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국제강 계열사, 여주 알짜 부지 ‘오너 일가 특혜 매각’ 의혹
골프장 페럼클럽 인근 토지, 내부거래 정황에 ‘수상한 회전문 매매’ 의혹까지 불거져 누적 적자 속 별장형 한옥 조성…이해충돌·특혜 논란 확산
동국제강그룹 계열사인 페럼인프라는 2010년 11월 경기도 여주시 사곡리에 위치한 임야 2만6335㎡를 39억원에 매입했다. 이 회사가 조성 예정인 18홀 규모의 퍼블릭 골프장 페럼클럽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었다. 개발이 마무리되면 상당한 시세차익과 함께 골프텔 등의 분양을 통해 수익사업 진행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페럼인프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2012년 5월 이 회사는 오너 일가와 지인들에게 이 땅의 절반인 1만4216㎡의 지분을 넘겼다.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은 페럼인프라가 불과 두 달 후 이 땅을 다시 거둬들였다는 점이다. 총 거래가액은 4억9700만원(매입가 4억7300만원)으로, 매매 과정에서 나온 세금까지 일부 보전해준 것으로 추정된다.
세금까지 보전해준 페럼인프라의 ‘오너 사랑’
동국제강그룹 측은 “단순한 해프닝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룹 관계자는 “부지 개발 초기만 해도 18홀이 아니라 27홀 규모의 골프장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알박기 부지가 중간에 끼어있어 계획을 실행할 수 없었다”면서 “마침 투자자가 나타나 매각했다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 판 땅을 되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룹 측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럼인프라와 오너 일가의 수상한 거래가 있을 당시 주력 계열사인 동국제강은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전방산업인 조선과 건설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국제강의 주력인 후판 부문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그해에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5%, 당기순이익은 96.4%나 각각 감소했다. 2012년에는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동시에 적자로 전환됐다. 차입금에 대한 이자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됐다.
페럼인프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룹의 건물 관리와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을 하는 회사 특성상 페럼인프라는 매출의 90% 가까이를 동국제강에 의존했다. 1600억원에 이르는 골프장 부지 매입비나 공사비 역시 동국제강을 비롯한 계열사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럼에도 오너 일가와 지인들에게 알짜 부지를 넘겼다가 없었던 일로 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일고 있다.
불과 몇 년 후에 그 이유가 일부 드러났다. 페럼인프라는 2015년 이 부지 한가운데에 한옥주택 건립을 추진했다. 인근의 농로를 이용한 진출입로 허가도 여주시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이 주택의 용도가 심상치 않다. 10월15일 기자가 현장을 방문해 보니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에 조형물과 나무가 있고, 한가운데에 위치한 1층짜리 기와집이 전부였다. 수익 사업을 위한 숙박시설이라기보다는 오너 일가를 위한 별장에 더 가까워 보였다.
문제는 이때가 동국제강의 경영난이 극에 달할 때였다는 점이다. 2014년 6월에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기도 했다. 업황 악화로 2012년부터 이어진 영업이익·순이익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4년간 쌓인 당기순손실 규모는 1조원에 육박했다. 신용등급 강등도 잇달았다. 2013년 A+에서 A로, 2014년 다시 A-로 하락했다. 2015년에는 BBB+(4월), BBB-(9월), BB(12월)로 추락하면서 투기등급으로 전락했다. 결국 회사의 상징과도 같은 을지로 본사 사옥(페럼타워)마저 매각했다. 직원들 사이에는 “회사가 망하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이 가득했다.
페럼인프라는 뒤늦게 부지 개발에 나섰다. 기존 한옥주택 인근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게스트하우스 건립을 위한 허가 변경을 여주시에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한옥주택 건립 당시 허가받은 폭 4m 규모의 농로로는 늘어난 개발 면적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페럼인프라는 한옥주택과 연결된 골프장의 카트도로를 진출입로로 사용하겠다고 했고, 여주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특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카트도로는 말 그대로 골프장 운영이나 시설 유지·관리를 위한 도로다. 여주시도 처음에는 카트도로를 활용한 진출입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도로 폭을 6m로 늘리고, 기존 카트도로와 분리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했지만 특혜 논란 또한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게스트하우스 건립 계획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2017년 페럼인프라가 한 사모펀드(PEF)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페럼클럽 인근에 지어진 한옥주택과 게스트하우스는 10년 넘게 방치됐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게스트하우스 부지는 진입로 없이 잡초가 우거져 있었고, 건물 역시 관리가 안 된 듯 외벽은 시커먼 곰팡이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페럼인프라가 오너 일가를 위한 희생양이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재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벌 회장이 경치 좋은 호수나 골프장 인근에 호화 별장을 짓거나 분양받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페럼인프라가 골프장 인근 부지를 매입하면서 오너용 별장이 아니라 수익사업에 나섰다면 지금처럼 사업이 지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동국제강 측 “전면적인 재운영 계획은 없어”
동국제강은 2020년 사모펀드에 매각했던 페럼인프라 지분을 3년 만에 되찾아왔다. 2023년에는 과거 유동성 위기 당시 투자금 유치를 위해 발행했던 상환우선주 전량도 다시 사들였다. 이후 페럼인프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게스트하우스 건립 프로젝트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실제로 페럼인프라는 지난 7월 여주시에 게스트하우스 부지의 토목준공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준공허가가 난 부지는 건물이 있는 대지와 카트도로로 연결되는 진입로, 농로로 연결되는 진입로 등이다. 숙박시설의 부지 조성과 함께 수도나 배관 등 진출입로 정비용으로 허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서도 동국제강그룹 측은 “오래 방치된 건물과 주변 부지의 정비용”이라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여주시로부터 받은 토목준공 승인은 오래 방치돼 손상된 건물 외벽이나 잔디 등 주변부를 복원하기 위함”이라면서 “페럼인프라도 부지 매입 초기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숙소 개발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다만 아직은 투자 여력이 크지 않은 만큼 전면적인 사용(준공) 승인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