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건 정치가 아니라 서커스다

2025-10-31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대중의 취향을 과소평가해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 ‘서커스의 제왕’ PT 바넘이 남긴 명언이다. 현대판 바넘은 누구일까? 도널드 트럼프가 ‘21세기의 PT 바넘’으로 불리곤 한다. 10년 전 외교전문매체 ‘포린 폴리시’의 대표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트럼프를 바넘에 비유하면서 미국인들은 대통령을 뽑을 때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그 예측은 빗나갔다. 로스코프는 사람이 지나치게 심각하면 오히려 단순해진다는 점을 간과했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증오하는 사람들은 장난으로 그러는 게 아니다. 매우 심각하다. 증오의 강도가 높을수록 심각성은 더해져 증오 마케팅을 잘 구사하는 후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오직 증오다.

한국 정치는 미국 정치를 능가할 정도로 화려한 ‘증오의 굿판’이 벌어지는 무대다. 제정신을 가지곤 정치를 못 한다. 반쯤 정신 나간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신이 완전히 나가면 치명적인 사고를 칠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나마 정신을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저질렀을 때, 그는 어떤 상태였던가?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로 ‘패악질을 일삼아온 망국의 원흉’이라고 했던 윤석열은 그 원흉에 대한 증오로 이성이 마비된 상태였다. 쉽게 말해 ‘미친’, 조갑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도 ‘더럽게 미친’ 상태였다. 그러나 일부 국민의힘 의원·당원들은 윤석열이 ‘미친’ 이유를 민주당 쪽에서 찾고자 했고, 그래서 택한 노선이 ‘윤 어게인’이었다. 대선후보도 그 노선에 맞는 사람을 골라서 내보냈고, 패배 후에도 다시 ‘윤 어게인’ 의원을 대표로 뽑았다.

국민 다수의 생각을 몰라서 그런 건가? 아니다. 아예 이길 생각이 없었다. 적을 향한 증오심을 표출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런 ‘윤 어게인’ 체제에선 민주당 정권을 비판할 건수가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와도 아무 소용 없다. 민주당 정권이 그 어떤 악행과 무능을 저지른다 해도 ‘윤 어게인’보다는 낫다는 게 다수 국민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국민의힘은 정치가 아닌 ‘증오의 굿판’ 서커스를 하고 있다. 소수의 관중만을 대상으로 한 서커스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발대식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그런 국민의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민주당은 사그라지는 증오의 불씨를 되살리는 선동에 집착하고 있다. 이 또한 ‘증오의 굿판’ 서커스지만, 비교적 여유가 있는 탓인지 내부적으로 경쟁을 하는 ‘쇼츠 예능’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강성 지지자들이 국민의힘을 향한 증오 발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쇼츠 제작에선 그걸 잘 연출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쇼츠 예능’의 선구자이자 달인은 당대표 정청래다. “악수도 사람하고 하는 것이다” 등과 같은 증오 명언 제조기로도 유명한 그는 유튜브 누적 조회 수 4억 뷰를 기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개혁에 저항하는 반동의 실체들’ 운운하는 공포의 언어에도 능하다. 반동이라니, 그 얼마나 소름 끼치는 말인가.

정청래의 성공은 ‘쇼츠 붐’을 일으켜 국회를 ‘쇼츠 촬영장’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민주당엔 정청래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는 ‘정청래 워너비’가 많다. 그들이 증오를 선동하기 위해 과격하고 기이한 행태를 보일수록 강성 지지자들의 지지와 돈이 쏟아져 들어오니, 이걸 어찌 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서커스의 오락적 가치를 폄하할 일은 아니지만, ‘증오의 굿판’ 서커스를 정치라고 부르는 건 민망한 일이 아닌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