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어 재판 시스템까지…브레이크 없는 巨與의 독주
민주당 독주에 힘 실은 李, “내란재판부 위헌 아냐”…내란특별법도 공개적으로 지지 與 박희승의 자성론 “위험한 발상, 尹 계엄과 똑같아”…당내 강경파 반발에 결국 사과 ‘수싸움’에서 밀리는 野…“특검 피로감 쌓이면 보수 반발 넘어 국민 통합에 악영향”
사법 일탈을 방지하는 ‘정당한 입법’일까, 사법부를 옥죄는 ‘입법부의 폭주’일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강행하면서 여의도와 서초동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여당이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성’ 등을 의심하며 별도 재판부 설치를 주장하자, 야당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거칠게 반발하는 양상이다. 다만 야당과의 협치를 말해온 이재명 대통령까지 공개적인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李 “내란 규명, 조직개편과 맞바꿀 대상 아냐”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을 넘어서까지 계속되는 ‘내란 청산’ 작업에 야권뿐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행정권과 입법권을 거머쥔 이재명 정부가 검찰청 폐지에 이어 사법부에도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둥, ‘민생과 실용’이라는 이재명 정부의 기치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개혁 명분에 동의하는 일부 친명(親이재명)계 의원들조차 정부·여당의 과속을 공개적으로 우려하고 나섰다. 브레이크 없는 거여(巨與)의 검찰·사법 개혁 열차, 그 종착지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일까 퇴보일까.
“배가 뜨려면 선장과 사공, 바람이 필요한데 지금이 이 3박자가 맞는 적기다.” 더불어민주당 한 원내 핵심 관계자는 ‘검찰·사법 개혁의 명분’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행정권을 쥔 이재명 대통령과 이를 받치는 168명의 여당 의원, 또 국정 지지율 60%를 넘나드는 ‘민심의 순풍’이 불고 있는 지금이 검찰과 사법부에 메스를 댈 절호의 기회라는 시각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 말기 강행했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개혁 추진 여건이 훨씬 더 우호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범여권은 180석 가까운 거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친문(親문재인)·비문(非문재인)계 간 균열, 개혁 온건파와 강경파 간 갈등으로 내부 이탈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법안 상정의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가 야당 손에 있었던 탓에 ‘법안 지연·저지 전략’에 번번이 개혁 발목을 잡혔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출범 100일을 갓 넘긴 국정 초반 국면으로, 12·3 비상계엄 여파에 여당 지지율이 야당을 거의 ‘더블스코어’ 격차로 앞서고 있다. 여기에 당내 세력 구도 역시 ‘친명계 원팀’으로 재편됐다. 법사위원장 자리까지 강성 친명계인 추미애 의원이 차지하면서 소수야당의 마지막 입법 제동장치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여당뿐 아니라 이 대통령이 직접 검찰·사법 개혁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대통령은 9월11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사고를 엄청나게 쳐가지고 수사권을 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며 검찰 개혁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또 야당이 정부조직법 개편 협조의 대가로 ‘더 센 3대 특검법’ 수정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선 “대한민국에서 소위 내란이라고 하는 친위 군사쿠데타가 벌어지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하는 일의 당위와 어떻게 맞바꾸느냐”고 선을 그었다. 또 여당에서 주도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논란에 대해선 “왜 위헌인가”라고 반문한 뒤 “입법부를 통한 국민주권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의 입법 초안대로면 12·3 비상계엄 관련 주요 재판은 현재의 사법부가 아닌 별도의 특별재판부가 따로 담당하게 된다. 동시에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해병)은 더 많은 수사 인력을 앞세워 더 오랜 기간 관련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나아가 검찰청은 곧 해체된다. 사안 하나하나가 모두 중대하고, 미칠 파장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모든 숙제를 가급적 연내에 풀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이 ‘적기’를 놓치면 더 이상의 개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판사 출신 박희승이 쏘아올린 ‘위헌 논란’
그래서 여당은 ‘개혁 단일대오’를 구축한 것일까. 168명의 의원은 모두 사법부와 검찰을 겨냥한 ‘전방위적 개혁안’에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최근 진행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당 지도부의 이 같은 구상에 공개적인 이견이나 우려를 전한 의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당 지도부와 의원의 생각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 초선의원의 ‘저격’을 통해 드러났다. 내란특별재판부를 거세게 비판한 판사 출신 여당 의원이 등장했다. 이 대통령, 정성호 법무부 장관 등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박희승 민주당 의원이다.
박 의원은 9월8일 3대 특검 종합대응특위 회의에서 “헌법 101조에 따르면 헌법 개정 없이 국회가 논의해 내란특별재판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비유했다. 둘 다 민주주의,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박 의원은 “만약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받을지 의심스럽지만 위헌제청 신청이 들어갈 것”이라며 “내란 재판을 통해 내란 사범을 정확히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니면 두고두고 시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귀연 재판부의 영장 기각 및 대법원 파기환송에 불만이 있다면 그런 부분을 딱 집어서 지적하고 법원 스스로 개혁하게 유도해야 한다”며 “국회가 나서 직접 공격하고 법안을 고친다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권분립 정신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해 총칼을 들고 들어온 것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친정을 향한 박 의원의 고언은 곧바로 동료 의원들의 거센 저항에 가로막혔다. 전현희 3대특검종합대응특위 위원장은 박 의원 발언에 대해 “현행법에서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데 위헌성·위법성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또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최민희 의원도 9월10일 여당 의원들이 모인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박 의원에게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 의원은 “내란재판부에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분야를 모르는 나도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사태 주요 인물들의 내란 재판을 맡고 있는) 지귀연 판사 때문에 걱정이 있지만 내란재판부가 생소해 우려도 한다”면서도 “근데 그걸 계엄에 비유하나”라고 지적했다.
일부 강성 당원까지 박 의원을 향해 ‘폭탄 욕설 문자’ 세례 등을 보내자 결국 박 의원도 고개를 숙였다. 박 의원은 9월1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의 발언에 대해 “위헌 논란을 꼼꼼히 살피고 사전에 해소해야 진정한 내란 척결을 이룰 수 있다는 취지였다”며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윤석열의 계엄에 비유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향후 의정활동을 해나감에 있어 진의가 왜곡되거나, 갈등이 확산되지 않도록 좀 더 신중을 기하겠다”고 했다.
강성 당원과 의원들의 조직적인 압박에 동료의 언로가 막히자, 여당 물밑에선 불만과 불안 기류도 감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비판의 성역은 없어야 한다. 성역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이 이미 보여줬다”며 “특히 국민들은 개혁의 결과뿐 아니라 그 개혁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공화국’을 ‘민주당 공화국’으로”
여당 지도부에선 ‘내란 청산’이란 명분 아래 이뤄지는 ‘야당 패싱’을 두고도 갈등이 빚어지는 모습이다. 정청래 대표 등은 3대 특검을 포함해 검찰·사법 개혁은 야당과의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김병기 원내대표를 비롯한 일부 원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내세운 협치, 정부의 성과를 위해서라도 야당과의 일부 ‘딜(deal·거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김병기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와 진행한 ‘3대 특검법 개정안’이 정청래 대표의 반발 앞에서 결국 백지화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를 계기로 여권 내 ‘청-병(정청래-김병기)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강성’ 장동혁 지도부가 들어선 국민의힘도 ‘여당의 폭거’를 외치며 거세게 저항하는 모습이다. 정부·여당이 공익이 아닌 당리당략을 위해, ‘현재권력’ 이재명과 ‘미래권력’ 정청래를 위해 검찰과 사법부 ‘힘 빼기’에 들어갔다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다만 의석이 적은 국민의힘으로선 여당을 막아세울 뾰족한 방책은 없다. 이에 장외투쟁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법·정치적 투쟁을 병행하며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모습이다.
장동혁 대표는 9월11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간에는 용산 대통령 이재명, 여의도 대통령 정청래, 충정로 대통령 김어준이란 말이 돌고 있다.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통분립의 시대를 열었다”고 혹평했다. 이어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을 당대표가 뒤집고, 당대표는 결국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들을 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 취임 100일은 헌법 제1조 1항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을 민주당 공화국으로 만드는 시간이었다”고 혹평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대통령은 협치를 이야기하지만 여당은 야당을 대화 상대로 보지 않고 강경 기조로 나가는 것도 결국 정권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야당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피로감과 보수진영의 반발도 국민 통합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은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대 진영을 설득하며 대화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