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부자 절반, 수도권이 고향…‘고향 사랑’ 명칭 고민 필요”
[시사저널 연중기획│지방소멸에 산소호흡기를 ⑩] [인터뷰] 고향사랑기부제 민간 플랫폼 운영 고두환 대표 “공공은 실패 리스크 커…민간 플랫폼 대안될 수 있어” “지자체 경쟁 점점 치열할 것…각자만의 스토리 필요”
“지역축제들처럼 고향사랑기부제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 겁니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수많은 아이디어를 통해 실험을 하고 토너먼트를 열어 대중에게 선택받으면서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대가 바로 고향사랑기부제입니다.”
민간 플랫폼 ‘위기브’ 운영사인 공감만세 고두환 대표는 고향사랑기부제를 이렇게 평가했다. 고 대표는 일본에서 거주하며 고향납세 프로젝트에 직접 뛰어들어 모금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처음 민간 플랫폼을 만들었다. 지난해 광주 동구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을 수 있었던 데도 위기브와의 협업이 바탕이 됐다. 현재 지자체 50여 곳과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고 대표는 일본 고향납세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는 “재활치료를 위해 일본 산골 마을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헬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볐다. 문득 ‘나는 무슨 수로 헬기를 타고 다닌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군수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고향납세를 통해 의료용 헬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일화를 전했다.
고 대표는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한 첫 번째 키워드로 ‘효능감’을 꼽았다. 담당 공무원들이 제도를 통해 지역의 작은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민간 플랫폼은 지역의 수많은 답례품과 지정 기부에 대한 스토리를 기부자에게 활발히 알리면서 실질적인 모금 증대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며 “국가나 자치단체는 정책 실험이 실패하면 리스크가 따른다. 이럴 때 민간 플랫폼은 담당자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은 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대표는 고향사랑기부제 이름 자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부에 참여하는 20~40대를 보면 50% 이상의 고향이 수도권이다. 이들은 ‘내 고향은 서울인데?’라고 반문한다”며 “기부 방법도 다양해졌으면 한다. PC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아무래도 기부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일본은 계좌이체나 자판기로도 기부할 수 있다. 행안부가 빠르게 민간 개방을 해준 것처럼 나머지 규제들도 점차 개선되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고두환 대표와의 일문일답.
방송사 통신원, 국제기구 자원봉사 등 이력이 다채롭다. 사회적 기업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IMF 때 집안이 망했다. 급식 우유를 못 먹을 정도로 힘들었다. 부친도 병환이 왔고, 사회생활을 재개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성공 아니면 실패가 너무 극명하게 나뉜다고 생각했다. 실패도 결국 하나의 실험이고, 과정이어야 하지 않나. 계속 실패하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게 큰돈을 버는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
2011년 공간만세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공정여행 분야로 시작했다.
“맞다. 필리핀에서 언론사 해외통신원으로 활동했는데,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교류하는 게 좋았다. 필리핀 공정여행을 기획하면서 여행자들이 하루이틀 정도 빈민 지역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필리핀 현지인 1명이라도 제대로 사귈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해외에 사무소가 필요한 경우가 생겼고, 공감만세 법인까지 만들게 됐다.”
일본 고향납세는 어떻게 알고 뛰어들게 됐나.
“나는 일본 고향납세의 수혜자다. 재활 치료를 위해 일본 산골 마을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헬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볐다. 문득 ‘나는 무슨 수로 헬기를 타고 다닌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군수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고향납세를 통해 의료용 헬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법을 촘촘히 만들어도 지역에서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을 고향세가 해결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감만세 일본 법인에서 인구 8000명 규모 소도시에 여행자들을 위한 마을 호텔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해 모금 1위를 하기도 했는데, 그런 일화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제도 시행서부터 참여하게 됐다.”
위기브와 광주 동구 협업은 고향사랑기부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동시에 결국 시골 마을이 대도시와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인식에 일부 공감한다. 하지만 광역시도 재정 자립도가 계속 낮아지는 등 절박함이 있다. 일본도 고향납세 시행 첫해에는 오사카시가 모금액 1등을 했다. 오사카가 고향인 사람들이 원체 많은 등 유리해서다. 서울도 인구가 계속 줄고, 재정 자립도가 떨어지는 자치단체들이 있다. 민간 플랫폼 문을 두드린 지자체장들은 다들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고향 사랑’ 명칭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기부에 참여하는 20~40대를 보면 50% 이상의 고향이 수도권이다. 이들은 ‘내 고향은 서울인데?’라고 반문한다.”
지정 기부를 가장 먼저 시도한 것도 그런 절박함 때문이었나.
“일본의 거버먼트 크라우드 펀딩(GCF)에 착안했다. 대전이 성심당 상품권을, 서울이 롯데월드 입장권 답례품으로 선정하는데, 지역이 경쟁에 살아남을 방법이 지정 기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부는 단순히 모금에 끝내지 않고 기부자들에게 기부 이후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긍정적 변화가 있는지를 기부자들에게 끊임없이 알려준다. 예컨대 광주 동구 발달장애인 야구단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최근 어떤 경기를 했는지를 취재해서 콘텐츠로 만든다. 이런 부분은 공공이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역 간 답례품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그렇다. 처음에는 다들 유명한 특산품 아니면 대기업 제품 넣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은 답례품 중에 광주 동구 삼겹살이 있다. 광주 재래시장에 두세 평짜리 조그마한 정육점에서 납품하는 제품이다. 부부가 신실하게 장사하는 곳이었는데, 단순히 상품 소개가 아닌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답례품 업체를 잘 인큐베이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공공이 잘하는 것과 민간이 잘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민간 플랫폼은 일종의 실험장이다. 국가나 자치단체는 정책 실험이 실패하면 리스크가 따른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다들 하나가 성공하면 똑같이 하려고 한다. 100개의 지자체가 있다면 100개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이럴 때 민간 플랫폼은 담당자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은 장이 될 수 있다. 민간 플랫폼은 지역의 수많은 답례품과 지정 기부에 대한 스토리를 기부자에게 활발히 알리면서 실질적인 모금 증대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
일본 고향납세는 한해 10조가 넘는다. 우리와 상당히 차이가 나는데,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 번째로 전제할 것은 우리는 시행한지 3년밖에 되지 않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두 번째는 우리는 10만원 세액공제인데, 일본은 사실상 자신의 소득 범위에 있는 결정세액 전체를 공제해 주는 시스템이다. 우리도 단계적으로 올린다는 계획인데 여전히 격차가 크다. 세 번째로는 일본은 기부하는 방식이 조금 더 편리하다. 계좌 이체로도 기부할 수 있고 최근 기부금 자판기도 도입했다. 애플페이 등으로도 기부가 된다. 우리는 공인인증도 해야 하고 복잡한데 일본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간편하게 돼 있다. 행안부가 빠르게 민간 개방을 해준 것처럼 나머지 규제들도 점차 개선되길 바란다.”
지자체 차원에서의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당연하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세제 혜택이 있고 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기부 행위다. 기부라는 것은 기부자를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 지자체에서 무슨 웹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맘카페에 답례품 바이럴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투박해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담당 공무원들이 제도를 통해 지역의 작은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효능감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역 소멸의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대한민국은 지역 소멸이나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전부 중앙에 있는 선출직 관료들 아니면 소수 엘리트들이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여전히 그런 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2050년, 2100년에 서울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된다. 그게 중앙 정부의 일이라면,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자체와 민간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지역축제들처럼 고향사랑기부제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 것이다. 지자체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아이디어를 통해서 실험을 하고, 실험을 통한 토너먼트를 열고 대중의 선택과 피드백을 받으면서 지자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가 고향사랑기부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