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사퇴하라? 다수의 폭정·선출 독재의 길이 걱정된다 [쓴소리 곧은 소리]
대통령·국회가 사법부 위에 있다는 인식은 헌정 질서 파괴와 극심한 국론 분열 낳을 수 있어 대법원장 임기 단축시킨 폴란드 정부, ‘법치주의 위반’으로 EU로부터 보조금 집행 중지 당해
한국 헌정사에 전대미문의 일이 발생했다. 입법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총공세에 나섰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9월15일 “조 대법원장은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조 대법원장은 반(反)이재명 정치 투쟁의 선봉장이 됐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조 대법원장이 내란범을 재판 지연으로 보호하고 있다”며 사퇴론에 가세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조 대법원장 사퇴’에 대해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에 대해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이런 논평은 이재명 대통령이 9월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했던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는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마치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가 사법부 위에 있고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입법과 행정 권력이 사법부를 협공하며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사퇴 공세를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었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내란 재판 지연이나 지난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내린 유죄 판결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사법 개혁은 사법부가 시동을 걸고 자초한 것,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 탓으로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한다.
국민의힘과 법조계는 반발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임기가 보장된 대법원장을 향해 ‘내 사건을 유죄로 판결했으니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반헌법적인 행위”라고 맞섰다. 같은 당 송언석 원내대표도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를 통제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상은 결국 ‘당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소비에트식 전체주의 논리와 매우 닮아있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대체로 “독재시대에도 대법원장을 물러나라고 한 적은 없다”는 반응이다.
‘사퇴 공세’ 역풍으로 이 대통령 국정운영 동력 잃을 수 있어
민주당 정권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공세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첫째, 정부·여당이 다수의 폭정으로 ‘선출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나 행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 서열이 사법부보다 높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들고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위험한 시도다. “헌정 질서를 훼손한다”는 말은 단순히 법을 어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 의해 보장된 권력 분립, 국민의 기본권, 절차적 정당성을 파괴하거나 무력화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여당이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것은 국가의 민주적 정당성과 헌법적 근거 자체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헌 행위이며, 이런 경우 탄핵이나 국민적 저항권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다. 특히,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를 통제하면서 초래될 삼권분립 훼손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 주권을 위협한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당시 강조한 ‘국민주권 정부’의 기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둘째, 집권 초기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대법원장 사퇴 등 폭발성이 강한 이슈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동시에 국민 여론을 극심하게 분열시킬 수 있다. 특히,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논쟁이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면 사회적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집권 초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과 ‘신경제 100일’ 수립, 공직자 재산 공개 등 개혁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전방위적 재건에 나섰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역대 대통령 취임 100일 즈음 국정운영 지지도에서 YS는 83%의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DJ도 62%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 이유는 집권 초기에 이념과 진영을 넘어 당시 국민 모두가 염원하는 것을 전광석화처럼 집행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열광과 환멸’의 주기 극히 짧아
이와 반대로 정부·여당이 집권 초기에 사법부 장악을 위한 ‘대법원장 사퇴 혹은 탄핵’에 몰입하면 오만과 독선으로 비쳐 국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치달을 것이다. 야당은 이 대통령 탄핵을 위한 장외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이 자기 범죄 재판 막기 위해 대법원장을 쫓아내는 것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고 탄핵 사유”라고 지적했다.
이런 극한 대치 정국에서 이재명 정부가 회복과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야 할 집권 초기의 황금 시기를 허무하게 보내면 곤란하지 않을까.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라는 국정 목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셋째,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판과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유엔 및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인 베니스위원회(Venice Commission)는 국제적으로 사법부 독립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유엔의 ‘사법의 독립에 관한 기본 원칙’에선 사법부 임명·징계·해임 절차는 법률에 따라야 하며 자의적일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베니스위원회의 사법 독립 규범에선 대법원·헌법재판소 구성은 균형성과 투명성을 지녀야 하고 행정부·입법부의 과도한 간섭은 위법적 간섭으로 간주한다.
유엔과 베니스위원회의 사법 독립 규범은 직접적인 강제력이 아니라 국제적 “규범적 힘”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EU처럼 제재 장치를 가진 체제에서는 실질적 경제·외교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령, 폴란드 집권당이 대법원장 임기 단축 및 법관 징계 권한을 강화하자 베니스위원회·EU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다. EU 사법재판소가 위법 판결을 내리면서 EU는 수십억 유로의 보조금 집행을 보류했다. 헝가리 정부가 헌법재판소를 장악하고 판사 정년제를 시도하자 베니스위원회에서 “법치주의 위반”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EU는 제재 절차를 개시했다.
만약, 이재명 정부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하고 탄핵을 시도하거나 사법부가 배제되는 방식으로 대법관 증원 및 내란재판부 설치 등을 밀어붙일 경우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적 전제 정치 국가‘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국제 신용도가 하락하고, 민주주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으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벼랑 끝에 몰린 민생을 되살리고, 성장을 회복해 모두가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갈 시간”이 되기 위해선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당이 다수의 폭정에 갇혀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의외의 역풍을 맞이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열광과 환멸의 주기기 지극히 짧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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