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리플리 부부’의 참회는 정녕 들을 수 없는가
중장년층이라면 많은 이가 알 만한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친구인 부잣집 아들을 살해하고 신분을 위장해 거짓 인생을 사는 톰 리플리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 시절 최고 미남으로 칭송받던 알랭 드롱의 인상적인 연기 덕에 명작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같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는 《리플리》도 있다. 제목부터 구성까지 좀 더 직설적으로 거짓 인생의 폭주와 몰락을 다뤘다. 두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한 말이 ‘리플리 증후군’이다. 사전적으로는 ‘과도한 신분 상승 욕구 탓에 타인에게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 자신마저 속이고 환상 속에 살게 되는 유형의 인격 장애’를 뜻한다.
흔치 않을 것 같은 이 리플리 증후군의 단면들이 요즘 언론 보도를 통해 마치 쏟아지듯이 펼쳐지고 있다. 대다수가 짐작하겠지만, 주인공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다. 일찌감치 허위 이력 작성으로 도마에 올랐던 김씨의 거짓 창작 능력은 특검 정국에서도 적나라하게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22년 6월 나토 순방때 그가 착용했던 6000만원대 목걸이와 관련한 오락가락 진술이다.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때 없었던 물품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빌렸다”고 해명했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홍콩에서 산 모조품”이라고 했고, 특검 조사에서는 “어머니 선물로 사서 드린 것”이라고 계속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기업 회장이 자수서를 내고 자신이 준 목걸이라고 자백하면서 거짓말로 드러났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주식 거래를 잘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 말이 거짓임을 알려주는 녹취록 등 물증은 꼬리를 물고 나왔다.
거짓말과 관련해서는 전 대통령과 그 부인의 실력·행적이 견주기 힘들 만큼 닮아있다. 거짓의 부창부수다. 국민을 감쪽같이 속인 그들의 거짓말과 위장 행동은 뿌리가 깊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 청문회에서 검찰 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답변했던 것과, 김씨가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기간에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말했던 것이 이미 긴 거짓 행로의 시작점이었던 셈이다.
거짓으로 꾸며진 말과 행동은 대부분 허황된 욕망과 관련이 깊다. 그런 욕망이 권력과 만나면 많은 것이 비틀린다. 세간에 나도는 ‘대통령 놀이’ ‘왕가(王家) 행세’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사례를 빼고 김건희씨와 관련된 의혹만 봐도 공천개입, 대통령실 비서관들과의 ‘전화 정치’, 대통령 안가 이용, 매관매직, 종묘 차담회 사건 등등 끝이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그가 “통일교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특검 발표도 나온 바 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 실컷 다 한 ‘여사님 만기친람’이다. 그러면서도 끝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우긴다. 무절제한 권력 사용에 따른 그 많은 의혹의 목록들은 전 대통령 부부가 ‘경제공동체’를 뛰어넘은 ‘권력공동체’였음을 말해주고도 남음 직하다.
그들에게 국민을 향한 진심이 단 1%라도 있다면, 특검 수사가 길어지면서 함께 커져가는 국민의 피로감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솔직한 반성의 고백이 나올 때가 되었다. 연이은 거짓과 전횡에 속고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만큼 진실된 참회와 사과를 내놓아야 그들이 불러온 ‘퇴행의 시간’이 비로소 저물고, 그 고통도 아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