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경찰 권력은 누가 통제하나

2025-10-10     전영기 편집인

한국 정치가 스스로 무너지는 패턴은 오래됐다. 보수는 분열이, 진보는 교만이 화를 불렀다. “윤석열은 의료 대란으로, 민주당은 검찰 대란으로 망할 것”이라는 언론인 조갑제씨의 한마디는 그 패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주당은 검찰청 해체를 졸속으로 추진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70여 년 축적된 수사 역량과 조직을 한순간에 허문 이 결정은 범죄 증가와 중도층 이탈이라는 부메랑을 부를 위험성이 있다. 조갑제씨의 지적처럼 “지금 웃고 있는 건 중범죄자들뿐”이라는 현실을 민주당은 직시해야 한다.

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되며 발언하는 모습 ⓒ 연합뉴스

이진숙의 수갑, 사람들 마음에 공포 이미지 심어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은 검찰 해체 자체가 아니다. 빈자리를 메울 경찰권력의 성격이다. 견제받지 않는 경찰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최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체포 장면이 이를 보여줬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던 64세 여성 장관급 인사가 수갑이 채워진 채로 연행됐다. 법원이 사흘 만에 석방을 결정했지만 사람들 마음에 공포 이미지를 남겼다. 이진숙은 “나와 함께 수갑을 찬 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했다.

경찰의 행태를 두고 언론인 정규재씨는 “일본 순사처럼 사상 예비검속을 하는 정치적 광기”라고 표현했다. 과격한 레토릭이지만 이번 사건이 민주당 정권하에서 경찰권력의 정치적 남용 논란을 촉발한 건 사실이다. 이진숙의 수갑은 정권의 검찰 개혁이 경찰권력의 자의적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차라리 검찰이 낫지 않겠나’라는 냉소적 여론마저 낳고 있다.

조갑제·정규재씨는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오만을 비판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에 비교적 호의를 표시한 보수 언론인들이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정권의 성공을 기원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충정 어린 비판을 민주당 정부는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절제와 관용에서 성립한다. 권력기관의 힘을 강화할 때뿐 아니라 해체할 때도 절차와 합의, 치밀한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민주당은 검찰 개혁이라는 정치적 상징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들이 비판해온 권위주의의 유혹에 빠진 게 아닌가. 최근 상황을 연성독재(soft despotism)라 부르는 이유다. 언론, 수사기관, 규제기관을 ‘내 편’과 ‘적’으로 나누고, 적대 세력에 대한 잔인한 처벌을 정의로 포장하는 행태는 강한 독재보다 교묘하고, 그래서 더 위험하다.

경찰은 국민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권력기관이다. 수사권, 정보권, 현장 강제권을 동시에 가진 조직이다. 경찰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움직일 때 나타나는 공포는 검찰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 바로 신체를 제압할 수 있고, 일상 속에서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권력이 통제받지 않으면 인권과 자유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시민과 권력자, 모두 패자 될 수 있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실용주의를 진짜 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멈추어 점검해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 정책에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린 것처럼 민주당도 정치적 자해를 하고 있다.

마지막 카드는 쓰지 않는 게 좋다. 극단적 수단을 써버리면 돌아올 길이 없어진다. 사람들은 경찰의 과잉 조치, 하명이 의심되는 수사에 상처를 입었다. 권력기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 남은 카드가 없는데 더 큰일을 벌이면 정권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민주당과 정부가 힘의 사용을 절제했으면 한다. 수사기관들을 서로 견제·보완케 하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췄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자랑스러운 시스템인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려선 곤란하다. 자칫하면 시민과 권력자, 공히 패자가 될 것이다. 경찰을 포함해 모든 권력기관이 삼권분립의 원리 안에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가 1987년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전영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