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겨눈 파상공세에 들끓는 법원·법조계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없던 일”

조 대법원장, ‘이 대통령 재판에 개입’ 의혹 관련 입장문 내고 정면 반박 “대법원장을 여당 뜻대로 끌어내리겠다는 발상” 격앙…당내서도 ‘자제론’

2025-09-19     이혜영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집권여당의 ‘척결’ 표적이 됐다. 사법부의 수장이 정치권으로부터 노골적인 ‘퇴진’ 압력을 받고, 탄핵소추와 특별검사 수사 대상으로까지 거론되는 것은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개혁의 전제 조건을 ‘조희대 대법원장이 없는 사법부’로 규정한다. 유례없는 외부의 대법원장 흔들기에 법조계는 우려를 넘어 격앙하는 분위기다. 대법원장을 겨눈 파상공세가 오히려 민주당이 힘을 싣는 ‘내란 척결’의 완결성과 속도를 떨어트리는 자충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제2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민주당의 자충수

여권의 사퇴 압박을 마주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9월17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를 통해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조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의혹 제기에 대해 별도의 반박문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가 나온 직후인 4월7일 조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을 사석에서 만났고, 이 자리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으로 오면 알아서 처리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조 대법원장은 입장문에서 이를 전면 부인하며 “(이 대통령) 형사사건과 관련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는 물론이고 외부의 누구와도 논의한 바가 전혀 없으며, 거론된 나머지 사람들과도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같은 대화 또는 만남을 가진 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선을 그었다. 

해당 의혹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파기환송한 이후인 지난 5월, 이미 여권에서 제기했던 사안이다. 최초 발신지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과 진보 유튜브 채널이었다. 민주당은 당시에도 “조 대법원장이 윤석열에 충성 맹세를 했었다” 등 유튜버발(發) 의혹을 여과 없이 다루면서 관련 증거나 정황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12·3 비상계엄 진상 규명 청문회에 출석해 해당 의혹과 관련해 “하늘이 두 쪽 나도 대법원장이 그럴 분이 아니다”고 일축한 바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의혹에 다시 불을 댕긴 것은 사법 개혁 5대 의제와 내란 특별(전담)재판부를 놓고 전국법원장회의가 소집되고, 민주당의 거듭된 사퇴 압박에도 조 대법원장이 ‘무(無)응답’ 하면서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대법원장을 겨냥한 폭로전을 벌이면서 사실관계를 밝힐 만한 단서는 내놓지 않은 채 지도부까지 나서 내란 특검의 수사까지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민주당이 띄운 의혹의 종착지는 ‘조희대=내란 공범’이며, 따라서 대법원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제8조4항은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위헌정당 활동으로 보고 이를 해산 사유로 본다”며 “민주적 기본 질서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고, 권력 분립과 사법부의 독립도 그 질서에 해당한다. 직접적인 진술도, 증거도 없는 사안으로 대법원장을 공격하는 민주당의 행태는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헌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당에서도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무차별적 공세가 오히려 민주당의 사법 개혁 동력을 떨어뜨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2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라는 비판과 동시에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에 매몰된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민주당이 이번엔 역으로 그와 똑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변호사 출신 김남희 민주당 의원은 현재의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잃은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권력이 사법 개혁을 함에 있어서는 언제나 신중함이 필요하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지금의 사법부가 잘못하고 있다 해서 정치권력과 다수결이 모든 문제의 정답을 내놓거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치가 사법의 영역을 개혁하는 것은 자제력을 갖고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정치의 사법화를 경계해야 하고, 그것이 사법이 정치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대통령이 쏘아올린 ‘선출 권력 우위론’에 대해 “대한민국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 우리의 논의 출발점은 헌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행정과 입법, 사법이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9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해 있다. 좌우는 전현희 최고위원, 김병기 원내대표 ⓒ시사저널 박은숙

“민주당은 사법부를 야당으로 인식하는 듯”

사법부 구성원들은 개탄을 넘어 참담함을 드러내고 있다. 대법관 증원을 중심축으로 둔 사법 개혁 의제와 내란 재판부 설치 논란에 ‘선출 권력 우위론’까지 마주한 서초동은 표면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치권이 대법원장을 겨냥해 전례 없는 십자포화를 퍼붓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대법원장 흔들기가 이어지는 현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진단한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사법부가 이런 상황에 놓였다는 것 자체로 비상”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사법부와 법관은 국민의 뜻에 따라 당연히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현시점에서 일정 부분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특정 판결과 법관에 대한 공격, 나아가 대법원장을 여당 뜻대로 끌어내리겠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고 일갈했다.

또 다른 현직 부장판사는 “1심 시작 전에 국회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했다면 위헌 요소가 일부 희석될 수 있겠지만,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의 재판장을 입법부 주도로 강제 교체 시도하는 것은 반헌법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 개혁 논의 테이블에서 사법부를 완전히 배제하고, 법원장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나 제한적 상황에서 법원행정처가 제출한 의견서를 곧바로 여론전으로 끌고 가는 것은 결국 대법원장을 겨냥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사법부를 정치 투쟁을 벌여야 하는 ‘야당’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조 대법원장의 부인에도 민주당은 특검 수사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조 대법원장을 향해 “당당하면 수사를 받으라”며 사퇴하지 않을 경우 ‘특검 피의자’로 몰고 가겠다는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 요구에 대해 “이 의혹이 수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내란과 연결될 수 있을지는 상당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민주당이 고른 판사, 재판 시비 피할 수 있겠나

2023년 12월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임기는 2027년 6월까지다.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이지만 조 대법원장은 ‘정년 70세’ 적용을 받아 3년6개월이 최대치다. 대법관 퇴임 후 윤석열 정부에서 사법부 수장에 임명된 조 대법원장은 민주화 이후 재현된 비상계엄 사태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파면, 정권 교체를 한꺼번에 관통한 대법원장이 됐다.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표적 공세에 못 이겨 중도 사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조 대법원장이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기조를 누구보다 중시해 왔다는 점에서 불명예 중도 퇴진하는 첫 사례가 되진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을 받고 중도 퇴진한 전례는 없다. 1988년 김용철 대법원장(9대)과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11대)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지만, 모두 법원 내부의 거센 개혁 목소리 속 사법파동에 따른 결과였다. 정권과 정치권이 대법원장·대법관 임명을 놓고 정치적 거래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며 소장 판사들을 중심으로 거센 비토가 쏟아져 나오거나, 변호사 시절 이뤄진 대법원장의 투기성 부동산 매입에 대한 법관들의 자성 목소리가 중도 낙마로 이어졌다. 사법 개혁과도 맞닿아 있는 과거의 대법원장 불명예 퇴진의 출발점과 종착점에는 모두 법관들이 있었다.

문민정부 이후 취임한 윤관·최종영·이용훈·양승태·김명수(12~16대) 대법원장도 재직 당시 사법파동이나 재판 개입 논란 등으로 격랑에 휩싸인 전례가 있지만 모두 임기를 채웠다. 사법부 내에서 법관들이 주도한 대법원장 퇴진 압력 움직임에 정치권이 반응하며 공세 모드를 취한 적은 있지만, ‘삼권분립’ 틀 아래 최후의 선은 넘지 않았다. 집권여당이 최전선에서 대법원장을 흔드는 것은 ‘독재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회학자이자 법률가인 임재성 변호사는 조 대법원장 사퇴와 탄핵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된 내란 재판부 설치를 위헌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여권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오히려 민주당이 강조하는 ‘내란 청산’을 위해서는 더더욱 특별재판부 설치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법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유죄를 선고한다고 끝이 아니다”며 “이 판결이 사회 속에서 온전히, 최대한 수용될 수 있어야 진정한 내란 청산이다. 수용 가능성의 본질은 ‘절차’이고 ‘외관’이기에 이걸 흔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다면 ‘민주당이 고른 판사가 재판했다’는 시비를 피할 수 없다”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 그것도 판사 선정에 정당이 개입하는 순간 절차의 신뢰, 수용 가능성은 바닥을 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의 시선과 여론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때 여당의 전략은 오히려 계엄 사태 관련 재판의 수용도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사법부 내에서도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 이 대통령 상고심의 이례적 절차 진행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송승용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9월16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을 통해 조 대법원장의 유감 표명을 촉구했다. 송 부장판사는 “전국법원장회의 이후 민주당에서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등 더욱 극한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대법원장은 입법부와 충돌·갈등이 있는 경우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소통과 타협의 해법을 찾는 일을 마다해선 안 된다. 법조계를 비롯한 많은 국민이 응분의 우려와 의심을 했다면, 그런 우려와 의심을 해소해 줘야 할 적극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9월25일 열리는 전국법관회의에서도 법관 대표들이 사법 개혁 의제를 비롯한 현안을 놓고 논의와 토론을 이어갈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내란 사건 공판이 ‘침대 재판’으로 흐른다는 여당의 비판이 거세지자 법관을 추가 배치하고, 형사합의부 증설을 위한 법관 증원을 법원행정처에 요청했다. 내란 특검이 기소한 사건을 맡는 형사합의부에 일반 사건을 배당하지 않기로 하는 등 사실상 ‘전담재판부’ 형태를 갖춰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중앙지법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한 각종 방안을 계속 강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