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아프면 어쩌나” 전남 15개 郡, 소아청소년과 없다

전남 22개 시·군 중 담양·함평 등 15곳 소아 진료 ‘사각지대’ 광역단체 중 가장 많아…출산장려 역행, 지방소멸 가속화 우려 ‘의료서비스 격차 심화’ 전남 68.1% 전국 1위…대부분 농산어촌

2025-09-01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남 도내 22개 시·군 중 15곳에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재앙’으로 불릴 만큼의 초저출산이 지속되면서 군(郡) 지역이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진료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소아청소년의 응급 진료 공백 해소는 물론 인구 정책적 관점에서 지자체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적이 끊긴 전남 한 기초자치단체의 면소재지 풍경 ⓒ시사저널

기울어진 필수 의료 서비스…‘도고농저(都高農低)’

더불어민주당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 의원이 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전혀 없는 전남 기초단체는 15곳에 달한다. 전국 17개 광역시·도별 소아청소년과 진료 의원이 단 한 곳도 없는 시·군·구 비율을 살펴본 결과 전남이 68.1%(22개 중 15개)로 가장 높았다. 모두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로 대다수가 농산어촌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없는 기초자치단체는 58곳이다. 소청과 의원은 2018년 2221개소에서 2025년 2187개소로 34개소가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전체 의원은 3만1032개소에서 3만6520개소로 약 5488개소(17.7%) 증가했다. 

이는 다른 진료과목 의원 숫자 증가 추세와 정반대로, 소청과가 저출산, 낮은 수익성, 전공의 기피 등 구조적 요인에 직면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전남의 경우 의원급 소청과가 없는 기초단체 지역은 담양·함평·영광·장성·해남·강진·고흥·곡성·구례·보성·신안·영암·완도·장흥·진도군 등이다. 병원급 의료기관에도 소청과 전문의가 없는 곳도 많았다.

광역시·도별 인구 수를 소청과 진료 의원 수로 나눈 결과 전남은 25개 소청과가 진료 의원 당 7만1798명의 진료 대상 인구를 담당해 가장 열악한 환경인 것으로 조사됐다.

 

“출산 장려만 하며 뭐하나…아이 진료할 곳 없는데”

소청과 진료는 아이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부모의 불안을 덜어주는 등 필수 의료 서비스다. 나아가 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쳐 인구 정책적 관점에서 지자체의 대책 마련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남은 22개 시군 가운데 20개 시군이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됐고, 이 가운데 11개 시군은 소멸 고위험지역이다.

하지만 현실은 도농간 의료 서비스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는 형국이다. 인구 2만 6800명인 곡성군에는 1800여명의 어린이가 살고 있다. 하지만 소아과병원이 없어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면 60㎞ 이상 떨어진 광주나 순천 등까지 원정 진료를 가야 해서다. 

이에 소아과병원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주부 전미선(36·여)씨는 “일곱 살 된 아들이 병치레가 잦은데 1시간이 넘게 차를 몰고 가야만 광주 큰 병원에 갈 수 있다”며 “아이가 열이 조금만 올라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전남 곡성군이 고향사랑기부제 1호 사업으로 추진한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캠페인 ⓒ곡성군

그나마 곡성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지난해 8월부터 매주 2차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고 있어서다. 이는 고향사랑기부제 덕분이다. 곡성군은 ‘곡성군에 소아과를 선물해달라’며 지난 5월 기부금 8000여만원을 모았다. 곡성군은 이 돈으로 옥과보건지소에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을 개설하고 의료장비를 지원했다. 

반면 광주시는 지난 2023년 9월 ‘공공심야어린이병원’을 열었다. 어린이와 보호자가 평일과 휴일 24시까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평일 및 휴일 밤 12시까지 경증 소아응급환자 진료가 가능하다. 늦은 밤(21시 이후)과 휴일(18시 이후)에 운영하는 심야어린이병원이 없어 아이가 아프면 응급실을 이용하며 장시간 대기와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개호 의원, 지역 특수성 반영한 정부 종합대책 마련 촉구

이개호 의원은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시설 부족은 전남지역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관심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금 농어촌지역은 출산을 장려해도 아이를 진료할 곳이 없는 소아의료 사각지대 상태로, 소아청소년과는 낮은 수익성·높은 민원·야간·응급 부담으로 전공의 기피가 극심한 진료과이므로, 특수성을 반영한 인력·시설·행정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농어촌지역은 소청과 전공의 유입률이 0%에 가까워 구조적 의료 사각지대를 극복하기 위한 지방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며 “소아의료체계의 강화는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남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심장혈관흉부외과·신경과·신경외과 8개 필수진료과 전문의 수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한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인구 1000명당 필수의료 8개 진료과 전문의 수가 광주 0.36명, 전남 0.29명으로, 가장 많은 서울(3.02명)에 비해 광주는 12%, 전남은 9.6% 수준에 그쳤다. 전국 17개 시·도별로 비교하면 광주는 7위, 전남 13위로 중하위권으로 뒤쳐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