를 추방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우아한 아부를 주고받도록 하자. 속된 말로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정치 공세는 ‘무대뽀 대통령’이었던 윤석열 한 사람으로 족하다.
윤석열·이재명은 모두 강한 에고의 소유자로 사람을 통제하는 걸 좋아했지만, 이재명이 한 수 위다. 이재명은 사람을 장악하는 타고난 능력으로 강력한 팬덤을 운영해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든 후 공천권으로 보스의 눈치를 보는 게 정치의 동력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통령이 된 후 조각 인사에서 몇몇 이해할 수 없는 인사의 공통점은 아부 의혹과 관련된 것이었다. 고언, 특히 김건희 관련 고언을 혐오해 자폭의 길로 들어선 윤석열이야말로 과도한 아부에 대한 살아있는 경고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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