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띄우고 국회가 증폭시킨 ‘의문의 제보’…늪에 빠진 민주당

사실 여부 판단 못 한다는 與…‘조희대-한덕수 회동설’ 던진 뒤 “억울하면 수사 받아라” 열린공감TV “서영교 의원과 일면식 없고 방송 후 연락…민주당에 의혹 녹음 전달 안 해”

2025-09-26     이혜영 기자

사법 개혁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이 ‘폭로의 덫’에 걸렸다. 대법원장의 ‘밀약설’을 띄우며 사법부를 맹공한 민주당은 유튜브 채널이 내놓은 신원불명 제보자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녹취록에 대한 추가 물증을 내놓지 못한 채 ‘조희대 청문회’를 의결했다.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으로 결론 날 수 있는 ‘설(說)’을 국회에 풀어놓고 ‘당당하면 수사에 응하라’는 압박을 반복하는 집권여당을 향한 비판 여론이 커진다.

국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왼쪽 사진)과 부승찬 의원 ⓒ연합뉴스·YouTube 화면캡처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폭로 뒤 해명 요구

정치권과 사법부를 시계 제로 상태로 몰고 간 조희대 대법원장의 ‘밀약설’ 의혹의 진원지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과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인 열린공감TV다. 포문을 연 것은 서 의원이다. 서 의원은 5월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조 대법원장을 ‘윤석열의 친구’로 지칭하며 돌연 폭로 공방을 시작했다. 서 의원은 “대법원장으로 임명받는 전후 과정 속에서 ‘이재명 사건이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선거 전에 확실하게 정리하겠다’는 (발언을 조 대법원장이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조 대법원장이 해당 발언을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게 하면서 이른바 ‘충성 맹세’를 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서 의원은 대선을 한 달가량 앞둔 5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례적 속도전을 벌여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배경에 조 대법원장이 있다고 지목했다. 유례없는 상고심 속도와 자신이 확보한 제보를 종합해볼 때 이는 곧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면서도 대법원장의 해명을 요구했다.

당시 파기환송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셌지만, 서 의원이 제기한 의혹 자체에 대한 파장은 크지 않았다. 이로부터 일주일여 후인 5월10일 열린공감TV는 서 의원이 제기한 의혹에서 한발 더 나아간 ‘4인 회동설’에 불을 붙였다. 열린공감TV는 유튜브 방송에서 ‘취재첩보원’으로부터 확보한 제보라며 “4월4일 윤석열 탄핵 선고 끝나고 10일인가 15일인가 조희대 대법원장하고 정상명(전 검찰총장), 김충식(김건희 모친 최은순씨의 측근)하고 한덕수(전 총리)하고 4명이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는 거지. 조희대가 ‘이재명 사건 대법원에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대”라는 제보자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재생했다. 열린공감TV 측은 제보자 신원 보호를 위해 음성을 변조했다고 밝혔다.

이후 서 의원은 5월14일 해당 녹취록을 국회 법사위에서 그대로 틀었다. 서 의원은 “제가 말했던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 녹취로 나와 있다”며 의혹을 증폭시켰다. 서 의원은 이 대통령 사건이 파기환송(5월1일)된 이튿날 한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것에 주목하며 조 대법원장이 중심에 있는 ‘모종의 거래’ 가능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새 정부 출범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의혹은 9월16일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재점화하며 다시 떠올랐다. 대법관 증원을 축으로 한 사법 개혁을 추진하던 여당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탄핵·특검 수사’ 카드를 꺼내며 내란 특별(전담)재판부 설치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던 시점이다. 부 의원은 문제의 ‘4자 회동’ 날짜를 4월7일로 특정했다. 부 의원은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법원장 스스로가 사법부의 독립,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을 넘어서 내란을 옹호하고 한덕수에게 정권을 이양할 목적으로 대선판에 뛰어든 희대의 사건”이라고 쏘아붙였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는 이번에도 없었다. 부 의원은 “조 대법원장이 억울하다면” 수사를 자처해 이를 스스로 입증하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정천수 열린공감TV PD(아래 사진 왼쪽)와 김용민 정치평론가(가운데),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유튜브 방송을 하는 모습 ⓒYouTube 화면캡처

‘제보자·녹취록’ 미궁에 빠졌는데도 국회에서 의혹 계속 제기

서 의원이 꺼낸 두 갈래의 의혹은 △조 대법원장이 2024년 초반께 윤 전 대통령에게 ‘이재명 사건 처리’를 약속했다는 것 △6·3 대선을 앞둔 2025년 4월 조 대법원장이 4인 회동에서 ‘이재명 사건 처리’를 또 한번 확인했다는 것이다. ‘열린공감TV→서 의원’으로 흘렀던 두 번째 의혹은 5개월 후 부 의원이 불을 댕기며 첫 번째 의혹까지 재소환했다. 파장이 커지자 서 의원은 첫 번째 의혹의 제보자를 ‘과거 보수정권의 민정 라인 또는 고위직에 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의혹은 서 의원과 부 의원 모두 ‘신뢰할 만한 복수의 인물로부터 확보한 제보’라 했고, 의원실로도 녹취록 관련 제보를 입수했다고 했지만 해명과 설명이 더해질수록 그 근거가 결국은 열린공감TV였다는 것에 무게가 실렸다.

서 의원에게 두 번째 의혹과 관련한 녹취를 전달한 인물은 최혁진 무소속 의원으로, 그는 정천수 열린공감TV PD와 함께 조 대법원장 의혹을 다룬 방송에 출연한 인물이다. 서 의원이 제기한 첫 번째 의혹의 전달자 중 한 명 역시 최 의원으로 지목됐다. 정천수 PD는 “열공(열린공감TV)은 조희대 4자 회동 의혹 녹취를 민주당에 전달하거나 제보한 바 없다”며 “저는 서영교 의원과 일면식도 없으며 최근 일이 불거지면서 팩트체크 차원에서 통화가 처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 의원의 해당 의혹 제기 최초 시점은 5월2일, 열공 방송 최초 시점은 5월10일”이라며 “열공 패널이었던 최혁진 의원이 서 의원에게 (최초 의혹 제기 시점 후 녹취록을) 전했고, 녹취가 법사위에서 공개될 때까지 저와 열공은 (국회에서의 녹취록 공개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헌정사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까지 의결한 민주당은 여전히 ‘신뢰할 만한 제보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인 제보 입수 경위와 확인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열린공감TV 측은 의혹의 열쇠를 쥔 제보자에 대해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방송을 내보낼 때부터 사실 관계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정치권 의혹을 다룬다는 점을 밝혔고, 국회에서 전개된 폭로전과 공방은 순전히 민주당 의원들의 판단이라는 게 열린공감TV의 입장이다.

민주당 의원이 터트린 폭로에 정작 민주당이 코너에 몰리면서 당내에서도 의혹에 선을 긋는 분위기다. 정확한 출처나 제보자 실재 여부, 작은 단서조차 확인이 안 되는 ‘위험한 의혹 양산’에 집권여당이 검증 없이 뛰어들었고, 헌법기관인 국회를 ‘스피커’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거센 책임론이 불거진다. 국회의원의 강력한 방패인 ‘면책특권’을 사안별로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9월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영교 녹취조작 공작’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놓고 항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의원 면책특권 기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정천수씨에 대한 ‘경고음’은 일부 민주당 의원, 당 안팎의 인사들에게까지 여러 경로로 전달돼 왔다고 한다. 열린공감TV는 ‘폭로성 시사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제작해 왔고, 겨냥하는 중심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있었다. 9월25일 기준 12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로 성장하며 여당 의원들의 ‘입’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보수 정권과 당시 대통령 가족, 정부 인사를 집중적으로 다뤘던 것이 주효했다. 정씨는 ‘쥴리 의혹’을 제기하며 《윤석열 X파일》 책을 출간했고, 12·3 비상계엄을 거치며 민주당과의 거리는 더 좁혀졌다. 특히 사건이나 의혹의 내막을 알고 있는 제보자를 내세우고, 제보자 또는 관계자들의 녹취록을 함께 제시하면서 ‘의혹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패턴을 보여왔다.

그러나 수사와 법원 판결문에 드러난 내용은 달랐다. 조 대법원장 논란과 유사한 흐름의 사건이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 대해 제기한 의혹이다. 정씨는 2023년 7월 ‘김건희 집에 들락거린 사람들?_주장’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이낙연, 그는 왜 윤석열에 대해 말을 아끼는가’라는 글을 띄우고 이 전 총리가 김 여사 일가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제보자의 녹취를 공개했다. 이 영상으로 정씨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정천수)이 이 사건 보도 내용에 대하여 직접 취재한 사실이 없는 점, 제보자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점, 제보자의 답변 일부분을 고의로 편집 생략한 점” 등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확인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고 적시됐다.

한때 열린공감TV에 몸담았다가 정씨와 경영권 분쟁 끝에 ‘시민언론 뉴탐사’를 설립한 강진구 선임기자 등은 정씨에 관한 학력, 이력, 허위 보도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이들과 법적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법원을 통해 확인된 정씨의 범죄 이력 중 하나는 2005년 정씨가 온라인상에서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판결문에는 정씨가 2005년 1월부터 5월까지 음란화상채팅을 위한 사이트를 개설하고 남성 회원들을 모집한 뒤 여성들의 나체 등 신체 노출과 성적 행위 장면을 배포·판매했다고 돼있다. 정씨는 당시 약 1억5000만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조사됐고,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뉴탐사 측이 이를 문제 삼자 문제가 된 사이트 운영은 회사 홈페이지 사업부에서 관리했고, 자신과는 무관하게 동업자들이 벌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법원은 정씨가 음란 채팅을 대가로 여성 등 공범들과 범행을 공모한 점이 인정된다고 봤다.

정씨는 해당 의혹을 제기한 과거의 동료들이 2022년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청담동 첼리스트 가짜뉴스’의 발원지라며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김의겸 새만금청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김 청장과 더탐사(現 뉴탐사) 관계자 등 피고들이 공동해 7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당시 의혹을 사실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전무하고, 제보가 허위사실이라는 당사자의 반박 역시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끝내 조 대법원장을 청문회에 불러세우겠다는 민주당은 정작 핵심 관련자인 정씨에 대해서는 증인이나 참고인 요청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청담동 술자리 괴담 시즌2’라며 의혹에 발을 담근 민주당 의원들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은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무차별적 의혹 제기는 정치 불신을 키우고 더 나아가 사법 개혁 동력에까지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둘러싼 기준과 범위를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