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K교육’은 왜 안 되나
매년 11월이면 우리 주위를 감싼 공기가 한층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는 오래 품어온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쓰라린 낙담과 맞닥뜨리게 될 시간이 어김없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11월13일이 숙명의 그날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그 가족, 친지 등 많은 사람이 한 운명처럼 얽혀 함께 긴장하고 애태우면서 이날을 맞는다. 이번 수능의 응시자 수는 55만4000여 명으로 전체 국민의 약1%에 불과하지만, 심리적으로 연계돼 ‘수능 증후군’을 함께 앓는 인구는 그 몇십 배에 달한다. 최초의 초등 교사 출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내고 국회에 진출해 올해 시사저널이 선정한 ‘차세대 리더’로도 뽑힌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이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결국 학부모와 학생, 국민 전체가 겪는 문제”가 되어있다.
수능을 둘러싼 열기가 말해주듯 우리의 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로 대부분 수렴되고, 그에 따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교육 전문가들조차 ‘숨 막힌다’고 표현할 정도로 벅차게 과부하가 걸려있는 상태다. 이런 현실은 해외 언론에까지 널리 알려져 놀라움을 준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이름의 경쟁 지옥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내 최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청소년 자살률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자살뿐만 아니라 지난해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도 11만5000여 명에 이를 정도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있다는 조사 결과도 그 수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렇듯 아이들은 압박감에 지치고 경쟁에 치여 쓰러져가는데 그들을 구원하고 지켜줄 우리의 교육 정책은 지금 어떤가.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들조차 공약에서 기대를 갖게 할 만큼 인상적인 대책은 없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더불어민주당), ‘서울대-지역 거점대 공동학점제 활성화(국민의힘)’와 같이 예전부터 나와있던 ‘옛노래’만 반복해 틀어댔을 뿐이다. 출산율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심각하게 두드러지는 문제가 양극화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소득 격차에 다른 사교육 양극화는 물론이고 갈수록 심해지는 수도권 집중 현상에서도 교육의 영향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도권 대학교의 재학생 수는 증가하고, 지방대 학생들은 계속 줄어들어 수도권 대학생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수준에 와있다. 수도권과 달리 활기를 잃고 비틀거리는 지방 대학의 실상은 시사저널이 연재하는 ‘지방소멸에 산소호흡기를’ 기획 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매년 자퇴생이 늘어나면서 대학가 공실률도 덩달아 높아져 지역 경제마저 휘청거리는 것이 현실의 풍경이다.
지난 정부 때처럼 대통령이 느닷없이 ‘킬러 문항’을 언급하며 대입 수능에 불쑥 개입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잘못이지만, 정부가 교육의 미래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무능하게 대처한다면 그 또한 매우 중한 실책이다. 이재명 정부라고 교육이 양극화, 저출산, 지역소멸 등 우리 사회의 대다수 문제와 여러 갈래에서 얽혀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대학의 본질, 교육의 본질에 좀 더 천착한 장기 플랜을 차근차근 마련해야 한다. 교육에서부터 시작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평탄하게 다지겠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급함을 버리고 차분하게 재정비한다면, ‘K컬처’ ‘K푸드’는 되는데 ‘K교육’인들 왜 안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