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 흔드는 與 ‘입법 총성’에 사법부 반기…짙어지는 전운
김건희 구속 호평했던 與, 동일 판사가 한덕수 영장 기각하자 혹평하며 ‘특별재판부’ 카드 내밀어 사법부, 위헌성·독립성 침해 지적하며 명확한 ‘반대’ 입장…천대엽 “특판 설치는 헌법 정신 후퇴”
‘3대 특검’ 정국이 본격화되며 일시 휴전 모드에 돌입했던 집권여당과 사법부 간에 전운이 감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구속영장 기각을 도화선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사건 특별재판부 설치’를 꺼내들었다. ‘조희대의 사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정청래의 민주당’은 사법부가 어떤 해답을 내놓는지에 따라 여당의 카드도 바뀔 수 있다며 삼권분립 질서를 흔드는 ‘길들이기 시도’를 자인했다. 사법 개혁 5대 의제와 특별재판부 설치까지 입법부와 사법부 간 파열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국법원장회의 예고…여당 입법 강행에 맞불
“이례적인 절차 진행이 계속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다.”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9월1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을 통해 사법부가 전례를 찾기 힘든 ‘비상 상황’에 직면했다는 작심 발언을 내놓았다. 천 처장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다섯 가지 주요 의제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공유한 뒤 전국법원장회의 개최를 예고했다. 각급 법원장들에게는 법관들의 ‘총의’를 모으는 절차에 착수해 달라고 했다. 전국 법원 단위로 신속한 의견 수렴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공개적으로 여당의 입법 강행 움직임에 맞불을 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천 처장은 “종래 범국가적 사법 개혁 논의 과정에 비춰 볼 때 사법부 공식 참여의 기회 없이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며 사법부가 배제된 상태에서 입법 독주가 벌어지는 상황에 비판과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대법원의 이 같은 대응은 민주당이 5대 의제에 더해 ‘내란 사건 특별재판부 구성’을 재점화한 데 따른 것이다.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추석 전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대법관 증원(14→30명)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법관 평가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 개혁 과제를 추진 중이다. 대법원은 여당의 개혁 방향과 각론에 대한 우려, 조건부 개선 또는 재검토 필요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해오면서도 이에 대한 입장 전달 방식은 ‘신중 모드’였다.
기류가 바뀐 것은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한덕수 전 총리의 구속영장이 8월27일 법원에서 기각된 시점부터다. 민주당은 한 전 총리의 영장 기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튿날인 8월28일 곧바로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 상정을 들고나왔다.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김건희 여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관이다. 김 여사의 구속을 ‘국가 정상화 신호탄’이라고 평가하며 사법부 결정에 환호했던 민주당은 한 전 총리 구속이 불발되자 ‘신뢰할 수 없는 판사’라며 법관 개인에 대한 공개 비난을 쏟아냈다. 민주당이 원한 그림에서 비켜나가자 곧바로 이를 사법부의 공정성 상실이라며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한 전 총리 영장 기각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불신의 사법부’를 인증하는 지표로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 등을 제시했다. 조 대법원장을 필두로 사법부 내 ‘내란 세력 봐주기’ 움직임이 있다며 특별재판부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 사개특위 총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현희 최고위원은 “특별재판부 필요성을 자초한 책임은 법원에 있다”고 사법부를 겨냥했다. 속도전을 공언한 민주당은 9월4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특판 설치 특별법을 법안심사 1소위위원회에 회부했다.
“헌재 위헌 판단 시 역사적 재판이 무효될 수도”
여당의 공세 속 법원행정처는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공식화한 상태다. 여당의 압박은 ‘5대 의제+특판 설치’를 놓고 여론을 주시하던 대법원에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는 촉매제가 됐다.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과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까지 사법부가 공정성과 신뢰 타격을 자초했다는 거센 비판에 휩싸인 후 대법원은 민주당과 전면적인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특별재판부(특판[特判])에 대해 급가속할 조짐을 보이자 대법원 내부에서도 “민주당의 속도전에 본격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특별재판부 설치 논의를 포함해 민주당이 사법 개혁 이슈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에 사법부로서도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상황”이라며 “각급 법원에서도 최대한 신속히 의견을 모으고 있어 이른 시일 안에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수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내란 특판 설치 법안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12·3 비상계엄의 후속 조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 법안’은 박찬대 민주당 의원과 여권 의원 115명이 지난 7월 발의했다. 내란 사건 관련 1·2심 재판을 전담할 특별재판부와 특별영장전담판사를 두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회와 판사회의,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인사 9명으로 구성되는 ‘특별재판부 후보 추천위원회’가 특판 판사(6명)와 영장전담판사(2명)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적으로 각각 3명, 1명을 임명토록 한다.
법안을 검토한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독립성·객관성·공정성을 침해하고, ‘위헌성’을 내포한 만큼 ‘제동’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냈다. 구체적으로 행정처는 “사무 분담이나 사건 배당은 법원의 전속 권한으로, 국회나 대한변협이 특정 사건을 전담할 법관 구성에 관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법권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제수사나 신병 확보를 위한 전담 법관을 두는 것에 대해서도 “영장에 관한 재판의 중립성·객관성, 그에 대한 신뢰 훼손이 특히 우려된다”고 짚었다.
후보추천위가 가진 ‘정치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후보추천위가 상당한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고, 추천 과정에서 사법부 내부에서의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을 상고심 심리에서 배제하는 것에 대해 “사건 배당의 무작위성이 왜곡되고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해 9명이다. 상고심 판결에서 배제되는 천 처장을 제외한 13명 중 9명을 제외하면 단 4명이 남는다. 내란 형사재판을 확정하는 데서 사실상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무력화되는 셈이다.
특히 법원행정처는 내란 특판과 영장전담판사를 설치하는 것이 위헌 논란을 피해 가기 어렵고, 이 같은 법적 미비점이 내란 피고인 전원 무죄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과거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판과 3·15 부정선거 행위자 특판이 운영된 전례가 있는데 이들 모두 헌법에 근거를 둬 위헌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다.
천 처장은 “(내란 특별재판부가 설치될 경우) 피고인들이 ‘위헌적 조치’라는 주장을 할 텐데,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단을 받게 되면 역사적 재판이 무효가 돼버리는 엄중한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내란 종식을 위해 열리는 역사의 법정이 무리한 입법 추진 끝에 ‘무죄 릴레이’로 종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와 같은 특판 설치 움직임은 “헌법 정신의 후퇴”라고 일갈했다.
국민의힘은 특판을 “정치 특검에 이은 인민재판소 설치”라고 규탄했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변호사 단체들도 “위헌적인 특판 설치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진보 성향의 참여연대도 특판이 오히려 재판지연을 불러올 수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참여연대는 9월4일 논평을 통해 “현 시점에서 법률을 제정해 (내란 사건) 재판부를 변경할 경우 입법 절차와 공판갱신 절차 등으로 사실상 재판지연은 불가피하다”며 “더욱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한 피고인들이 특별재판부의 위헌성을 문제 삼아 재판을 더욱 지연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여당에도, 사법부에도 관건은 ‘국민 여론’의 향배
민주당은 위헌 논란을 정면 돌파한다는 방침이다. 법원에 대한 사법권 부여는 헌법에 규정돼 있지만 조직 구성 및 관할은 법률에 따른 것이어서 위헌 논란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내란 특판의 경우 새로운 형태의 법원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에 각각 1·2심 재판부를 설치하고 현직 법관 가운데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어서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처리할 수 있고, 국회의 입법 추진이 사법부의 독립 침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사법부 차원에서 특판 설치를 검토한 적이 있다는 점에 비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판 설치 논의가 마지막으로 이뤄진 시점은 2018년 사법농단 사태 때다. 당시에도 사법부는 삼권분립 위배와 위헌 논란을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민주당이 위헌 논란보다 더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은 ‘여론’이다. 검찰 개혁과 관련한 당정의 온도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도부와 특위를 중심으로 특판 설치 움직임까지 가시화되자 당내에서조차 상당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전현희 특위 위원장이 ‘지귀연 판사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표한 후 현재 맡고 있는 내란 재판에서 배제할 경우 특판은 필요 없을 것’이라며 사법부에 공을 넘긴 것도 역풍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여론을 강조하며 “내란 전담 재판부에 대한 국민 여론도 상당히 높다. 반민주적·반헌법적 내란 세력과 단절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존엄한 국민의 명령”이라며 “내란 (특별재판부가 아닌) 전담재판부는 어떠하냐”고 ‘특판’보다 여론의 수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전판’을 제안하기도 했다. 법안심사1소위에서 논의를 거치며 여론 추이에 따라 여당이 한 발 물러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론을 주시하는 것은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특판 외에도 대법관 증원부터 대법관 추천 방식 및 법관 평가제도 개선 등 사법 시스템을 두고 여당과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만큼 여론 향배를 의식해 전선을 구축하고 입법부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천 처장은 9월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특별법에 따라 민주당 등 정치권이 재판부 구성에 관여할 수 있다’는 지적에 “법원이 아닌 외부 권력 기관이 재판부 구성에 관여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사법부 독립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고, 간접적으로는 결국 재판에 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일반 국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국민이 수용하기 어려운 법안’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현직 판사들은 내부망이나 단위별 의견 수렴 과정에서 사법부가 배제된 채 주요 사법 개혁 및 정책 논의가 진행되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며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재판제도분과위원회는 9월25일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한 지방법원 관계자는 “법관들의 의견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취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법부의 독립이 정치 구도에 따라 휘둘리거나 훼손돼선 안 된다는 것을 표명해야 한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