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이 대통령, 日을 축으로 ‘중견국 연대’에 적극 나서야 [최병천의 인사이트]
‘규칙 기반’에서 ‘주먹에 의한’ 질서로 바뀌는 국제 관계…‘잠재적 핵능력’ 보유 절실 ‘공급망 국제연대’ 구축해야…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한 철저한 대비 필요
이재명 정부 외교의 최대 시험대였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말 그대로 ‘슈퍼위크’였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과 정상회담, 미·중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 등의 일정이 숨 가쁘게 진행됐다. 양자 외교와 다자 외교가 동시에 진행됐다.
우선 4월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 선포 이후에 시작된 한미 관세 협상이 일단락됐다. 타결 내용도 ‘선방’이다. 현금 2000억 달러와 조선업 분야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되 연간 200억 달러를 상한으로 해서 외환시장 혼란이 없도록 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에 필요한 ‘핵연료 공급’을 요구한 것이다. 요구 이유가 걸작이었다. 디젤 잠수함으로는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들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는 것”을 제시했다. 이후 정부는 기자간담회에서 특정 국가를 언급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국가 지도자의 3대 미션이 있다. ①외침을 막고 ②번영하고 ③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3가지 미션은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국가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외부 침략을 막고,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해야 하고, 통합을 통해 내전을 막아야 한다. ①외침을 막는 미션에 해당하는 게 외교·안보 문제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은 나라 만들기, 압축 산업화, 압축 민주화, 압축 복지국가를 달성하며 선진국에 진입했다. 이 중에서 외교·안보 이슈에 국한하면, 해방 이후 가장 뜻깊은 사건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안보 위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을 활용한 자주국방, 1990년대 초에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북방 정책이다. 모두 안보를 강화해 경제적 번영의 토대가 됐다.
‘힘의 논리’로 국제 질서 재편하는 미국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미션은 ‘외교안보적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외교안보적 환경 변화의 ‘본질’과 ‘방향’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외교안보적 환경 변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세 가지로 꼽아볼 수 있다. 첫째, ‘규칙 기반’ 국제 질서가 ‘주먹에 의한’ 국제 질서로 바뀌는 중이다. 규칙 기반 세계 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만들었다. 양차 세계대전의 반복을 막고, 소련(현 러시아)을 견제하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상징하는 것이 국제연합(UN), WTO(세계무역기구),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 다자기구다.
현재 미국은 자유무역이 자신에게 불리하고, 국제기구보다 ‘양자 간 협상’이 국익에 이롭다고 판단하고 있다. 강대국 입장에서는 실제 양자 협상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먹에 의한’ 국제 질서가 본래 모습이고, 규칙 기반 국제 질서는 인류 역사에서 약 70년간의 ‘예외적인’ 조건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거나 경제적으로 강탈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동안에는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하며 강대국들의 ‘깡패질’을 견제했다. 미국은 이제 세계 경찰 역할이 국익에 해롭다고 생각하게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이 일본과 한국에 5500억 달러와 3500억 달러를 요구한 것 역시 ‘경제적 강탈’의 일환이다.
셋째, 강대국끼리는 언제든 자국의 이익에 합치되면, 동맹국(우방국)을 배신하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알래스카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했다.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는 강대국이며, 우크라이나는 그렇지 않다”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크림반도와 돈바스 영토를 양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강대국의 의견 합치로 인해 나라가 통째로 사라졌던 대표적인 사례는 ‘폴란드의 분할 및 소멸’이다. 폴란드 역시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었다. 주변 강대국들은 세 차례(1772년, 1793년, 1795년)에 걸쳐 폴란드 영토를 나눠 가졌다. 1795년 이후 폴란드는 나라가 사라져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18년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서야 독립국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일본과 협력하며 CPTPP 가입해야
외교안보적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이 대통령이 해야 하는 외교안보적 미션들이 존재한다. 먼저, 한국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수출-제조업-대기업’ 강국이며, 외교안보적으로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다.
첫째, 일본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며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해야 한다. CPTPP는 미국과 중국 모두 없이 일본이 주도해 만든 자유무역지대다. 영국의 가입으로 회원국은 12개, 세계 GDP의 약 15% 규모를 아우르는 경제협정이 됐다. 일본 역시 중국과 미국의 패권에 대항력을 갖는 ‘중견국 연대’가 필요하다.
둘째, 자주국방 강화가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됐다. 자주국방 강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은 △원자력 잠수함에 대한 미국의 협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일본 수준의 핵 재처리 시설 보장 등이다.
셋째, 경제안보 관점에서 ‘공급망 국제연대’가 필요하다. 중국은 트럼프 2기를 대비해 ‘희토류의 무기화’를 준비했다. 결국 트럼프는 중국에 양보해야 했다. 한국은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을 설득했다. 그런데, 언젠가 중국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공격할 때, 우리의 카드는 무엇인가? 혹은 방어 방법이 존재하는가?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넷째, ‘다층적 외교채널’을 강화해야 한다. 다자주의 국제기구가 약화되면서 ‘소(小)다자주의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본, 호주, 캐나다와 함께 이른바 ‘JACK’s 모임’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JACK은 일본(Japan), 호주(Australia), 캐나다(Canada), 한국(Korea)의 앞 글자를 땄다. 이 나라들은 자본주의 선진국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친서방 국가, 태평양을 끼고 있는 국가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처음에는 4개 나라가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 전략적으로 제휴하며 CPTPP 가입 △원자력 잠수함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공급망 정비 △소다자주의 협력체인 JACK’s 모임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