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이 대통령의 ‘핵잠 한 방’과 ‘정치 복원’

2025-11-07     전영기 편집인

경주 APEC 기간에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만약 두 사람이 급조된 만남을 가졌다면, 트럼프는 “당신은 핵을 가진 스트롱맨”이라며 과장된 찬사를 퍼붓고, 김정은은 “왜 약속을 어기고 한미 연합훈련을 계속하느냐”며 불평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공들여 세운 한미·한중·한일 정상회담의 전략 메시지는 흐트러지고, 젠슨 황·이재용·정의선 회동으로 빛난 세계 CEO 서밋의 상징성도 빛이 바랬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트럼프의 깜짝 제안을 김정은이 거부한 덕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월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중·러 핵 자랑 연대에 ‘한미 핵잠’으로 구멍 내

10·29 한미 정상회담의 백미는 이재명 대통령의 ‘핵잠수함 메시지’였다. 그는 “핵추진 잠수함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디젤 잠수함은 장시간 잠항이 불가능해 북한과 중국 쪽의 핵잠수함을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트럼프가 이를 수용하면서 한미 동맹은 새 국면을 맞게 되었다.

핵잠 메시지는 단순한 군사 기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더 이상 ‘머니 머신’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안보의 실질적인 한 축이 될 것임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트럼프에게는 한국의 원자력 기술과 동맹 현대화를 각인시켰고, 시진핑에겐 ‘한국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는 현실감을 안겨줬다. 김정은은 ‘한국도 비대칭적 군사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경고장을 받아든 셈이다. 북·중·러의 핵 자랑 연대에 ‘한미 핵잠’이 구멍을 냈다고 할까.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먼저 좌절하고 스스로 모멸할 때다. 핵잠은 북한이 핵무기를 과시하고 남쪽을 겨냥하는 한 속수무책 당하지 않겠다는 우리 의지 표시다. 한국은 ‘비대칭 무기’를 향한 지향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럴 경우, 김정은의 대남 경멸은 더 심해질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강대국 정상들 앞에서 꿀리지 않았던 이유는 외교술이 아니라 실력의 축적 덕분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는 AI 데이터 운용의 뇌이자, 핵잠수함과 첨단 무기체계의 신경망이다. 화웨이보다 높은 보안성과 신뢰성을 확보한 갤럭시 스마트폰은 글로벌 정보통신망의 표준이며,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칩은 AI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 부품이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의 로봇·모빌리티 기술은 ‘피지컬 AI’ 시대의 기반이자 산업·군수 영역을 아우르는 차세대 전략자산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이 이 대통령의 핵잠 연료 요구의 전제가 됐던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민 안심시킨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

APEC 이후 이 대통령이 보여준 국내정치도 눈길을 끈다. 민주당이 추진하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즉시 중단시킨 것이다. 정파보다 국민, 사적 이해보다 공적 법치를 택한 대통령다운 선택이었다.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메시지는 국민 통합 관점에서 상식적이면서도 통치자로서 단련된 태도를 보여준다. 민심이 바라는 것은 복수와 편가르기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지속성과 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두 가지 조치 즉, 핵잠 합의와 재판중지법 중단에 대해 상식의 복원을 통해 민심을 편안하게 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외교의 자신감과 정치의 절제가 만났을 때 비로소 국민은 지도자에게 신뢰를 보낸다. 이 대통령은 핵잠으로 북·중·러의 공세에 균열을 냈고, 법치로 국내의 분열 심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통합은 일회적 이벤트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말보다 조치로 국민 통합 의지를 추가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야당 대표를 초청해 식사 정치를 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대통령의 ‘만남’은 그 자체가 정치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진영 논리와 상대 타도 정치에 빠진 여당에 대통령이 끌려간다는 인상도 불식할 필요가 있다. 

전영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