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李정부, ‘숙의공론화 기구’ 36억 들여 추진…‘정년연장·의정갈등’ 논의한다

[2026 예산돋보기⑦] 국무조정실 산하 ‘의제선정·공론화委’ 투트랙 구성…정책·갈등 사안 공론장서 푼다 文정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방식 차용…내년 하반기 결과 도출 로드맵 ‘모든 의제’ 다루는 공론화 기구는 역대 정부 중 처음…“전문성·공정성 달성 숙제”

2025-11-10     변문우·정윤성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1월2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참석자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자주] 정부 예산안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 예산안 속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 속에는 대한민국의 희노애락이 녹아있다. 대한민국의 희망과 요구, 과제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렇게 예산안은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설계도이자 국가의 지도로 평가된다. 예산안을 촘촘히 뜯어보는 일은 그래서 그 어느 일보다 중요하다. 어디에 세금을 ‘더’ 쓰고 ‘덜’ 쓰느냐에 따라 나의 오늘과 내일이 달라진다. 이재명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728조원으로 짰다. 역대 최대의 ‘슈퍼예산’이다. 이재명 정부는 어떤 미래를 설계했을까. 시사저널이 ‘예산안 돋보기’ 기획을 통해 그 숫자들이 그려낼 미래와 남겨진 숙제를 짚어봤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야 한다. 불평등, 양극화, 정치적 극단주의에 맞서 공존, 화해, 연대의 다리를 새롭게 놓을 시간이다. 갈등보다 대화를, 비난보다 협력을, 혐오보다 상생의 가치를 회복해야 할 때다. 시민들의 다양한 관점을 풍부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난제를 해결할 숙의민주주의 확산으로 연결될 수 있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이제는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미래형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한 달 차인 7월13일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개막연설에서 이처럼 밝히며 ‘K-민주주의’ 혁신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 첫 걸음으로 정부에서 내년에 36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무조정실 산하 ‘숙의공론화 기구’를 신설할 계획으로 확인됐다. 최근 정치·경제·시민사회를 비롯한 각계에서 공공정책을 둘러싼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 갈등을 조정하고 상호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해당 기구를 통해 국가 주요시책이나 국민적 관심도를 기준으로 ‘공론화 의제’를 선정하고, 해당 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목표다. 이를테면 지난 정부의 핵심 갈등 이슈로 꼽혔던 ‘의정갈등’ 관련 현안들이나, 최근 당정이 띄우면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정년연장’ 등이 의제 후보군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선 기구의 전문성·공정성 논란이 나오거나 일회성 홍보 수단에 그치지 않도록 “체계적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사저널 양선영

‘K-민주주의’ 퍼즐 맞춘다…“숙의 통해 공공갈등 해소”

10일 시사저널이 입수한 ‘2026년도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예산안’ 관련 비공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국무조정실 예산 중 ‘숙의공론화 기구 운영’ 사업으로 36억5000만원을 신규 편성했다.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이나 각종 논제와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장을 마련하는 취지에서다. 구체적으로 공론화 의제 선정을 위한 ‘의제선정위원회 신설’ 사업에 1억3500만원, 공론화 과정 진행을 위한 ‘공론화위원회 신설’ 사업에 35억원이 투입된다.

의제선정위원회의 경우 30명의 위원이 12차례 회의를 개최하고, 공론화위원회의 경우 10명의 위원이 5개월 동안 월 2차례 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전제로 예산안이 편성됐다. 국무조정실은 해당 기구를 통해 내년 상반기까지 공론화 의제를 발굴·선정하고, 3~5개월간 숙의공론화 과정을 거쳐 하반기경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각계 이견차가 있는 공공정책의 최종 추진방침을 확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정책 추진 로드맵을 보면, 일단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는 갈등관리정책협의회를 통해 국정 과제와 주요 정책 현안, 첨예한 갈등 사안을 대상으로 공론화 의제 후보를 발굴하고, 이후 의제선정위원회나 국무회의 등의 심의 및 의결을 거쳐 최종 의제와 추진 방식을 확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의제들은 개별 공론화위원회와 지원단을 구성해 공론조사 등을 진행한 후 맞춤형 결과를 도출할 예정이다.

앞서 국무조정실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도에도 당시 갈등 이슈였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놓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사업을 추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또 국회에서도 윤석열 정부 당시 ‘국민연금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국민적 합의를 거친 후 개혁안을 발표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중앙정부 차원에서 ‘모든 의제’를 열어놓고 숙의공론화 기구를 만들었던 경우는 전무하다.

관련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아직 기구 구성이나 규모 및 활동계획 등 세부적 계획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난 2017년에 국무조정실에서 추진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운영 사업의 집행 규모를 참고해 예산안을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강조한 숙의민주주의 구현은 물론, 공공정책 수립 및 결정 과정에서의 국민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사회적 신뢰를 조성해 공공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사저널 양선영

“기구 성과 내려면 ‘독립성’ ‘공정성’ ‘대표성’ 확보해야”

다만 일각에선 해당 기구를 놓고 전문성·공정성 논란이나 일회성 홍보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에서 꼼꼼한 로드맵을 확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논쟁적인 의제와 관련해 갈등을 조정하는 기구나 위원회가 생기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긍정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형식적인 위원회에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독립성과 공정성, 대표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그는 “과거 정부에서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나 국민연금 공론화위원회 등)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대화 기구나 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정책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우는 드물다”며 “오히려 특정한 입장에 치우친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면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